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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3일,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관람하는 가운데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아리랑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07년 10월 3일,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관람하는 가운데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아리랑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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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인원 10만명이라는 전대미문의 규모. 더욱 놀라운 것은 그 10만 명의 인원이 1시간 20분의 공연시간동안 마치 한 몸이라도 된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마치 동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2만명의 배경대(카드섹션)는 보는 사람의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눈치 챘겠지만 이미 적지 않은 관람자와 언론을 통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아리랑> 공연에 관한 이야기이다.

2007년 8월에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공연으로 등재되기도 한 <아리랑>은 서울에서 승용차로 몇 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지금은 결코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곳, 평양 능라도의 5월1일경기장에서 열린다. 1989년 5월 1일에 완공된 이 경기장은 관객 1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10만 명의 일사불란한 몸짓, 아리랑

이렇게 우리의 지근거리에서 인류의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엄청난 공연이 벌어지고 있지만, 엄청난 규모라는 것 외에 우리는 의외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지구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더욱 옥죄는 국가보안법은 인류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우리 민족의 공연 앞에서 눈과 귀, 그리고 입을 가로막게 만든다.

언어도 다르고 우리의 정서와도 거리감이 있는 외국의 뮤지컬이나 오페라 같은 공연들은 하루가 멀다고 무대에 올려지는 데 반해, 우리의 언어와 생활에 맞는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는 학교에서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할 정도로 문화적 사대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 우리 남쪽 사회의 모습이다.

그에 반해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한을 담은 민요 <아리랑>을 종자로 삼아 전 세계가 놀랄만한 예술공연작품을 만들어 낸 북한의 업적은 사상과 이념의 차이를 떠나서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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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은 그 형식상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냈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이 바로 그것인데, 이 장르가 지구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0년 10월 조선로동당 창건 55돌 행사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을 통해서였다.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을 준비하면서 김정일 조선로동당 총비서는 "규모는 10만 명, 형식은 집단체조와 예술형식을 배합한 형식, 내용은 특색 있게"라는 지시를 내렸다. 특히 집단체조와 예술형식을 배합한다는 기획은 당시로서는 유래가 없는 아이디어였다.

집단체조는 크게 체조대와 배경대(카드섹션),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집단체조'에 대해서 북한의 사회과학출판사에서 나온 <조선말대사전(2)>(1992)은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고 있다.

"수천 수만 명의 큰 집단이 참가하여 진행하는 높은 사상성과 예술성에다 세련된 체육기교가 배합된 새 형의 종합적인 체육예술, 체조와 무용률동을 기본표현수단으로 하고 이에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예술적 수단들이 유기적으로 통일되면서 일정한 주제사상에 근거하여 하나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화폭을 이룬다. 집단체조는 청소년 학생들의 체력을 증진시킬 뿐 아니라 그들 속에서 집단주의 정신을 기르고 조직성과 규률성을 키워주며 예술적 소양도 높여준다."

씩씩하고 힘 있고 가슴 후련한 집단체조와 아름답고 우하하고 황홀한 예술공연을 이질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범벅이 되지 않도록 배합하는 것이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로동신문> 2002년 7월 25일자에 나온 다음과 같은 <아리랑> 공연 평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의 완벽한 결합, 여기에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형식에서 이룩한 거대한 성과가 있으며 한 민족의 장구한 력사를 대서사시적화폭에 손색없이 담을수 있은 근본담보가 있다…(중략)…하나의 작품에서 집단체조도 살리고 예술공연도 살린것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의 가장 중요한 형식적 특징인 동시에 작품창조에서 이룩한 커다란 성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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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성과를 내는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다. 인민예술가 김해춘이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의 준비과정에 대해 <조선예술> 2000년 12월에 기고한 글을 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집단체조와 예술형식의 배합! 이것은 그 어느 나라 예술사전에도 없고 세계 무용사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전혀 새롭고 독창적인 무용리론이였다…(중략)…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은 서로의 특성이 있으므로 체조를 예술화해도 안 되며 그렇다고 예술을 체조화해도 안 된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한다는데로부터 우리 안무가들은 작품창작초시기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한번씩 엇바꾸어 가는 식으로 장과 경을 구성하였다. 이렇게 장과 경을 구성하고 보니 작품전반의 사상주제적내용이 하나의 련쇄된 고리에 꿰여 지지 않을뿐아니라 감정이 승화되지 않고 토막토막 끊어 지는 현상이 나타났다…(중략)…깊이 연구하고 사색을 거듭하던 끝에 참으로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하나로 결합시킬수 있는 중요한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에서 너무도 잘 어울리며 통용되는 <률동>이라는것이다. 예술공연은 더 말할것도 없고 집단체조도 체조와 체육적기교를 위주로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률동성이 원만히 보장되여야 사람들속에 커다란 정서적감흥을 불러 일으킬수 있다. 우리 안무가들이 너무도 많이 써오던 말, 너무도 많이 들어오던 <률동>이라는 평범한 이 말이 그때에는 정말 귀중한 보물처럼 여겨 졌다."

