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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바람 부는 날, 청평사 풍경소리 지난 4월1일 오후 청평사는 봄볕이 따사로웠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옷깃을 여미게 했다. 그러나 봄바람 때문에 절집 처마에 매달려 있는 풍경들이 일제히 울려 퍼져가 산사의 고즈넉한 풍경을 일깨우고 있었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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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강원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는 신라 진덕여왕 때 창건돼 고려 광종 때 승현대사가 중창하여 번성한 사찰이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폐사와 개창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른 이 절에는 국보와 보물급의 문화재가 많았다.

 

그러나 전쟁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너지거나 불타버리고 지금은 보물 164호인 회전문만 남았다. 이 회전문은 청평사의 정문격이다. 사찰은 4계층의 터 위에 회랑과 마루 밑으로 연결된 통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4월 1일 100대 명산 중의 하나인 오봉산을 찾아 서울을 출발했다. 춘천으로 달리는 경춘가도는 마석을 지나자 교통량이 많지 않아 시원하게 뚫렸다. 하지만 하늘은 기대했던 것만큼 맑지 않고 희부연 얼굴이다.

 

춘천 시내로 접어들어 공지천을 지나 춘천역 앞길을 지나자 곧 소양교가 나타난다. 인공호수 물에 둘러싸인 춘천 시가지는 갇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열려 있다. 또 시원하게 트여 있는 것 같지만 어딘가 비밀스러운, 속 깊은 사람의 가슴 속 같은 도시라는 느낌이었다.

 

호수 속의 작은 섬들은 가는 길에 들렀다 가라고 손짓이라도 하는 듯했다. 소양교를 지나 소양댐 쪽으로 가다가 좌회전해 양구 쪽으로 가는 길을 잡았다. 전에 몇 번씩 가봤던 소양댐을 굳이 다시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옛날 파월장병으로 뽑혀 먼지 풀풀 날리는 이 길을 트럭을 타고 넘던 생각이 나는구먼."

 

시가지를 벗어나자 곧 굽이굽이 배후령 길이 나타난다. 일행 중 한 사람이 고갯길을 오르며 옛 추억에 젖어든다. 이 고개를 넘어 조금만 가면 베트남전에 파병되는 우리 군국 병사들이 교육을 받던 '파월장병 교육부대'가 있던 간동면 오읍리가 있기 때문이다

 

배후령을 넘자마자 차를 세웠다. 오봉산은 소양댐에서 배를 타고 건너 청평사에서 오르는 길과 이 배후령 정상 부근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이날은 배후령에서부터 청평사로 넘어가는 길을 택했다. 그런데 차를 세우자 붉은 색 점퍼를 입은 중년 남자 세 사람이 다가온다. 산림청 소속의 삼림 감시 직원들이었다.

 

 

"오봉산은 지금 입산금지 기간입니다."

 

그들은 우리들이 오봉산을 오르려는 등산객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등산로 입구에는 '입산금지'라는 안내판과 함께 플라스틱 선으로 막아놓았다. 

 

"그럼 어떻게 하지?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되돌아 갈 수도 없고, 청평사 관광이나 하고 가는 것이 어떨까?"

 

누군가가 먼저 제안을 하면 쉽게 그 의견을 따르는 것이 우리 일행들의 관행이다. 그래서 너무 쉽게 의견 일치를 본 일행들은 바로 청평사로 가기로 했다. 고갯길을 달려 조금 더 내려가면 간척4거리다. 이 4거리에서 우회전해 달리다가 고개 하나를 넘으면 바로 청평사로 가는 길이다.

 

"옛날엔 청평사에 가려면 소양댐에서 배를 타고 건너야 했는데 도로가 열려 아주 편리해졌구먼."

 

고개를 넘어 잠깐 내려가자 청평사 입구 주차장이 나타났다. 주차비는 2천 원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청평사로 향했다. 공휴일이나 주말이면 많은 관광객들과 데이트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는 청평사 길이 매우 한가했다.

