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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과 사위 그리고 일오 집마당에서 배드민턴하고 있는 누나와 매형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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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오와의 만남

형을 축하하러 목욕도 하고 서울에 가서 사진관에도 들렀다.
▲ 형 졸업식날 형을 축하하러 목욕도 하고 서울에 가서 사진관에도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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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오는 우리집에 온 지 6년 5개월 된 세퍼트 개 이름이다.

잘 생기고 영리한 견우(진도개, 개로서는 집사람의 첫사랑)를 잃어버리고 크게 상심하여 다시는 개를 기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몇 개월이 지나자 전원주택에 나이든 부부만 사는 게 조금 외롭다 싶어 개를 한 마리 구하고자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급히 주인을 찾습니다'라는 문구를 발견하여 인연을 맺은 개가 일오(一悟)이다.

당시 일오의 이름은 '댄디'였다. 4개월 된 강아지가 어찌나 큰지 겁이나 접근하기 힘들었다.

나는 기 싸움에 밀리기 싫어 한 번 물릴 각오로 우리 안으로 들어가 손가락으로 '댄디' 눈을 가리키면서 "앉어!"를 연발하여 결국 손아귀에 집어넣었다. 집사람은 '댄디'가 너무 크게 짖으면서 우리 창살을 흔들어대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이게 일오가 그 좁은 집에서 살 수 없었던 이유였다.

일오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내 모습이 얼마나 안쓰러워 보였는지 집사람이 한 발짝 양보했다. "여보! 그 개가 그렇게 갖고 싶으면 데려오세요! 대신 나에게 개를 돌보라고 하지 말고 당신이 기르세요" 다짐을 한다. 집사람은 '댄디'가 부담스러워 기를 엄두가 나지 않은 모양이나 낙담한 내 모습에 생각을 바꾼 것이다.

나는 엄마 옆에서 놀았다.
▲ 엄마가 밭을 일구는 날 나는 엄마 옆에서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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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은 나에게 "여보 우리 일오는 참 이상한 개야!" 하면서 말을 붙여온다. 지금까지 길렀던 진돗개들과는 그 생활 습성이 너무 달랐던 모양이다.

우리집에 와서 일오가 된 '댄디'는 집사람이 가는 대로 졸졸 따라다닌 모양이다. 사뭇 따르니 정이 간다는 것이다. 그 뒤 일오는 집사람의 그림자가 되었다.

일오는 집사람이 외출하는지, 놀러 가는지, 잘도 안다. 집사람이 놀러 가면서 자기를 데리고 가지 않으면 대성통곡을 한다. 개를 길러 본 사람이면 개의 대성통곡 소리가 어떤지 알게 된다.

일오는 몸무게가 50㎏이 넘는 대형 개이다. 생김새 또한 위협적이다. 영화에서 선량한 주인공을 쫒는 이미지도 세퍼트를 무서워 하거나 싫어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실제로 세퍼트를 길러보면 세계의 명견 반열에 오를 만하다는 사실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아내와 일오, 산으로 산으로

혹시, 엄마가 맛있는 것 주시려나?
▲ 엄마를 기다리는 나 혹시, 엄마가 맛있는 것 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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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오가 우리집 식구가 되면서 우리와 일오 사이에는 무언의 약속이 성립되었다. 나나 아내가 마당에 있지 않는 한, 항상 묶여 있거나 집 뒤 울타리(일오를 위해 만든 7~8평 정도의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

대신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 같이 산책을 하거나 뒷산 등산을 한다는 것이다. 조금 과장된 표현일지 몰라도 집안에서 나나 집사람이 산책이나 등산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일오가 알아차린다.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으로 나설 때에는 일오의 설렘이 극에 달해 저도 주체를 못한다. 그런 일오를 바라보로라면 '저렇게도 좋을꼬?'라는 생각이 절로 들고 가끔 지키지 못했던 약속 때문에 미안해진다. 나와 집사람은 일오와 약속 덕분에 지속적인 산책과 등산을 하게 되었다.

시외로 등산을 갈 때면 캐러밴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가 일오의 지정석이다. 한 번은 경찰관 아저씨가 개를 앞자리에 태운 것은 불법이라며 차를 세웠다. 그러나 차 안의 좌석 배치를 들어다본 그 아저씨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참 좋아 보인다며 우리를 그냥 보내줬다. 이상한 차에 이상한 사람들이니….

나는 일오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산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지 않는다. 대부분 등산로가 아닌 한적한 길을 택한다. 세퍼트 습성인지 몰라도 일오는 산행 시 절대로 혼자서 앞서가지 않는다.