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새로운 장르를 열다

<아리랑>은 형식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내용적 측면에서도 '특색 있는' 시도를 했다.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쉽게 부를 수 있는 민요 <아리랑>을 '종자'로 삼아 전체를 관통하는 구성을 보여준다.

환영장

서장 아리랑

제1장 아리랑 민족
- 1경 두만강을 넘어
- 2경 조선의 별
- 3경 내 조국
- 4경 우리의 총대

제2장 선군아리랑
- 1경 내 조국의 밝은 달아
- 2경 활짝 웃어라
- 3경 내 나라 북소리
- 4경 인민의 군대

제3장 아리랑무지개
- 1경 이선남폭포
- 2경 행복의 락원
- 3경 오직 한마음

제4장 통일아리랑

종장 강성부흥아리랑

 아리랑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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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장에서는 배경대가 먼저 눈길을 끌기 시작한다. 한 가운데에 '조선·평양'이라는 글자를 두고 그 주위에는 평양시내 각 구역 이름 또는 배경대에 참가하는 학교 이름으로 지휘자들에 맞춰 인사를 한다. 노래 <반갑습니다>가 울려 퍼지면서 대동강변에서 쏘아올린 폭죽들이 하늘을 수놓고 한복을 차려입은 무용수들이 땅을 수놓는다.

환영장이 끝나면 조명이 꺼지고 서장 '아리랑'이 사직되는데 민요 <아리랑>이 울리면서 무대의 독창가수에게 집중조명이 쏟아진다. 배경대는 손을 잡고 어디론가 떠나가는 사람들의 영상이 비친다. <아리랑>의 장단이 자진모리로 바뀌면서 운동장 위에는 햇살 모양의 군무가 펼쳐지고 배경대에도 태양이 떠오르는 그림이 만들어진다. 곧이어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라는 제목이 배경대의 햇살 그림 위에 새겨지며 본 공연이 시작된다.

제1장 아리랑민족은 일제시기 민족의 수난과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무장투쟁을 그리고 있으며, 제2장 선군아리랑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를 나타내는 장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삶터를 그리고 있는 제3장 아리랑무지개를 지나 제4장 통일아리랑에서는 민요 <아리랑>이 두 번이나 등장할 정도로 핵심적인 내용을 이루게 된다. 제4장은 남성배우의 다음과 같은 낭독으로 시작된다.

이 세상 이 하늘아래 오직 단 하나의 갈라진 땅
갈라진 나라 갈라진 아리랑민족이 있다

반세기가 넘는 분단 세월에 백발이 된 어머니가
아들의 모습조차 알아볼 길 없고
헤어진 아들이 젖을 먹여 키워 준 어머니마저 몰라보게 된
이 비극의 땅

예로부터 화목하게 살아온 우리 민족이 하루 아침에
생떼같이 갈라져 남남이 되어가는 이 땅

세계의 량심이여 대답해 보라
외세가 가져다 준 이 비극으로 하여
우리 아리랑민족이 언제까지 이렇게
갈라져 살아야 하는가

배경대가 6.15 공동선언을 그려내고 노래 <우리는 하나>가 흘러나오고 나서, 곧이어 배경대에는 '언어도 하나, 피줄도 하나' 등 형상이 펼쳐진다. 이어지는 종장 강성부흥아리랑에서는 전 출연자가 대거 등장하는 가운데 다양한 춤이 펼쳐지고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으며 노래 <반갑습니다>로 전체 공연이 끝을 맺는다.

전체적으로 민족의 한과 슬픔과 수난을 <아리랑>으로 상징화하였고, 그것이 행복의 <아리랑>으로, 강성부흥의 <아리랑>으로 승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아리랑>의 출연진은 배경대, 체조대, 전문예술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배경대는 주로 15~16세의 평양 시내 고등중학교 4~6학년생들이다. 이들은 행사 시작 몇 달 전부터 방과 후에 2시간씩 '배경책'에 익숙해지기 위한 연습을 한다. 이것이 익숙해지면 배경대 지휘자의 구령에 따라 체조대와 음악에 맞추기 위한 훈련을 한다.

