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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06년 4월 8일 오전 서울 종로타워 33층 레스토랑에서 내려다본 종로거리.
 사진은 2006년 4월 8일 오전 서울 종로타워 33층 레스토랑에서 내려다본 종로거리.
ⓒ 오마이뉴스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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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수리공 김씨

오늘도 어김없이 하늘은 회색 구름이 덮고 있다. 거리에는 구름과 짝을 맞추듯 회색 빛 연기가 자욱하다. 20여년 전부터 서울은 햇빛을 잃었다. 일 년 내내 거리를 뒤덮은 스모그 때문에 사람들은 산소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닌다. 돈 깨나 있는 사람은 서울을 떠나 공기 좋은 곳으로 죄다 이주한 지 오래다. 청와대도 20년 전, 시민들의 원성을 뒤로 한 채 강원도 원주로 옮겼다.

"에유 이놈의 날씨."

카페 문을 들어서며 김씨는 거칠게 마스크를 벗었다. 현재 나이 60세의 김씨는 어린 시절의 서울을 기억하고 있다. 5월이면 나뭇잎에 빛나던 햇살, 공원의 푸른 잔디밭, 맑고 투명한 공기. 40년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서울도 변하고 자신도 변했다. 앞날이 창창한 명문대 학생에서 지금은 소위 C급, 정식 명칭 '대한민국 광우병 특별관리 시민'으로 전락했다.

"주스 아니, 그냥 물 주세요. 거기에 오렌지 맛 나는 알약 조금."

웨이터에게 주문을 하고 밖이 훤히 비추어 보이는 통유리 밖을 쳐다보았다.

"연락 주셨던 김 선생님이시죠?"

김씨 앞에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잘생긴 40대 남자가 자리를 잡았다.

"심재명 선생님이시죠? 저희 어머니가 아무래도 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2008년, 절대로 발병하지 않는다고 했던 정부의 장담과는 달리 2018년경부터 인간 광우병 환자는 계속 나타났다. 정부는 부랴부랴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했다.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한 모든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했지만 모두 늦은 결정이다.

이미 광우병 환자로 의심되는 치매 환자들은 줄어들줄 몰랐다. 8공화국 대통령은 특별법을 발표하였다. '광우병에 걸려 있을 확률이 있는 시민들은 나라에서 특별히 관리하겠다'라는 법이었다. 특별한 관리란 여행도, 헌혈도, 병원의 수술도 금지하는 것이었다. 수술 기구에 광우병 감염 인자인 프리온이 전염된다는 우려 때문에 특히 '수술'은 엄격하게 금지했다.

"집주소와 제가 갈 시간을 알려주시지요."
"의사 선생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그때였다. 까만색 경찰복을 입은 사내 두 명이 카페 문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주민번호 C21111765 광우병 특별관리 시민 김인수 그리고 의사 심재명 모두 현행법 위반으로 체포합니다. "
"아니 뭐야?"

순식간에 카페 안은 시끄러워졌다. 웨이터는 김씨가 마셨던 컵을 얼른 집어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카페 통 유리 바깥에는 사람들이 붙들려가는 두 사람을 구경하고 있었다.

고등학생 다영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다영이는 시끄러운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어떤 늙수그레한 남자 두 사람이 경찰에 붙들려서 카페 문을 막 나서고 있었다.

"C등급 주제에 수술 받는다고 했대."
"아무리 의료기기를 없앤다지만 옮을지 어떻게 알아?"

구경하던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그 말을 들은 다영이는 피식 웃었다. 올해 18살 다영이는 얼마 전 주민등록번호를 받았다. 'C34000000' 엄마와 아빠처럼 어김없이 자신의 번호 앞에는 'C'자가 선명하게 붙었다.

미국산 쇠고기는 값이 저렴했다. 과자나, 화장품, 사료 업체들은 앞을 다투어 미국산 쇠고기를 썼다. 갈빗집 같은 대중음식점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때도 돈이 있는 부자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청정 한우나, 유기농 제품 등만 골라 썼다.

그래서 광우병 위험 특별 관리 대상자로 선정된 사람들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미 뱃속에서 프리온이 전염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이들의 자녀들도 모두 C급 시민이 되었다.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요금이 싼 버스는 주로 C급 시민들이 애용했다. 옆 집 사는 친구와 함께 다영이는 버스에 올랐다.

