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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천주산의 봄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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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이다. 그동안 산행을 못해 온 몸이 간지러웠다. 마치 봄에 새순을 틔워야 할 나무처럼, 새순을 틔워야 하는데 두꺼운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하는데 잘 되지 않아 신열을 앓는 나무처럼, 그렇게 온 몸이 간지러움을 탔다. 딱 한 달 만에 산행을 갈 시간을 얻었다. 모처럼의 산행 가는 날, 고맙게도 날씨는 아주 맑음, 하늘은 진짜 푸름, 마음도 활짝 갬,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지난번에 원동과 그 주변일대에 수줍은 듯 붉은 꽃망울을 터뜨려 낮은 산마다 진달래꽃불을 질러 놓은 것을 보았기에 지금쯤 온 산에는 붉은 꽃불로 환할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쯤 온 산은 진달래로 붉게 물들었을 거야, 암 그렇고 말고, 마음으로 확신하고, 장담하고 나서는 길,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꽃 봉우리처럼 우리의 기대는 컸다. 창원 천주산은 초행이다. 작년에 갔던 진해 비음산도 진달래 군락지로 유명하지만 이번엔 일단 가보지 않은 산으로 가기로 했다. 창원 천주산도 비음산 못지않게 진달래 군락지라 하니 기대가 되었다. 온 산에 불이 붙은 진달래꽃불을 기대하며 출발 전부터 마음은 벌써 설레기 시작했다.

 

진달래꽃하면 추억의 창고 깊숙한 곳에 켜켜이 쌓여있던 어린시절이 먼저 떠오른다. 봄이 오면 꽃불을 놓은 진달래꽃을 따러 온 산을 집 안마당 밟듯 쏘다니며 대바구니 가득 꽃을 따 담고, 다른 한손에는 진달래꽃을 꺾어 들었다. 실컷 산에서 산으로 들에서 들로 쏘다니다가 집으로 오면 엄마가 쓰다만 이가 깨진 항아리에 물을 채워 방 안에 진달래꽃을 꽂아 집안을 환하게 밝히고, 바구니 가득 든 따온 꽃잎으로 화전을 구워 먹곤 했다. 진달래꽃을 먹을 수 있다 해서 참꽃이라 했다. 진달래가 지고 난 뒤에 피는 철쭉꽃을 우리는 개꽃이라 불렀다. 이렇게 날은 맑을까, 마치 우리를 위한 날씨 같았다. 지난주엔 비가 오지 왔었다.

 

봄의 부름에 이끌리듯 집을 나왔다. 아니, 추억의 부름에 이끌려 집을 나섰다. 어린 시절처럼 그렇게 힘도 들지 않고 내 집 안마당 안을 돌듯이 산과 산을 오르내렸던 가벼운 몸은 아닐지라도, 노는데 정신이 팔려 하루해가 지는 것도 잊어버렸던 그 놀이에의 몰입과 에너지는 없다할지라도 봄 산을 헤집고 다녔던 그 추억의 힘으로 진달래꽃 산행을 가보자. 한 때는 어린아이였고, 거기 내가 있었고 꽃불을 얹은 산을 쏘다녔던 아이가 지금 산으로 간다.

 

추억 속의 한 계집애와 지금의 내가 산으로, 온통 붉은 핏빛 꽃불을 놓은 봄 산으로 가고 있다. 커가면서 기대하는 나와 현재의 나, 바라보는 세상, 기대하는 세상과 불화했던 적도 있었지만 적어도 어린시절엔 나와 불화한 적이 없었기에 추억과 손잡고 함께 여행할 수 있다. 내 마음은 몸보다 벌써 그 어릴 적 계집아이처럼 온 산을 사슴의 발처럼 가뿐가뿐 뛰어 올라가고 있었다. 천주산 용지봉아 내가 벌써 여기 왔다. 어디 거기뿐이랴. 이미 꽃불 놓은 진달래 펼쳐진 산마다 이미 내가 그곳을 접수했노라.

 

눈을 들어보는 곳마다 봄꽃들이 지천이었다. 지금 막 개화해 온 세상을 꽃구름으로 물들이고 있는 벚꽃나무는 오늘처럼 푸르른 날엔 더 눈이 부셨다. 어느 새 일찍 만개해 지기 시작하는 벚꽃은 바람에 눈송이처럼 분분이 흩날리고 있었다. 남양산 IC에서 북부산IC를 지나 북창원 나들목을 거쳐 신호등 앞에서 좌회전을 두 번 해서 창원 달천공원 쪽으로 향했다. 곳곳마다 4월 13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천주산 진달래축제를 한다고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있었다. 천주산 진달래축제는 노래자랑, 백일장, 사생대회, 산악마라톤, 가수초청 공연 등을 한다고 소개해 놓고 있었다.