 

청평사 입구에서도 사찰문화재관람료를 받고 있었다. 1인당 1300원. 사찰은 사설기관이라 국가유공자도 무료 혜택이 없단다. 오직 65세 이상 노인들에게만 무료 입장의 혜택이 있었다.

 

 

청평사로 오르는 계곡에는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정갈하게 들려왔다. 요즘 봄비가 자주 내려 골짜기엔 제법 많은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골짜기에는 고려 출신으로 원나라 순제의 황후가 된 기황후의 딸인 공주와 상사뱀의 전설이 깃든 공주굴이 있다. 또 공주상도 세워져 있었다.

 

거북바위와 구성폭포를 지나니 저 위쪽에 청평사가 나타난다. 청평사 입구 오른편에는 오봉산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는 영지가, 위쪽 왼편에는 진락공 이자현의 부도가 자리 잡고 있다. 산사에 이르자 석물의 입으로 물을 뿜어내는 약수터가 나타난다. 목을 축이려고 한 모금 마시니 물맛이 시원하고 상큼하다.

 

절집 위로 오르는 계단 옆에는 수령 250년의 은행나무 한 그루가 아직은 벌거벗은 채 우람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절 마당에 올라서자 입구에 우뚝 서 있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마치 절집 대문의 문설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여간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다.

 

사찰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회전문이다. 이 회전문이 바로 소실되거나 무너져 버린 수많은 문화재들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보물 164호인 회전문이다. 회전문에 들어서면 길이 위층 회랑의 마루 밑으로 연결되어 있다. 통로 양옆으로도 회랑이 펼쳐져 있고 천정에는 수많은 연등들이 매달려 있다.

 

오른편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범종각이 아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복도를 타고 가다가 계단을 오르면 앞에 대웅전이 나타난다. 대웅전 마당 앞쪽으로도 앞과 좌우로 회랑이 펼쳐져 있는데 이 청평사만의 아주 특이한 구조다.

 

 

대웅전에서 옆길을 돌아 또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니 자그마하고 아담한 극락보전이 세워져 있다. 그 앞에 이르자 마침 불어오는 봄바람에 뎅그렁 뎅그렁 풍경소리가 울려퍼진다.

 

극락보전 옆에는 수령이 무려 800년이 넘었다는 주목 한그루가 아직도 청청한 모습을 하고 있다. 주목 앞과 주변에는 누군가가 작은 돌멩이들을 이용하여 수많은 작은 돌탑을 세워 놓았다. 사찰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도 봄바람은 여전했다.

 

봄 햇살은 따사로운데 심술궂은 봄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러나 덕분에 절집 건물 처마 끝에 매달아 놓은 수많은 풍경들이 일제히 맑은 쇳소리를 뎅그렁거려 산사를 찾은 일행들의 귀를 맑게 열어주고 있었다.

 

사찰 옆 바위 밑에는 작은 불상 몇 개를 만들어 세워 놓았다. 바위 밑에는 웅덩이를 만들어 놓았는데 산자락을 타고 흘러온 맑은 물이 그 웅덩이에 모였다가 흘러내려가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 웅덩이 속 작은 돌그릇에 동전을 던져 넣고 있었다. 젊은 여성 두 사람도 몇 개의 동전을 던졌지만 단 한 개도 그릇에 들어가지 않자 실망한 표정이다.

 

 

"호호호, 멋진 신랑감 만난답니다. 그런데 잘 안 들어가네요. 그래도 저 풍경소리가 참 맑고 아름다워서 너무 좋네요."

 

내가 넌지시 "그곳에 동전이 들어가면 좋은 일이 생기느냐?"고 묻자 한 여성에 호호호 웃으며 대답했다. 동전이 그릇에 안 들어가서 실망스러운 마음을 풍경소리로 달랜다는 말인 것 같았다.

 

봄바람 부는 호젓한 산사에 울려 퍼지는 맑은 풍경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에 정다움과 함께 따뜻한 위로를 더해주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청평사, #풍경소리, #전설,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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