"다영아! 너 미팅 안 나갈래? 괜찮은 A급 남자애들 있다더라! 넌 얼굴도 예뻐서 인기 많을걸?"
"우리 같은 C급이 A급을 만나? 잠깐 데리고 놀면 몰라도 우리랑 결혼하려고 하겠니? 걔들이…."

친구는 그 말에 까르륵 웃었다.

"나이가 몇인데 결혼을 생각하니. 하여튼…."

잠깐 버스가 덜컹하는 사이 남자 아이 몇 명이 올라탔다. 이런 버스를 탈 애들 같지 않게 잘 생기고 키도 훤칠한 아이들이었다. 그깟 남자쯤이야 하고 무시하던 다영이도 자꾸 눈길이 갔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C급 아이들치고 키가 큰 남자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 어쩌다 키가 좀 큰 아이들도 볼품없이 삐쩍 말라 있기 일쑤였다.

5월 2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제15차 촛불문화제에서 한 여학생이 광우병 미국소가 그려진 마스크를 쓰고 있다.
 5월 2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제15차 촛불문화제에서 한 여학생이 광우병 미국소가 그려진 마스크를 쓰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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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수입을 중단하고, 쇠고기 사료를 쓴 돼지, 닭, 소를 모두 도살해버리자 고기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청정 한우 농가나 뉴질랜드나 호주는 이때다 싶어 고기 가격을 크게 올렸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부잣집들뿐이었다. 집이 가난한 아이들은 고기를 구경조차 못했다. 한창 자랄 나이에 제대로 먹지 못한 아이들은 키가 작고 삐쩍 말라 볼품이 없었다

"저기요!"

다영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리 보아도 꿈에서 몇 번 본 듯한 얼굴이었다. 남자 아이는 빤히 다영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피식하고 웃었다.

"야, 너 딱 보니 C아니냐? 나 A거든. 버스 구경이나 하려고 탄 거야."

다영이는 깜짝 놀라 얼굴이 하얘졌다.

"어쩐지 키도 쪼그마하고, 얼굴은 푸석푸석하더라니. 주제 좀 알아라!"

옆에 있던 그 남자 아이의 친구들이 킥킥대고 웃었다. 다영이는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볼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22살 인형이

늦은 점심을 먹은 인형이는 버스에서 한참 졸고 있었다. 어디선가 여자 우는 소리가 들려 퍼뜩 잠에서 깼다. 얼굴이 예쁘장한 고등학생 아이가 차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뭔 일이 있었나 휘휘 둘러보는 사이 전화가 왔다.

"야, 어서 튀어와, 벌써 차 왔어!"

급히 전화를 끊은 인형이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약속 장소로 뛰었다. 길거리에서는 한창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위험한 C급 시민들을 수용소에 가두어라!"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사람들이 힘껏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인형이는 담담하게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올해 22살 난 인형이는 젊은 나이답지 않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 어차피 C급 시민인 자신과 결혼해 줄 여자도 없고, 언제 발병할지 모르는 광우병 위험인물인 자신을 써줄 번듯한 회사도 없다.

"이 더러운 인생, 돈이나 쓰다 가지 뭐."

그런 인형이에게 요즘 짭짤한 돈벌이가 생겼다. 부잣집에서 기르는 소나 돼지를 도축하는 일이었다. 부자들은 공기 좋은 시골에 정원이 딸린 커다란 집을 지어 살았다. 정원에 각종 유기농 채소를 키우고 소나 닭, 돼지를 키웠다. 이제 가정부는 농사를 지을 줄 아는 농학과 출신들, 가축을 키울 줄 아는 축산학과 출신들만 일하는 고급 일자리가 되었다.

하지만 가정부들도 직접 도축까지 하기는 어려웠다. 부자들은 고기를 먹고 싶을 때마다 따로 도축하는 사람을 불러다 썼다. 인형이는 요즘 소 잡아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졌다.

"오늘은 사모님이 소를 2마리나 잡으라고 하십니다. 서두르십시다."

의사 사모님이 보내준 차를 타고 탁 트인 외곽으로 나왔다. 서울 바깥은 별 천지였다. 어마어마한 정원이 있는 부잣집들이 중세의 성처럼 우뚝 서있었다. 오염 차단망까지 갖춘 커다란 집으로 차는 미끄러져 들어갔다.

