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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저기서 어르신의 발병과 와병 소식이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두어 달 전에 처음 들은 팔십 어르신의 발병으로 환자는 온갖 검사로 탈진했고, 평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신 동년배 배우자의 힘겨운 병간호가 이어졌다. 또 생업을 뒤로 하고 이리 저리 뛰어야 하는 자녀들의 고단함도 곧바로 드러났다.

 

병문안과 자녀들에 대한 위로 전화 몇 통으로 할 일 다한 듯 뒤로 나앉아있는 처지지만 그들의 어려움이 팔십 넘은 부모님 계신 내게 결코 남의 일, 팔짱 끼고 불구경만 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똥꽃>은 오래 전 귀농해 농사를 지으며 생명운동, 대안교육 등에 힘쓰고 있는 아들(전희식)이, 귀가 어두운 데다가 몇 년 전 눈길에 넘어져 하반신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이제는 치매 증상까지 보이는 어머니(김정임)를 직접 모시고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책이다.

 

서울 형님댁에 계실 때 어머니는 방안에만 계셨다. 모시고 있었던 며느리에게는 때맞춰 식사 챙겨 드리고, 기저귀 갈아드리고, 옷 갈아입혀드리는 것만으로도 최선이었을 것이다. 직접 돌봐드리지 않거나 모시고 살지 않는 자식들은 가끔 어머니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끝났을 테지만 말이다.

 

이 아들 역시 일부러 어머니를 찾아뵌 적은 없었다고, 서울에 볼일이 있어 올 때 겸사겸사 한 번 들여다보는 것이 다였다고 고백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아들은 결심을 한다. 젊어 한때 어머니를 책임지고 돌봐드리기로.

 

여기서 나는 우선 주눅이 들었다. 내 부모님이 같은 처지에 계신다면 과연 나는 직접 모시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모시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보기나 할까. 듣고 본 게 얼마인데 하반신 못 쓰시고, 귀는 안 들리고, 치매 증세까지 있는 분이라면 모시는 일이 마음만으로는 될 일이 아니라고 아예 처음부터 마음을 접었을 것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온 아들은 어머니가 몸이 불편하고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지만 환자나 아이로 취급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 그것도 '존엄'을 지닌 당당한 존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거기서부터 '모심'을 시작한다.

 

눈물겹고, 화 나고, 어이 없고, 속상하고, 슬픈 일이 왜 없었으랴. 그래도 어머니를 중심에 놓고 진심으로 대하고 모시는 아들의 정성은 어머니에게 가 닿는다. 대소변을 가리게 되고 소소한 집안일에 간섭(?)하기 시작하면서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린다.

 

또 다시 나는 주눅들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건강하고 총기있으신 부모님께도 친절하기는 커녕 퉁명스럽게 대하는 내가 부끄럽다 못해 화가 났다. 똑같이 부모님이 낳아주신 아들 딸이건만 누구는 이리도 정성스레 어머니를 모시는데 나는 뭔가, 하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나는 결코 이 좁은 아파트를 떠나 외딴 곳의 집을 손질해 어머니나 아버지와 단둘이 살면서 손빨래로 수발하진 못할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내 한계를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였다.

 

어머니를 진심으로 모시고 섬기면서 이 아들은 우리 사회가 노인을 대하고 대접하는 일에 얼마나 미숙하고 천박한지 알게 되고, 그것의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내기에 이른다. 덕분에 이 아들을 지켜보는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고 어른 섬기는 일을 고민하게 된다. 한 사람의 긍정적인 영향은 이렇듯 놀라운 것이다.

 

하여 내가 못한다고 해서 부끄러워하고 주눅들 일만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나는 귀농을 해서 물 맑고 공기 깨끗한 곳에서 부모님을 모실 수도 없고, 이 아들처럼 부모님을 잘 섬길 자신도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모심과 섬김의 마음'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처한 자리와 할 수 있는 일의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할지라도 그 속에 담긴 마음이야 배울 수 있지 않겠는가. 세상 사람들의 삶의 자리와 삶의 방식은 다 다르니까, 내가 처한 위치에서 그 마음을 실천하면 그 또한 의미있는 일 아닐까. 

 

비록 그의 정성에 비하지는 못하겠지만 인간의 '존엄'을 가운데 놓고 어르신들을 대한다면 내가 하고 있는 노인복지 일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 아들한테 주눅들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조차도 제대로 못한다면 그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리. 그러니 결심할 수밖에. 주눅들지 말자!

덧붙이는 글 | <똥꽃-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전희식, 김정임 지음 / 그물코, 2008)


똥꽃 - 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

전희식.김정임 지음, 그물코(2008)


태그:#똥꽃, #전희식, #치매, #노인, #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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