내 눈을 벗어나지 않은 거리 약 10m 정도 앞으로 나가면 돌아와 집사람 뒤를 돌아 다시 앞으로 간다. 즉, 10m 간격을 왕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나와 집사람은 일오의 보호를 받으며 산행하는 꼴이다. 일오의 이러한 습성 덕분에 야간 등반도 여러 차례 할 수 있었다. 보름달과 함께 능선을 걸었던 여운은 깊고 오래 남는다.

일오는 앞에서 오는 등산객을 만나면 길옆으로 비껴나 등산객이 지나갈 때 까지 앉아 있다. 나도 일오 곁에서 기다린다. 처음엔 머뭇거리던 등산객도 일오의 행동을 보고 대부분 안심하고 지나간다.

이 때 등산객으로부터 대부분 칭찬을 듣지만 가끔은 따끔한 질책을 받기도 한다. 그 때는 등산객에도 미안하고 또 일오에게도 미안하다. '그렇게 생긴 게 어디 네 죄냐? 다음 생에는 인간으로 태어나라'고 기원하는 수밖에 없다.

일오와 같이 살았던 일상생활

일오와 같이 마당에서 축구, 럭비를 하고 놀았던 즐거웠던 추억이 새롭다. 일오는 축구와 럭비 같은 공놀이를 매우 좋아한다. 일오를 곯려주려면 공을 두 개 가지고 놀면 된다. 공 한 개를 일오에게 뺏기면 다른 공을 찬다. 그러면 일오는 여지없이 헛갈리고 우리들에게 배꼽 쥐는 웃음을 선물한다.

한 번은 누나와 누나 직장동료 사이에 내기가 붙은 모양이다. "개가 농구공을 물어 터트렸다"고 말했다가 허풍쟁이로 몰린 모양이다. 실제 일오는 럭비, 배구, 축구, 농구공을 가지고 잘 놀았으며 농구공도 물어서 터트려 버렸다.

엄마랑 산에가는 것은 아주 기분 좋은 일이다. 특히 눈 오는 날은 더욱 좋지
▲ 눈이 많이 왔던 날 엄마랑 산에가는 것은 아주 기분 좋은 일이다. 특히 눈 오는 날은 더욱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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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오 때문에 집사람과 싸움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도 많다. 집안에서 내 목소리가 커지면 일오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정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미닫이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와 나와 집사람 사이에 들어앉는다.

이때는 거실 바닥이고 소파 위고 가리질 않는다. 일오가 가운데 버티고 앉았으니 싸움을 계속 할 수 없다. 나가라고 해도 엄마가 안정되어 저를 쓰다듬어 주기 전에는 나가질 않는다.

집사람이 집안에 개털이 너무 많다고 일오의 실내 출입을 금지시키기 전에는 식탁에서 조그만 파티(저녁에 고기 굽는 냄새)라도 열리면 현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와 식탁 옆 제 자리에 앉아 가족의 일원으로 제 몫을 즐겼다. 이 때문에 우리집 미닫이문은 일오의 발톱자국으로 성한 곳이 없다.

세퍼트 중에서도 일오는 큰 편이다. 큰 세퍼트가 200여 평 남짓한 전원주택에서 살기에는 너무 좁고 커다란 어려움 또한 상존하기 마련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이웃집 개가 발정했을 때이다. 일오는 묶여있어야 하고 '짱'은 그 윗집 수캐 '칸'과 놀아난다.

일오는 한없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도 안타까운 반응을 보이고 나도 이 점에 대해서는 일오가 납득하도록 설명해줄 수 없다. 나, 집사람 그리고 일오 우리 셋은 '짱'의 발정기간이 끝날 때까지 홍역을 치른다.

시랑헌에서 일오

내가 퇴직하면 집사람과 조금 한가로운 여생을 보내기 위한 목적으로 지리산에 터를 잡고 준비 중이다. 이 밑그림에는 일오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시랑헌은 일오가 장가 가고 제 가족과 마음대로 놀 수 있는 곳으로 구상 중이었다.

작년 추석 연휴 때부터 주말마다 다니는 지리산에서 일오는 마냥 행복해 했다. 저녁이 되어도 짖을 일이 없고 더욱이 종일 아빠와 엄마 옆에서 같이 있고 또 자주 심부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오는 심부름을 아주 좋아한다. 시랑헌은 내가 일하는 장소에서 상당한 거리에다 경사가 있기 때문에 볼 일이 있어 시랑헌까지 올라 다니기가 매우 번거롭다.