"어서 와요! 아줌마, 이 청년한테 소 좀 안내해! "

볼에 붉은 혈색이 도는 사모님은 턱으로 인형이를 가리켰다. 인형이가 가정부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받는 동안, 사모님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어머 어머! 김 의원님, 오늘 저희 집 소 잡아요. 네 쇠고기 좀 들고 가시라고요."

그 옆에는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아들이 연신 닭 강정을 먹고 있다.

"엄마 오늘 어떤 C급 여자애가 나한테 관심을 보이더라."
"뭐라고 이 녀석이 또 버스 탔구나! 그러니 더러운 애들이 꼬이지."

드디어 인형이는 가정부가 쥐어준 잘 간 칼을 들었다.

'오늘은 어떤 소가 저 세상으로 가게 될까?'

인형이는 이름도 모를 소에게 잠시 기도하고 정원으로 걸어갔다.

의사 심재명

"성함이 심재명. A급 시민이네요."

경찰은 잡혀온 심재명을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C급 시민을 수술하거나 수술하려고 한 의사들은 의사면허가 취소된다.

"아따 배운 만큼 배운 분이, 돈이 부족해서 그러지는 않았을 테고."

심재명은 말 대신 조용히 창밖만 쳐다보았다. 그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A급 시민이다. 의사라는 남들 부러워하는 직업에, 재벌집 딸인 부유한 아내도 있다. 타고난 잘 생긴 외모 덕분에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오래 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로는 웃음을 몰랐다. 밝고 사랑스러웠던 그녀가 이상한 증상을 보인 것은 결혼식을 한 달 앞두었을 때였다.

언제부터인가 말을 횡설수설 하더니 점점 사소한 일도 기억하지 못했다. 인간 광우병이었다. 집안에서는 얼른 파혼을 하라고 일렀다. 정부는 그녀를 수용소에 빨리 넘기라고 명령했다. 광우병 환자들을 한 데 모아 가두었다가 죽으면 묻지 않고 우주로 방출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땅이 오염될지도 모른다고 일부 과학자들이 사체 우주 매장령을 주장했다.

"살려야 해, 이러는 게 어디 있어. 안 돼! 한 번 노력이라도 해보란 말이야."

아파하는 그녀를 끌어안고 오열했던 그는 몰래 밤도망을 했다. 점점 의식을 잃고 괴로워하다 죽은 그녀의 시신을 멀리 자신의 별장에 묻었다.

그가 다니던 종합 병원은 이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국회의원 아버지 덕에 겨우 의사 면허는 유지했지만 별장에 있던 그녀의 시신은 우주로 방출해야 했다.

그 뒤로 심재명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 가끔 그녀가 있을 밤하늘을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선 본 여자와 덜컥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 기계처럼 살아가던 어느 날, 우연히 그녀를 닮은 C급 환자를 알게 되었다. 돈 몇 푼 받고 몰래 치료해주었다. 짜릿했다. 그렇게 C급 환자들을 수술해주고 나니 사는 보람도 생겼다. C급 시민들 가운데 심재명은 슈바이처라 불리는 나름 유명 인사였다.

"의사 선생님, 부인이 보통 분이 아닌 모양이네요. 방면입니다.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

어깨를 툭 치는 경찰의 손을 뿌리치고 심재명은 밖으로 나왔다. 어스름해질 때까지 거리를 메운 희뿌연 연기는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여보 나야, 당신 정말 이러기야?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
"얼른 들어와! 오늘 소 두 마리 잡았어. 의원님 내외 초대하기로 했으니 얼른 와! "

아내의 재촉하는 목소리를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그는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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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웹진 줌마네(www.zoomanet.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쇠고기 , #광우병, #미래, #가상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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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 라는 모토가 신선했습니다. 과거와 달리 각 블로그와 게시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시대에는, 정보의 생성자가 모든 이가 됩니다. 이로써 진정한 언론과 소통의 자유가 열렸다고 생각합니다. 또 변의 일상적인 이야기도 알고 보면 크면 크고 중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여성, 특히 아줌마들의 다양한 시각, 처한 현실 등에 관심이 많고, 이 바께 책이나 정치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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