 

천주산 입구에 도착, 11시였다. 천주산 주차장과 입구 주변에는 온통 벚꽃나무들이 꽃구름을 만들며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꽃구름 터널 아래로 지나갔다. 꽃구름 사이를 걷노라니 곧 정자가 한 개 나타났다. 거기에서 나이 많은 노인들이 소풍을 온 듯 모여 앉아 점심도시락을 펴고 먹고 있었다. 따사로운 햇볕은 바닥을 치고 열기를 품어냈다. 한 달 동안 산행을 하지 않은 까닭에 날씨 감각도 잊어버렸나보다. 따뜻한 햇볕이 겉옷을 벗겼다. 배낭에다 겉옷을 넣고 또 하나, 긴 남방은 단추를 풀었다. 그래도 안에는 반팔과 속옷을 입었으니 겉옷 하나 벗어도 땀이 삐질삐질 났다.

 

산에 오르는 길옆에는 계곡 물 소리가 제법 환했다. 올라가는 길에 진달래꽃이 군데군데 흩어져 핀 것이 보였다. 달천약수터에 도착했다. 지붕까지 만들어 놓은 달천약수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물을 마시고 쉬어 가고 있었다. 물맛이 좋았다. 의자에 앉아 젖은 땀을 좀 식혔다. 장애인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셋이서 서로 도와 가면서 오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장애인 공동체에서 산행을 왔는데 뒤처진 사람들이었다. 달천 약수터에서 우리는 천주봉으로 향했다.

 

달천 약수터에서 오른쪽 방향은 만남의 광장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천주봉으로 가는 길이다. 천주봉 정상에서 5분 정도 내려오면 다시 만남의 광장을 만날 것이었다. 일단 천주봉으로 간다. 천주산 주봉이 있는 용지봉하고는 점점 간격이 멀어지고 있었지만 천주봉을 둘러보고 다시 천주산 용지봉으로 향하기로 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진달래 군락지일까. 비교적 낮은 곳, 해발 400미터 정도까지는 활짝 핀 진달래가 흩어져 핀 것이 더러 보였지만 산 높이 올라갈수록 활짝 핀 진달래꽃은 보기 힘들었다. 이제 막 꽃봉우리만 맺힌 진달래가 대부분이었다.

 

천주산 팔각정에 도착했다. 12시 30분이었다. 천주산 팔각정의 바람은 아주 차가웠다. 따사롭다 못해 땀이 나게 하던 공기 중에 있다가 팔각정에 앉아 쉬는 동안 땀이 식으면서 한기가 찾아들었다. 사슴처럼 가볍게 움직이기를 바랬던 나의 다리는 마음과는 달리 몸이 무거웠다. 한동안 산행을 하지 않아서인지 몸이 무뎌진 듯 했다. 그러고 보니 내 추억속의 계집아이와 지금의 나는 그 세월이 꽤 멀고도 먼 간격이 있다. 그래도 그렇지, 좀 움직여 다오, 내 다리여, 사슴처럼 아주 가볍게 움직여다오.

 

좀처럼 가뿐해지지 않는 나의 다리, 허허 참, 어쩔 수 없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무겁게 발걸음을 옮긴다. 팔각정에서 바로 옆에 천주봉이 보였다. 천주봉까지는 5분 거리. 천주봉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고 창원시가 내려다 보였다. 천주봉 정상에서 이제 다시 천주산 용지봉으로 향한다. 만남의 광장에 도착, 1시였다. 이곳은 한마디로 교차로였다. 만남의 광장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달천약수터가 있고, 왼쪽으로 가면 천주암과 천주암 약수터, 뒤쪽으로는 우리가 걸어왔던 천주산 팔각정이 있다.

 

우리는 이제 곧바로 천주산 정상 올라가는 길로 간다. 많은 사람들이 만남의 광장에 모였다가 또 가는 길 따라 흩어졌다.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만남의 광장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 떠드는 소리가 온 산을 울린다. 이곳 만남의 광장을 전세라도 냈나? 만남의 광장에는 창원시에서 만들어 놓은 천주산 진달래를 소개하는 글이 팻말에 쓰여 있었다.

 

‘천주산(638.8미터)은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주봉우리는 용지봉으로 창원시와 마산시, 함안군 3개시, 군을 품은 산이다. 우리민족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맑고 깨끗한 동심을 일깨우는 동요 이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 창작 배경지이기도 하다. 인근에는 피부병, 장수병 등에 뛰어난 효험이 있는 마금산 온천이 있다.‘

 

 천주산에서 만남의 광장으로 곧장 내려온 우리는 천주산 용지봉으로 바로 직진해 올라갔다.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흙길은 많은 사람들이 밟은 듯 흙이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날씨도 좋은 휴일이라 그런지 참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았다. 계속해서 올라가도 넓게 잘 조성해 놓은 길은 마치 산행하는 것이 아니라 산보 나온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했다. 한마디로 이곳 시민들과 구민들을 위해 잘 배려해 놓은 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장애인들이 단체로 돕는 사람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모습들이 보였다. 가족들과 함께, 또는 단체로 와도 좋은 산이었다.

