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겨우살이를 하려면 할 일 많다. 지난 11월 29일에는 바람막이 공사를 하였고, 12월 7일에는 기름을 넣었다. 마지막 남은 겨우살이 준비는 김장이었다. 우리 집 김장은 어머니 댁에서 한다. 지난 해 까지는 다섯 집 김장을 했는데 150포기 정도 했다.

김치를 좋아하고, 바깥에서 밥 사먹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김장을 많이 하지 않으면 3~4월이 되면 김장독이 바닥이 나버렸다. 올해는 어머님 댁과 우리 집, 진주에 사는 누나 집 김장만 하기로 했다. 90포기 정도였다.

90포기 되는 배추 누나가 다듬고, 절였다.
 90포기 되는 배추 누나가 다듬고, 절였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동생이 제수씨와 함께 계획에 없던 중국 여행이 잡혀 성탄절 이후에 김장을 하려고 했지만 어머니 성화에 못 이겨 오늘(13일)하게 되었다. 배추를 다듬고, 절이는 일은 누나가 도맡아했다. 치매 환자 도우미 일을 하는데 목요일과 금요일은 밤 근무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90포기를 혼자 했으니 얼마나 힘들어겠는가? 제수씨는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도와주지도 못하여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는가?

오늘이 동생네 중국 가는 날이라 아침부터 분주했다. 아내와 제수씨는 아침부터 무와 대파를 썰었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한 번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칼이 날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칼날이 무뎠다. 제수씨와 아내는 정말 잘했는데 칼날 탓을 하면서 썰었는데 재미있었다.

"칼날이 무디가지고 칼등이다. 칼등. 당신이 한 번 썰어 볼래요?"
"내 칼도 당신 칼처럼 무딥니다. 별 도움이 안 되니 그냥 쓰세요."

아내와 제수씨가 무채를 썰고 있다.
 아내와 제수씨가 무채를 썰고 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다른 집은 김장을 어떻게 담는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는 배추김치 사이 사이에 무를 듬성듬성 썰어 넣는다. 내년 봄에는 정말 기막힌 맛을 내는 무김치가 된다. 무김치를 따로 담지 않아도 된다. 배추김치보다 무김치가 더 맛있다. 물론 무김치 때문에 배추김치도 훨씬 맛있게 익는다. 벌써 입에 침이 돌았다.

"무가 이것밖에 안 되나? 어머니께 한 번 물어보세요. 지난 해도 무를 엄청 많이 창고에 넣어두었더니 올해 그런가. 한 번 물어보세요."
"어머니는 무를 왜 아껴두는지 모르겠어요? 듬성듬성을 썰어 넣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나는 배추김치보다 무김치가 더 맛있는데."
"나도 그래요. 빨리 어머니께 무 달라고 하세요."


무을 듬성듬성 썰고 있다. 내년 봄에는 엄청 맛있는 무김치로 변모한다.
 무을 듬성듬성 썰고 있다. 내년 봄에는 엄청 맛있는 무김치로 변모한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평상시 손이 엄청 큰 어머니가 그만 고춧가루를 50포기 정도만 담을 수 있는 양으로 준비하셨다. 40포기 정도는 포기해야 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고춧가루가 남아 다른 집에 덤으로 주기도 했는데 올해는 어찌 된 일인지 고춧가루가 모자라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누나가 타박을 했다.

“손 큰 사람이 왜 고춧가리를 이것 밖에 안 했습니꺼?”
“내가 준비 한다고 했는데 이제 정신을 놓은 모양이다. 정신을 놓았다. 좀 구해 올게. 고춧가리 있는 집이 있겄나. 우짜꼬."
"어머니도 김장 담그는 일에 고춧가루가 모자랄 때가 있네요."
"이제 생각이 혼란스러울 때가 되었지."
"마음이 아프네요."

무채와 대파, 쪽파와 다시마와 멸치로 우려낸 육수, 멸치액젓으로 소를 만들었다. 경남 지역은 새우젓으로 김장을 하지 않고, 멸치 액젓으로 김장을 담근다. 윗 지방 사람들 입맛에는 조금 맞지 않는 젓갈이다. 다행히 어머니는 이웃집에서 고춧가루를 겨우 구해 오셨다.

배추에 넣을 소를 만들고 있다. 고춧가루, 대파, 쪽파, 다시마와 멸치 육수로 만들 소들은 군침을 돌게 한다.
 배추에 넣을 소를 만들고 있다. 고춧가루, 대파, 쪽파, 다시마와 멸치 육수로 만들 소들은 군침을 돌게 한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김장을 담든데 첫째 녀석이 엄마에게 김치를 달란다. 요즘 아이들 답지 않게 매운 맛을 좋아한다. 감기가 들어 지난 밤에는 잠을 거의 자지 못했는데도 김치를 보더니 더 참을 수 없는 모양이다.

"엄마 김치 좀 주세요."
"매운데 먹을 수 있겠어."

"매운 것 좋아하잖아요. 김치 맛있게 보여요."
"올해 고춧가루가 맵다. 나중에 밥하고 먹으라."
"아니예요. 좀 주세요."


김장담그는 모습 첫째 아들은 매운 것을 좋아해서 김장 담글 때마다 엄마에게 부탁하여 먼저 맛을 본다.
 김장담그는 모습 첫째 아들은 매운 것을 좋아해서 김장 담글 때마다 엄마에게 부탁하여 먼저 맛을 본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김치 냉장고가 있지만 김치 냉장고에는 조금만 넣고, 옹기에 김장을 담는다. 아주 오래된 김장독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김장독이니 내 나이보다 더 많다. 옹기에 담은 김장은 김치 냉장고가 따라 올 수 없다. 옹기 김장독에 무까지 듬성듬성 넣으면 별로 들어간 것이 없어도 맛있는 김장이 된다.

옹기에 저장한다. 무를 듬성듬성 쓸어 넣어두면 내년 봄에 맛있는 무김치가 된다.
 옹기에 저장한다. 무를 듬성듬성 쓸어 넣어두면 내년 봄에 맛있는 무김치가 된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김장으로 올 겨우살이 준비는 다 끝났다. 어렵고 힘든 겨울이 되겠지만 바람막이 공사도 했고, 기름도 넣고, 김장까지 했으니 부러울 것이 없다.  모두에게 추운 겨울이 아니라 따뜻한 겨울이 되기를 바란다.

▲ 김장하는 모습 제수씨와 무썰기, 제수씨와 아내의 무 썰기, 김장 담는 모습
ⓒ 김동수

관련영상보기



태그:#김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