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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라는 말은 정겹다. 우선 말 자체의 느낌이 예쁘다. 또 제주도 곳곳을 여행할 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나지막하면서도 아름답고 부드러운 선의 다양한 오름의 파노라마는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푸근한 심성과 삶을 보여준다.

거문오름 정상에 서면 수많은 오름들이 펼쳐진다
 거문오름 정상에 서면 수많은 오름들이 펼쳐진다
ⓒ 민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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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도 그러한 많은 제주의 오름 중의 하나이지만, 또한 특별한 오름이기도 하다. 28만 년 전 화산 폭발로 거문오름이 만들어졌는데, 이때 흘러내린 막대한 용암이 7㎞에 이르는 긴 협곡을 만들고, 그 위에 울창한 자연림을 형성하는데 이것이 선흘 곶자왈이다. 이곳은 난대, 온대식물이 공존하는 독특하고도 다양한 식생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용암류는 지표면 하부에는 거대한 용암동굴계를 형성했는데 만장굴을 비롯한 벵뒤굴과 김녕굴, 용천동굴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지형적, 생태적 가치로 올해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거문오름은 일제 강점기 전쟁 기지로서 당했던 고난과 수탈, 4·3항쟁의 비극과 아픔, 삶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거문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한라산
 거문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한라산
ⓒ 민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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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 마지막 날.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선흘2리 주민 일동"

우리는 주민들의 자부심을 담은 플래카드의 환영을 받으며 거문오름의 탐방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오와 열을 딱 맞추어 심은 울창한 삼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거문오름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 삼나무는 70년대 산림녹화를 하면서 심은 것이라 한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더위 속에 비교적 이른 오전 시간인데도 벌써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등에는 땀이 줄줄 흐른다. 내가 햇볕 가리개를 얼굴에 쓰고 두 눈만 내놓은 것을 보고, 제주도 토박이인 고 선생은 "게릴라처럼 얼굴이 그게 뭡니까? 좀 있다 숲에 들어가면 그거 필요없습니다"하며 일갈한다.

거문오름 정상에서 내려다 본 곶자왈
 거문오름 정상에서 내려다 본 곶자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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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피어 있는 며느리밑씻개, 범꼬리풀 등 야생화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본격적인 거문오름 탐방로로 들어섰다. 곶자왈의 숲속으로 들어섰다. 크고 작은 나무들과 넝쿨식물들이 우거진 숲 속은 울창하고 시원했다. 고 선생의 말대로 햇볕가리개가 이제는 필요없었다. 삼나무 숲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경사진 숲을 오르다 보니 벌써 정상.

거문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동쪽방향
 거문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동쪽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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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에는 흰구름이 떠가는데, 선명하게 자태를 나타낸 어머니의 품과 같은 넉넉한 한라산과 멀리 길게 펼쳐지는 부드러운 곡선의 오름의 대파노라마는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푸른 바다와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마을과 밭은 평화롭기만 해 보였다. 거문오름에서 폭발해 흐른 용암은 길게 흘러 멀리 해안까지 이어져 땅속으로는 용암동굴계를 형성하고, 바깥 쪽으로는 곶자왈이라는 숲을 형성했다. 분화구 안쪽은 곶자왈과 삼나무숲이 선명하게 구분되어 우거져 있었다. 이제 우리는 안쪽 사면, 저 곶자왈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곶자왈 탐방로 숲으로 들어섰다
 곶자왈 탐방로 숲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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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선택한 탐방로 A코스는 분화구 안쪽 동쪽 사면을 주로 탐방하는 코스다. 용암류가 흐르면서 형성된 용암협곡을 지나는데 작은 용암동굴을 볼 수 있었다. 몇 명 정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규모부터 깊고 넓은 것까지 다양한 동굴들은 4·3항쟁 당시 도피처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희귀식물인 식나무, 붓순나무 군락을 비롯한 양치식물들과 각종 활엽수림을 지나다 보니, 사람이 죽으면 향 대신 사용했다는 상산나무 숲도 보이고, 물감을 얻는 데 사용했다는 쪽도 있었다.

쪽 군락지
 쪽 군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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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을 만드는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와 숯가마터를 지나니, 곧 이어 일본군 갱도진지와 일본군의 주둔지였다는 넓은 터가 나타났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은 제주도를 최후의 전쟁기지로 삼았다. 이곳에도 여단 규모의 일본군이 주둔했는데 병참도로까지 만들어 군수물자를 수송했다고 한다. 이런 시설들을 모두 제주도민들을 강제동원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숯가마 터
 숯가마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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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갱도 진지
 일본군 갱도 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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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거문오름에서 가장 신기하고 기억에 남는 것은 곳곳에 산재한 '풍혈'이었다. 천연 에어컨이라고나 할까? 숲속을 헤치고 가다 어디선가 냉기가 흘러오는 것을 느끼고 발걸음을 멈추면 어김없이 거기엔 풍혈이 있었다. 땅속의 숨골로부터 새어나오는 시원한 바람은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지루할 틈도 없이 전개되는 숲과 인간의 이야기를 함께 하다보니 어느새 탐방코스가 끝나고 처음 들어올 때의 초원이 다시 나타난다.

동굴에서 나오는 바람 때문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 풍혈 동굴에서 나오는 바람 때문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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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하늘이 어우러진 숲
 꽃과 하늘이 어우러진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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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8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태그:#거문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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