 

넓게 펼쳐진 길을 따라 천주산 용지봉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진달래 그 환한 불꽃은 보이지 않고 중간에 생강나무 꽃만 피어 있었다. 이따금 내 아쉬움을 아는지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양 진달래꽃이 눈앞에 보이고, 대부분 꽃봉오리만 맺혀 있다. 진달래꽃은 아직 꽃봉오리만 맺혀 있는데 우리 마음이 앞서 성급히 달려온 듯 했다. 추억속의 계집아이 따라 나온 진달래꽃 산행, 이토록 발걸음 성급히 옮겨 놓았으니 과연 추억은 힘이 세다.

 

천주산 용지봉 일대는 그야말로 진달래 군락지였다. 2006년도만 해도 등산로만 있어(먼저 갔다 온 남편의 말) 곧장 용지봉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는데 그 이듬해 조성해 놓은 것인 듯, 나무계단과 전망대가 있어 진달래꽃이 활짝 만개했을 때 멀리까지 조망할 있도록 해서 좋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진달래꽃이 아직 활짝 개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천주산 용지봉으로 올라가면서 이따금 전망대에 서서 아쉬운 마음으로 진달래 군락지를 둘러보았다. 순간 하늘 위에서 헬기 소리가 나서 올려다보았다. SBS 헬기가 하늘을 날며 이곳을 지나가는 걸 보니 아마도 이곳을 촬영하고 가는 듯 했다.

 

나무계단 끝에는 정자가 놓여 있었다. 산행 온 사람들이 장자 위에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거나 조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준비 해온 음식 담은 스티로폴 접시가 나뒹굴었다. 과연 저것을 다 거두어 갈까, 잠시 걱정스러웠다. 정자 위에서 먼데 마금산 온천이 희미하게 보였다. 용지봉 정상에 도착, 정각 2시였다. 이곳은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용지봉에서는 창원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용지봉 근처에는 쑥이 제법 많이 자라고 있었다.

 

산 정상에 쑥이라~ 진달래꽃을 맘껏 보고 가리라 기대하고 장담하고 왔건만 제대로 보고 가지 못하니 쑥이라도 캐갈까. 용지봉 근처에 자리를 잡고 늦은 점심을 먹고 난 뒤 남편이 그늘에 누워 쉬는 동안 쑥을 캤다. 높은 산에 있는 쑥은 깨끗했다. 하산한다. 우리가 왔던 길을 다 버리고 이젠 달천고개 쪽으로 향했다. 천주산 용지봉으로 올라왔던 넓은 산보길(?)과는 다르게 급경사에 꼬불꼬불한 좁은 길이 달천고개까지 이어졌다. 달천고개에 도착해 달천계곡 윗산으로 해서 내려간다.

 

이제 다시 처음 올라가던 넓은 시멘트 길을 만났다. 하산하는 사람, 이제 산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등산 온 사람들이 다슬기를 잡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산에 오르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이 갑자기 반갑게 인사하며 악수하는 모습이 보인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인 모양이다. 천주산이 어디인가. 동남쪽과 동북쪽은 창원시, 남서쪽은 마산시, 북서쪽은 함안군에 속하며 정상에서 3개의 시군이 만나지는 곳이 아닌가. 어디로부터 온 사람들인지 모르지만 산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산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산?! 나도 추억속의 나와 만나고 돌아간다. 봄이 질 때까지, 아니 진달래꽃이 핏빛으로 온 산을 물들이고 다 질 때까지 그렇게, 봄 산을 쏘다녔던 추억 속의 계집아이와 지금의 나는 계속 만나고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모든 봄 산들아, 선홍빛으로 물들이는 진달래꽃 산들은 사슴처럼 가볍게 뛰어 오르는 이내 마음의 발길이 너를 접수하노라.

 

*산행코스:달천공원주차장(무료주차장이다/11시)-허목비-달천약수터-천주산팔각정(12:30)-천주봉(12:35)-만남의광장(1시)-천주산용지봉(2시정각)-달천고개-허목비(4:22)-달천공원주차장(4:25)

*천주산 소재지: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덧붙이는 글 | 진달래꽃산행을 갈까, 벚꽃구경 갈까 망설이시는 분들이 있다면 창원 천주산을 소개하고 싶네요. 창원 천주산 오르는 입구 달천공원 일대에는 온통 하얀 꽃구름을 이룬 벚꽃이 활짝 만개해 등산객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진달래군락지 천주산 용지봉 일대에는 곧 만개할 진달래꽃봉오리들이 맺혀있어 곧 온 산을 꽃불을 지펴 상춘객들을 맞이할 것입니다. ...


태그:#천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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