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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화요일(10월 7일)이면 내 큰 아들 S(중1)의 2학기 중간고사가 시작된다. 다시 가슴 한편이 답답하면서 과연 이번엔 성적이 어떨지 막연히 불안해진다.

사실 1학기 중간고사 전만 해도 이런 마음이 전혀 없고, 그저 '열심히 하라고 했으니 잘하겠지'하며 오히려 쉬면서 하라느니 하며 격려 아닌 격려로 시험공부기간을 보냈다.

'공부는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지, 무슨 엄마가 옆에서 끼고 앉아 가르쳐? 나도 중학교 때 시험봤지만 다 알아서 했지, 한 번도 부모 도움 받은 적 없다, 그래도 성적은 잘만 나왔구만'이라 생각하며 주변 엄마들의 열성을 극성이라 생각했다.

그랬던 나였건만 막상 아들의 1학기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는 순간은 하늘이 노래지는 충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뭔가 잘못 알아도 단단히 잘못 알았구나'하는 생각에 때늦은 후회와 아이에 대한 배신감이라는 양가 감정으로 한동안 괴로웠다.

아이의 등수 본 순간 하늘이 노래져

아이의 학업까지 돌봐야 하는 워킹맘은 피곤하다.
 아이의 학업까지 돌봐야 하는 워킹맘은 피곤하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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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아이는 잔뜩 풀이 죽은 데다 겁먹은 듯한 표정으로 내게 성적표를 내밀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성적표의 내용에 관계없이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적이 나쁘면 씻지 못할 죄를 짓기라도 한 듯이 스스로 못난 인간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라 생각을 해온 나였기에 더욱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런 교육가다운(?) 생각도 잠시, 전체 학생 수에서 과목별로 몇 등을 했는지 표시된 성적표를 본 순간 하늘이 노랗고 뒤통수가 당기더니 몸이 휘청거렸다.

처음엔 "도대체 공부를 어디로 한 거야?"하며 아이에게 화를 냈다. 그러고는 이내 "아니, 문제 하나 틀려도 등수는 50에서 100등까지 차이가 날 수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라고 이따위로 등수를 적어 놓은 거야? 이렇게 등수 적어 놓으면 애가 열 받아서 열심히 할 것 같아? 아예 포기하고 관두고 말지"하며 아이를 두둔했다.

그러더니 곧이어 등수대로 줄 세우기 좋아했던 옛날 내 담임 선생님을 필두로 교육을 책임진다는 정책가들에 대한 분노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치솟았다.

아이랑 계속 마주보고 앉아있으면 좋은 얘기가 나올 것 같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10년 넘게 중고등학생 영어 개인 과외를 하고 있는 동생인 터라 뭔가 들을 얘기도 있겠지 하는 기대와 함께 무작정 동생에게 하소연도 하고 싶었다.

"언니, 직장 관두고 애 챙겨!"

전화를 걸어 상황을 얘기하니 동생은 대뜸 "언니 직장 관둬라, 애를 그 지경으로 만들고 계속 직장 다니면 나중에 후회해, 애가 중요하지 돈은 그 다음 문제잖아"하는 것이다.

"내가 직장 관둔다고 애가 갑자기 공부 잘하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언니가 S를 끼고 앉아서 일일이 공부하는 거 확인하고, 시험 범위도 같이 정리하고, 문제풀이로 확인도 하고 그래야 그나마 나아지지.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달라. 초등학교 때처럼 그렇게 애 공부하게 두면 큰일 나."

"어떡하니! 걱정이다…. 근데 꼭 그렇게 엄마가 끼고 해야 돼? 우린 그렇게 공부하지 않았잖아. 그리고 그런 식으로 하면 직장 다니는 엄마를 둔 애들은 다 공부 못하겠다. 자기가 안 해서 그런 거야."
"아니야. 엄마가 그렇게 한 거랑 안 한 거랑은 천지 차야. 그리고 직장 다녀도 다 그렇게 해. 안 그러면 애가 따라오지 못하니까. 특목고 가려면 내신이 좋아야 하는데 1점이라도 더 받아야 하니 무슨 짓이라도 하는 거지."

결국 내 탓이었다. 물론, 공부는 아이가 하지만, 아이가 공부를 효과적으로 하도록 정보를 '물어다' 주고, 시험기간에는 같이 시험공부하고 이런 노력이 있어야 상위권 학생이 된다는 거다.

서울로 직장을 다니다 보니 출퇴근 시간 많이 소요돼 집에 오면 대개 늦은 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씻기도 전에 작은 아이(초등 4학년) 알림장에 내용도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부터 하고, 다음은 큰 아이 학교 공지사항에 사인한다. 그러고는 숙제하는 데 내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같이 한 뒤 학교 수업 외 학습지나 개인과외 숙제를 점검한다. 안 했으면 잔소리도 좀 하고….