대략 2만 명 정도가 배경대로 출연하며 각 학교당 280명 쯤 된다. 전체 공연인원 중 전문예술인은 10%도 되지 않으며, 나머지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청소년학생들과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청년이라 하니 이들이 보여주는 전문가 수준의 공연 내용이 새삼 놀랍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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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통일 열망을 아리랑에 담다, 우리의 화답은?

<아리랑> 공연은 기술적 측면에서도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영사기(빔 프로젝터)를 이용한 초대형 영상이 매우 인상적이다. 배경대에 영사기를 비추어 영화화면을 표현하는 방식인데, 준비하는 데에는 매우 큰 어려움이 따랐다. 인민예술가 황룡수가 <조선예술> 2000년 12월호에 기고한 글에는 이러한 어려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대형환등과 대형영사기에 의한 영화화면은 그 실천에서 최첨단과학기술의 성과를 도입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였다. 화면길이 140m, 높이 60m, 영사거리 210m 이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였다. 여기에는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어려운 문제들이 수많이 제기되였다. 영사막이 따로 없이 배경책에 비치는 조건에서 백색도를 보장하는 문제, 배경대가 수직으로 되어 있지 않고 사선으로 누워 있는 조건에서 화면의 균형을 보장하는 문제, 배경대에 생기는 이음짬들을 해결하는 문제, 영사거리가 먼 조건에서 대형환등기 3대, 대형영사기 3대를 동시게 비쳐 그 밝기와 화면의 선명성을 보장하는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수많이 제기되었다. 처음 이것을 시작할 때 그것은 전혀 불가능하며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아리랑>과 같은 형식을 취한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이 당창건 55돌 행사의 일부로 기획되었다면, <아리랑>은 국가행사로부터 독립된 독자적 공연 기획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2002년에 김일성 주석 탄생 90돌과 조선인민군 창건 70돌을 맞아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아리랑>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마무리하고 2000년대 새롭게 '강성대국'으로 나아가고가 하는 북의 염원을 담은 예술작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주로 '돈'이라는 물질적 유인을 통해 사람들을 일하게 만들고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그래서 '돈'을 많이 소유한 자본가 계급이 그 사회의 주인이 된다). 반면에 사회주의 사회인 북에서는 물질적 유인보다는 정치사상적인 유인을 통해 대중들을 일하게 만들고 특정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북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대중들을 일치단결된 목표로 나서게 하기 위해 선전과 선동술이 매우 발전하게 되며, 특히 예술이라는 분야는 그러한 기능을 하는 중요한 분야가 된다.

생활에 필요한 의료나 교육, 주거 등의 기본적인 서비스가 국가에 의해 제공되는 사회에서는 물질적 요인은 큰 위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자본주의 사회의 생리에만 익숙해진 사람에게 이러한 문화는 생경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아리랑>은 그러한 사회주의 사회에서 발현되는 집단주의가 사회 전체의 문화로 되었을 때야 가능한 예술작품이다. 북이 <아리랑>과 같은 공연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은, 북의 대중들이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지향하고 나를 생각하기에 앞서 우리를 생각하는 사회주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음을 보여준다.

북의 동포들은 <아리랑> 공연을 통해 자신들이 살아온 삶과 앞으로 살아나갈 삶의 모습을 사회주의적 집단주의에 입각한 거대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혹자는 이것이 체제선전이고 강제노동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북의 동포들은 '돈'이 아닌 다른 이유로 <아리랑> 공연을 만들어 냈다.

<아리랑>은 그 내용의 구성상 명백하게 우리 민족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북의 동포들은 자신들의 통일에 대한 염원을 10만 명이 펼쳐내는 1시간 20분간의 장엄한 공연예술에 담아내었다. 어렵고 힘들어도 예로부터 춤과 노래로 승화시킬 줄 아는 우리 민족의 전통답게 북쪽 동포들이 <아리랑>을 통해 자신들이 겪은 어려움을 통일의 의지로 승화시켰다.

우리는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외세에 의해 분단되었다. 이것은 남쪽이든 북쪽이든 간에 이미 공유하고 있는 상식이다. 그리고 이 국토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외세는 '주한미군'이다. 북쪽 동포들이 <아리랑>을 통해 보여준 통일에 대한 열망에 우리는 무엇으로 화답해야 할까?


태그:#아리랑, #집단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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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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