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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제 자식들한테 좀 더 나은 교육을 위해서라면 부모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70일 전 딸아이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손자를 위해 이사온 지 1년 만에 또 다시 이사를 했다. 학군이 조금이라도 좋은 곳으로 간다면서.

딸아이가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초등학교는 이 곳에서 보내도 되지 않니?"라고 물었다. 딸아이는 "요즘은 초등학교가 얼마나 중요한데…, 이게 다 엄마 닮아서 그렇지"라고 한다. 나를 닮아서 그렇다는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교탁도 못 놓는 콩나물 교실, 이렇겐 못 기르지

아이를 시흥시에 전학시켜놓고 보니, 한 반에 73명 콩나물 교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나는 거짓말을 결심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초등학교 모습(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아이를 시흥시에 전학시켜놓고 보니, 한 반에 73명 콩나물 교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나는 거짓말을 결심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초등학교 모습(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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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87년 11월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경기도 시흥시로 이사 왔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고, 학교를 다녔다. 결혼을 해서도 서울에서 살았다. 1980년 남편이 사업에 실패를 하고 남의 집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서울을 떠날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은 날이 갈수록 요원하기만 했다. 하는 수없이 내 집 마련의 실현을 위해 경기도 시흥시(그 당시에는 시흥군)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 때 딸아이는 은평구에 있는 중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었고, 아들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딸아이는 경기도로 이사를 가기 전 서울 오류동에 있는 친정으로 주소를 옮긴 뒤 서울에 있는 중학교로 새로 배정을 받게 되었다. 나머지 세 식구는 경기도로 주소를 옮겼다.

그 때 아들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아이가 너무 어리다는 생각에 시흥군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세상에나, 전학을 시킨 첫날 학교에 가보니 아들의 번호가 73번이었다.

그 당시 시흥군은 서울과 가깝고 공기도 좋다는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여 갑자기 인구가 늘어나는  바람에 내가 이사 가고 1년 후 시 승격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가 작은 교실에 아이들이 73명이나 되었다. 서울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말 그대로 콩나물 교실이었다. 칠판만 있고 교탁은 보이지 않았다. 칠판 바로 앞에 아이들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교실에 아이들이 너무 많아 교탁 놓을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제일 앞에 앉은 아이는 공간이 없어 하루 종일 수업을 마치고 나면 고개가 꽤 아팠을 것이다.

1분에 한 아이만 쳐다본다고 해도 1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초등학교 수업시간은 40분이다. 그러니 한교시 수업이 끝나도 한 번도 눈길을 주지 못하는 아이가 많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 환경에 아들을 전학시켜 놓고 정말이지 심란했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먼저 다니던 00 초등학교에서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저 어린 것을 서울까지 통학을 시켜야하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더군다나 그 곳에 이사를 가서 보니 중고등학교를 골라서 갈 형편이 못되었다. 중고등학교가 단 하나뿐인지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중고등학교까지 그런 상황이니, 더 이상 고민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들을 그 초등학교에 그대로 놔둘 수가 없었다. '부모 잘못 만나 너희들이 고생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위해 나머지 식구들이 다시 주소를 옮기기로 했다. 

부모 잘못 만난 내 아이들, 그래도 참자

위장전입으로 멀리 있는 학교를 다니게 된 우리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야 했다. 사진은 한 초등학생 모습(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위장전입으로 멀리 있는 학교를 다니게 된 우리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야 했다. 사진은 한 초등학생 모습(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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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으로 주소를 옮긴다면, 아파트에서 20분 간격으로 다니는 마을버스를 타고 역곡역에서 내려서 다시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오류동까지 간 뒤 15분 정도 걸어 학교까지 가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니 어린것을 너무나 혹사시키는 것 같았다. 그래도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이를 악물어야 했다. 

4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5학년 봄에 아들을 전학시키기로 결정했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전학간 뒤 4개월 만에 위장전입을 해서 서울로 다시 전학을 시킨 것이다. 비록 위장전입이었지만 무사히 아들까지 전학을 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어린 아들과 딸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1시간 정도는 일찍 일어나 움직여만 했다. 무척 안쓰러웠다. 비가 오거나 눈보라가 치는 날에는 집에 남아있는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중고등학교 진학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아들아이는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를 가게 되었다. 딸아이는 고등학교를 배정받았는데 하필 영등포에 있는 고등학교로 배정을 받게 되었다.

고2가 되면서 딸아이의 등하교 시간은 더욱 빨라졌고 더 늦어졌다. 자율학습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11시가 훌쩍 넘는 것이 보통이었다. 늦은 밤 딸아이가 올 시간이 되면 아들과 나는 마을 버스정류장까지 마중을 나가곤 했다. 피곤에 지친 딸아이는 마중나온 나와 동생을 보면서 환한 웃음으로 잠시 피로를 잊기도 하는 듯 했다. 그 때 남편은 강원도에 가 있어 1주일 혹은 2주일에 한번씩 집에 오곤 했다.

그렇게 교통사정이 좋지 않아 딸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1시간~1시간 30분 더 걸렸다. 그것이 내가 운전면허를 일찍 취득하게 된 동기였다. 어쨌든 학원이나 과외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 처지에서 핑계에 불과했을 것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것을 알았던 딸아이는 그런 요구를 한 번도 해온 적이 없었다. 그 점이 지금도 두고두고 미안하고 고맙다.

혹시 우리 애들도 색출되는 거 아냐?

그 당시에도 강남의 8학군은 존재하였고 8학군의 위력은 대단했다. 삼삼오오 엄마들이 모이면 8학군 이야기는 늘 화제에 오르기가 일쑤였다. 내가 막연하게 8학군을 동경한 것도 사실이다.

그 즈음 신문방송에서 위장전입으로 전학한 학생들을 색출해 먼저 학교로 되돌려 보냈다는 소식이 간간히 들려왔다. 그럼 난 괜스레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곤 했다.

내가 하도 걱정을 하니깐 동생이 "누나, 여긴 8학군이 아니니깐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그런 것은 8학군 이야기야"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런 줄은 알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했던가. 잠잠해질 때까지 노심초사했다.

지난 2001년 11월, 대입수능고사가 실시된 서울 경복고등학교 교문 앞에서 학부모가  자녀의 좋은 성적을 기원하고 있다.
 지난 2001년 11월, 대입수능고사가 실시된 서울 경복고등학교 교문 앞에서 학부모가 자녀의 좋은 성적을 기원하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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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전입이라고 해야 서울 변두리 아주 인기없는 학군이었다. 적어도 '위장전입=8학군'이라 해야 어울리는 것을…. 그런데도 그런 뉴스는 언제 들어도 나를 안절부절하게 했다.

잊어버릴 만 하면 그런 소식을 접하면서, 딸아이는 대학교에 들어갔고 아들아이도 무사히 원하던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제야 난 안심을 하고 주민등록을 내가 사는 시흥시로 완전히 옮기게 되었다.

요즘도 난 가끔씩 딸아이에게 "만약에 그 때 그렇게 통학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하고 묻는다. 그 때마다 딸아이는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 여하튼 엄마 극성 덕분에 그나마 대학을 무사히 간 거지"라며 나를 위로해준다.

어쨌든 내 일생에 공식적인(?) 가장 큰 거짓말인 위장전입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잊지 못할 거짓말' 응모



태그:#위장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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