이러다 보면 애들 간식 한번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재미있는 학교 생활 얘기 한 토막 듣지도 못하고, 시간이 늦었다고 자라고 재촉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애들이 자리에 눕는 걸 보고 나면 도대체 엄마란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직장 다닌다는 이유로 아이 친구들 엄마와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보니 학교생활은 물론이고, 잘 나가는 학원, 특정 시기에 필요한 시험, 좋은 자습서 등등 교육에 필요한 정보를 거의 들을 수 없다. 그러니 정보를 항상 한 템포 늦게 듣거나 놓치게 된다.

생각해 보니 지난 겨울 아이를 수학 학원에 보내려고 등록하는 과정에서 생긴 웃지 못할 소동도 이런 정보력 부재 때문이 아닌가 싶다. 중학교 진학에 대비해 수학을 좀더 심화 학습해 내신과 각종 시험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유명하다는 학원에 문의전화를 했다.

학원가려고 과외해야 한다니

강남 대치동 한 학원의 상담실
 강남 대치동 한 학원의 상담실
ⓒ 연합뉴스 진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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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얘기를 다 듣고 안내하는 사람이 던진 첫 질문은 "선행은 어디까지 됐나요?"였다. 속으로 '선행은 무슨…, 선행이 안 됐으니 학원 보내려는 거지, 이것도 질문이라고…'하며 "전혀 안 됐다"고 답했더니 "그러면 곤란하다"는 거였다.

이유인 즉, 초등학교 6학년 말이면 적어도 중 1수학은 끝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원에서 제시한 방법은 학원을 들어오기 위해 개인 과외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나 참, 기가 막혀서…. 학원가려고 과외를 해야 한다니. 무슨 대단한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조금 유명하다는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개인 과외를 한다는 게 어디 상식 있는 사람이 할 소리야?'

결국 아이는 그 학원에 들어가지 못했고, 조금 수준이 낮다는 다른 학원을 알아봐야 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내 얘기를 들은 주변 다른 엄마들이 내가 잘못했다고 한 것이다.  난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 공부를 이렇게 시키는 게 맞나? 언제까지 엄마가 아이를 끼고 가르쳐야 한단 말인가? 대치동 엄마처럼 아이 일정을 다 짜서 시간 되면 실어나르고(?) 해야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잘 사는 걸까? 공부를 잘해야 잘 사는 건가? 그렇게 등수를 적나라하게 밝혀야 하는 이유는 뭘까? 이 과목은 못해도 다른 과목은 잘하니까 괜찮다는 위로를 하려는 건가?'

다른 워킹맘들은 어떻게 아이 기를까?

도대체 모르겠다. 머리가 뒤죽박죽이다. 친구·선배들과 얘기를 해봐야겠다. 그 사람들은 뭔가 생각이 있으니까 애를 학원에 뺑뺑이 돌리거나 아예 열심히 놀게 만드는 거겠지? 어휴, 그나저나 남편한테는 어떻게 말하지? 분명 애 잡을 텐데…. 직장에서 시달리고 왔는데 집에서는 집대로 애들 걱정해야 하니 머리가 맑을 날이 없군.

이렇듯 5월 한달을 괴롭힌 내 고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아이랑 같이 시험공부 계획표도 짜고, 공부할 때 옆에 앉아 책 보거나, 자신 없는 과목은 같이 읽으며 정리도 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해도 성적표 받으면 전체 학생 수 중 몇 등이라고 나올 테니 그 생각만 하면 두렵기만 하다. 한 문제만 틀려서 수십 등이 밀리는 상황을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마음이 편치 않다. 단순히 생각하면 '한 개 틀렸으니 괜찮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 고등학교 입학이나 각종 시험에서는 1점 가지고도 당락이 결정될 수 있으니 마냥 안심하라고만 할 수도 없다.

그 무엇보다 직장 다니는 엄마로서의 내 처지가 답답하다. 아이가 여차 저차해서 공부를 좀 하게 된다 하더라도 요즘은 엄마의 정보력과 관리가 아니면 지속할 수 없다는데 나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도저히 시간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워킹맘'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키울까? 주변 선배나 친구들은 되는 대로 키운다고 편하게 얘기하던데 그게 다 '뻥'인가? 아이 키우는 데 불안감 없고, 공교육에 맡겨놓으면 전인교육, 인재양성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그런 사회는 정녕 불가능한 꿈일까?

난 오늘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아이가 시험공부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태그:#공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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