따분하다. 아빠가 심부름 시키시지 않나?
▲ 시랑헌에서 따분하다. 아빠가 심부름 시키시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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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으로 집사람에게 "일오에게 자동차 열쇠(타올, 장갑, 톱, 망치, 물통 등 일오가 가져올 수 있은 것이면 뭐든지)보내소" 한 통화면 곧 바로 내 앞에 자동차 열쇠가 배달된다.

시랑헌에는 일오가 들어가서 물놀이 할 수 있는 연못이 있다. 일오는 물놀이를 무척 좋아한다. 등산 때에도 물을 만나면 한 겨울이 아닌 바에는 발이라도 담가본다.

여름철에는 아예 물 속으로 들어가 한 차례 수영을 하고 나온다. 일오를 바라보면서 나와 집사람은 손자들 노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기분을 미리 맛보곤 했다.

올 봄에는 계속하여 터를 닦아야 했음으로 주말에 월요일 출근을 위해 집사람을 시랑헌에 남겨두고 혼자서 대전으로 돌아올 때에는 일오가 그렇게 믿음직스러웠고, 집사람이 혼자 산속으로 나물을 캐러 가도 그 곁에 있는 일오 때문에 걱정이 없었다. 일오는 엄마 곁에 있다가도 내 휘파람 소리를 들으면 즉시 가장 가까운 단거리로 나에게 달려온다.

아!아! 일오야

외국에서 수입된 개들은 몸체가 큰 개일수록 질병에 약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일오가 집에 오고 나서 4~5년 동안은 심장사상충약 등 각종 예방약을 매월 주기적으로 먹이거나 주사했다. 또, 항상 일오에게 신경이 가 있어 조그만 증상에도 곧 바로 동물병원을 갔기 때문에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을 미리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매 주말마다 지리산으로 일하러 다니면서 너무 바쁘고 피곤한 일정 때문에 거의 일년이 넘게 아무런 약을 먹이지 못했다. 잘 지내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하였지만 그 사이 일오는 죽을 병에 걸리고 말았다.

오는 6월 9일 지리산에 간다는 마음으로 들떠서 집에 돌아와 보니 일오의 거동이 평소와 많이 다르다. 코를 만져보니 말라있고 열이 있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난 10일 아침 4시 시랑헌으로  가는 길에 24시간 진료하는 동물병원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아스피린 한 알을 먹이고 잠자리에 들었다.

일오가 이상하다며 깨우는 집사람의 독촉에 놀라 일어났다. 일오의 상태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도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오는 본자리로 돌아갔다. 10일 새벽 2시 40분이다. "심장사상충에 감염되어 이미 어쩔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라는 수의사의 말이 못이 되어 가슴에 박힌다.

오열하는 집사람을 달래면서 체온이 식어가는 일오를 싣고 서둘러 시랑헌에 도착하니 새벽 4시 30분이다. 굴착기를 몰고 시랑헌 뒷길로 오르내리면서 일오가 묻힐 자리를 찾아보나 마땅한 자리가 없다. 밖으로 나온 집사람과 상의하다가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그래! 시랑헌 문을 열고 나오면 가장 잘 보이고, 가장 햇볕이 잘 들고, 가장 전망이 좋은 곳 중에서 시랑헌에 가장 가까운 곳에 묻어주자. 기준을 정하고 자리를 물색해보니 눈에 들어오는 자리가 있다. 나는 바로 그 자리에 굴착기 삽을 꽂았다.

토요일은 집사람과 일오를 애도하며 보냈다. 집사람은 눈이 퉁퉁 붓고 핼쑥해졌다. 아마 일오의 죽음을 통해 나의 죽음을 미리 본 모양이다. 자꾸 "일오가 가도 이런데…" 하면서 말꼬리를 흐린다. 나와 집사람은 이번 일오를 통해 가장 가깝게 죽음의 실체에 근접한 것 같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시랑헌 문을 열고 나오면서 "일오!"를 불렀지만, 그 말 잘 듣던 일오의 모습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게 죽음이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건 너무 잔혹하다. 일오가 잠들어 있는 쪽에서 전해오는 잔잔한 메시지가 가슴을 흔든다.

한곳에 집중하시면 다른 것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빠의 성격 때문에 저는 할 수없이 아빠 곁을 떠납니다.아빠의 요즈음 혈당관리도 무리한 산일 때문에 안 되고 있잖아요? 아빠! 중도(中道)를 견지하시고 건강 조심하세요!

오! 나는 너를 내 가슴에 묻었구나! 정말로, 너는 내 복에 과한 존재였더란 말이냐? 일오야! 이 아빠를 용서하고 잘 가거라! 진정으로 엄마와 나는 너의 명복을 빈다. 

덧붙이는 글 | 개를 키우다 실패한 쓰라린 경험담입니다.



태그:#세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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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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