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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 시골표? 검은 콩국수 만들기
ⓒ 야마다다까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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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격주마다 강화도에 있는 시댁에 다녀온다. 시댁에 갈 때마다 '어머니께 무슨 음식을 해드려야 좋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시골에선 고기를 잘 먹지 않으니, '고기를 사갈까?'라고 생각하다가도, 날이 더운 여름엔 고기보단 시원한 국수가 좋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근데 문제가 있다. 어머니가 냉면 같은 것은 잘 안 드시기 때문이다. 언제가 내가 일본풍 메밀국수를 만들었을 때 "괜찮다~"라며 드셨지만, 국수보단 밥을 좋아하시는 게 눈에 보인다. 그런데, 국수임에도 좋아하시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콩국수.

지난 10일에도 어머니는 새벽 일찍 밭으로 향하셨다. 어머니가 밭에서 일을 하실 때 쯤,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는데, 어머니 집 근처에 사시는 아주머니셨다. 그분은 어머니와 함께 '방문 목욕 서비스'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방문 목욕 서비스'는 사회복지 서비스의 일종인데, 봉고차로 마을 어르신들을 목욕탕까지 모셔다 주는 것이다.

아침부터 더우셨는지, 어머니는 "낮엔 더울 것 같으니까 콩국수나 먹자"며 '방문 목욕 서비스'를 하러 나가셨다. 그렇게 말씀하신 어머니는 남아 있던 콩을 물에 담가 놓고 가셨지만, 혼자 남은 난 조금 걱정이 됐다.

콩국수 만들기, 콩을 먼저 삶는 거였나?

왜냐하면 내가 마지막으로 콩국수를 만든 건 지난해 여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시댁에 손님이 오셨었고, 손님으로 오신 남편 마을 선배들은 내가 만든 콩국수가 "참 맛있다"며 그릇을 다 비우고 갔지만, 만들어 본 지 너무 오래돼 만드는 방법이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일단 물에 담가 불려 놓은 콩들을 믹서로 갈았다.

먹성이 좋은 3살 막내 딸아이는 엄마가 뭔가 만들고 있다는 것을 눈치라도 챈 듯, 자기가 열심히 도와주겠단다. 엥? 근데 좀 이상하다. 콩이 잘 갈려지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처럼 '국물'이 되지 않는 콩들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 혹시 먼저 삶아야 되나?'

불안한 마음으로 형님(시누이)에게 전화를 했다. 형님은 "일단 대충 삶아버려"라고 했고, 그 말만 믿고 난 그 상태로 콩을 삶았다. 혼자서 끙끙대며 콩을 삶고 있는데, 목욕을 가셨던 어머니께서 돌아오셨다.

"껍질을 비키지(벗기지) 않았구나~"
"아~ 고모(시누이)가 원래 껍질에 영양이 많다고 그랬는데…."

나도 모르게 핑계를 댔는데, 어머니는 그게 웃기신지 미소만 지으셨다. 매년 여름이면 우리는 콩국수를 즐겨 해먹었다. 그래서 콩국수만 보면 시댁과 시어머니가 생각난다.

손칼국수를 보면, 외할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콩에 얽힌 나의 에피소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내가 한국에 시집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두부 만들자"고 하시면서 맷돌을 가지고 나오시는 게 아닌가. 사실 두부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난 '어? 손으로 만드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당시 두부를 만들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건 힘차게 맷돌을 올리시던 시어머니의 모습이다. 지금보다 건강하셨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던 것 같다. 그때 완성한 손두부는 정말 맛있었다.

사실 한국으로 시집을 온 뒤 손두부를 맛보기 쉽지 않았다. 슈퍼나 마트에서 파는 두부들은 딱딱하고 맛이 없었다. 시어머니가 만든 두부를 입에 넣자마자 일본 친정집 주변에 있었던 두부가게까지 생각 났다. 어린시절, 엄마 심부름으로 쉴 새 없이 드나들었던 그 두부가게. 지난 겨울 방학 때 아이들 데리고 일본 친정집에 갔을 땐, 그 가게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일본 친정집부근도 옛날 집을 많이 없어지고 새 아파트들만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엔 시어머니와 함께 손칼국수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걸 만들면서 외할어버지와 외할머니가 생각나기도 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일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비롯한 우리 3남매를 돌봐주신 아주 고마운 분들이시다. 할아버지는 낚시가 취미셨는데, 낚시 미끼로 밀가루 반죽을 이용하셨고, 그걸 만들다 가끔 우리에게 손칼국수(우동)를 만들어주기도 하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재작년에 외할아버지가, 작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반죽을 비닐봉투에 넣고 온힘을 다해 주무르셨다. 아마 그래서 국수가 더 쫄깃하고 맛있었나 보다. 가끔 이웃에게도 나눠주곤 했는데, 먹어본 이들마다 "어떻게 만들면 이렇게 맛있나요?"라고 감탄할 정도였다. 그때 할아버지에게 비결을 물어봤더라면, 지금 가족들에게 맛있는 국수를 만들어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날 많이 아껴주고 예뻐해준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잘해드리지 못한 점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역시 음식은 정성이거늘, 요즘 사람들은 편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 빠르게 만들어지는 음식들을 선호한다. 하지만 난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에게 내 정성이 깃든 음식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도 언젠가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 제일 맛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인천e조은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강화도, #검은 콩국수 ,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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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이주민영화제(MWFF) 프로그래머 참여 2015~ 인천시민명예외교관협회운영위원 2016~ 이주민영화제 실행위원 2017.3월~2019 이주민방송(MWTV) 운영위원 2023 3월~ JK DAILY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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