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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시도유형문화재 제32호 심즙신도비(沈楫神道碑)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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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전날인 12일 <우리 지역문화재 찾아보기> 4번째로 인천 시도유형문화재 제32호인 심즙신도비(沈楫神道碑)를 여느 때와 같이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 봤습니다. 전날 인천 서구 공촌동 산8에 위치하고 있다는 심즙신도비를 인터넷 지도에서 확인하고 찾아가봤지만, 번지수를 잘못보는 바람에 엉뚱한 곳을 헤매다 돌아왔었습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번지수를 확인해 수능시험장을 둘러보러 가는 길에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심즙신도비는 저희 집과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산고개를 오갈 때 표지판을 언뜻 본 기억까지 떠올랐는데 그것이 심즙신도비인 줄은 이제야 알았습니다.

심즙신도비는 공촌정수장에서 계양산 방향으로 오르다 소성사격장 방향으로 난 비포장 길로 나아가면, 사격장 앞의 갈림길에도 표지판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왼편으로 산길을 오르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심즙신도비가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심즙신도비가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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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사격장으로 나아가는 비포장 길로 가다가...
 소성사격장으로 나아가는 비포장 길로 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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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장 앞 갈림길에서 왼편 산길로 300m 정도 더 오르면 심즙신도비가 나온다.
 사격장 앞 갈림길에서 왼편 산길로 300m 정도 더 오르면 심즙신도비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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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는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비라고 하는데, 심즙신도비는 조선 인조 때의 문신인 심즙 선생의 행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심즙 선생은 28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형조, 공조, 예조판서를 맡아보았고, 이괄의 난이 일어나 왕이 처소를 공주로 옮길 때 왕을 모시고 따라간 공이 인정되어 공신에 오르기도 했다 합니다.

신도비는 사각받침돌 위에 길쭉한 직사각형의 몸돌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림 형태를 하고 있고, 신도비 주위에는 다른 여러 비와 문인상도 줄지어 있습니다. 심즙 선생의 묘는 원래 시흥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이장했는데 그 때 비도 함께 옮겨 보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야산에 심즙신도비와 무덤이 자리하고 있었다.
 야산에 심즙신도비와 무덤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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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나무를 잘라낸 흔적들이 눈에 띄였다.
 숲과 나무를 잘라낸 흔적들이 눈에 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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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즙신도비
 심즙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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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심즙신도비가 자리한 야산까지 화원 농장이 파고들어 자리하고 있었고, 비와 무덤이 자리한 양지바른 곳은 숲을 파헤치고 나무를 잘라낸 흔적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습니다.

특히 "탕타타탕" 맞은편 예비군훈련장과 사격장에서 터져나온 요란한 총소리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0년 넘게 저 총소리를 듣고 살아왔지만, 심즙신도비와 무덤이 자리한 곳에서는 더욱 큰 메아리가 되어 들려 왔습니다. 땅 속에서 잠들어 있는 심즙 선생도 놀라 벌떡 일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무덤들
 무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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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이장하면서 숲과 나무를 잘라낸 흔적
 무덤을 이장하면서 숲과 나무를 잘라낸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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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총소리에 산 자도, 죽은 자도 편치 않다.
 요란한 총소리에 산 자도, 죽은 자도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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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아래 사격장과 예비군훈련장에서 총소리가 메아리쳤다.
 무덤 아래 사격장과 예비군훈련장에서 총소리가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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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심즙신도비, #총소리, #사격장, #무덤,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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