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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곧잘 스스로를 드러내곤 한다. 한나라당이 강행 처리하려 하고 있는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이 밀실에서 얼마나 졸속으로, 정략적으로 추진되고 있는가 하는 점도 그렇다. 거기에 맞장구를 치고 있는 거대 신문들의 행태가 또 얼마나 엉터리없는가 하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법안 처리 과정이 처음부터 엉망진창이라는 점을 스스로 실토했다. 이달 초 제출한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뒤늦게 문제점에 대해 신문·방송 종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해 수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신문사나 방송사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을 최종적으로 확정지었다는 이야기와 다름없다.

 

그나마 의견을 수렴했다는 것도 일부 신문사와 방송사, 그리고 대기업들이다. 그것도 비공식적으로 한 것이다. 한나라당 언론관계법 개정을 주도한 정병국 미디어특위 위원장은 의견 수렴과 관련해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법안 마련 과정에서 대기업과 신문사들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수렴한 바는 없지만, 회사 차원에서 찾아오거나 한나라당 출입 기자를 통해 문제 제기를 한 부분을 반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마당에 이해당사자들인 신문업계나 방송계의 의견을 고루 청취했을 리 없다. 신문과 방송 겸영 허용 등 한나라당 개정안대로 될 때 가장 우려되는 여론독과점 현상과 관련해 그 직접적 이해 당사자들인, 규모가 작은 신문들의 의견 같은 것은 아예 들어보지도 않았다. 방송학회는 물론 방송협회 같은 곳에도 공식적으로 의견을 구한 적도 없다.

 

졸속 법안을 또 졸속으로 수정

 

이들 언론관계법 개정안들은 한나라당 안에서도 몇 사람이 은밀하게 작전하듯 준비를 했다.  한나라당의 문방위 소속 의원들조차 법안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 발의안에 서명부터 했다고 한다. 그러니, 신문업계나 방송계의 의견을 제대로 구했을 리 없다.

 

더 가관인 것은 한나라당이 그런 졸속 법안을 또 졸속으로 수정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23일 제출한 방송법 개정 수정안에서 신문사나 대기업의 종합편성채널 지분 한도를 당초 49%에서 30%로 축소 조정했다. 또 지상파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 간 겸영도 허용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은 당초 신문과 방송의 겸영 규제 등을 과감하게 풀겠다고 했다. 신문사와 대기업에게 종합편성채널 지분 한도를 49%까지 허용하기로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미디어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신문과 대자본이 과감하게 콘텐츠 사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런 한나라당이 신문사나 대기업의 종합편성채널 지분 한도를 왜 49%에서 30%로 축소 수정하기로 했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49%까지 허용할 경우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기에 이를 30%로 축소 조정한 것인지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기 일인데도 조용한 일부 신문들

 

더 가관인 것은 그동안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조중동을 비롯한 일부 신문들 역시 한나라당의 이런 원칙 없는 수정안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직결돼 있는 사안인데도 구체적인 쟁점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짐작되는 바가 없지는 않다. 종합편성채널에 대기업이나 신문사의 지분을 49%까지 허용할 경우 그 주도권이 대기업에 넘어갈 개연성이 적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종합편성 채널이나 보도채널에 다걸기하기에는 자본력이 취약한 족벌 신문사들로서는 종합편성 채널 진출 문호는 확보하되 대기업의 지분율을 30% 정도 수준에서 묶어 두어야 컨소시엄 구성 등에서 대기업과 짝을 짓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많다.

 

여기에는 대기업이 종합편성채널에 주도적으로 진출하고, 증자 등에서 사실상 규제가 거의 없게 될 경우 SBS 등 기존 지상파 방송 또한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했을 법 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지레 짐작일 수밖에 없다. 아예 공식 논의 과정 자체가 생략돼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법안 상정 자체도 밀실 졸속이었지만, 그 수정 과정은 더 더욱 그렇다는 점이다.

 

미 공화당이 신문방송 겸영 부결시킨 이유 생각봐야

 

신문법과 방송법 등 언론관련 법안은 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후에는 우여곡절은 겪었지만 항상 여야 합의를 통해 고치고 만들어왔다. 언론 관련법은 바로 여론의 다양성 보장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직결돼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방통위원회 설치 등 방송 정책과 감독기구의 큰 틀을 바꾸는 방송법 개정 역시 당시 한나라당이 소수당이었지만, 다수당이던 여당의 협조를 얻어 한나라당 안에 유사한 내용으로 이를 통과시킨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신문과 방송의 겸영 허용 등 언론법제의 기본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하면서도 기본적인 의견 수렴조차 생략한 채 졸속 입법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한다면서도 이에 따른 여론독과점 우려 등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마련하지 않는 등 입법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 요건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내 합리적인 의원들이 있다고 한다면 지금이라도 거대 족벌이나 재벌신문사, 혹은 대기업에게 지상파나 종합편성채널, 보도채널을 내줄 경우에 어떤 일들이 발생할지 장기적인 안목에서 다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지난해 한나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그들도 절감했던 '정치언론'의 폐해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공화당이 다수당인 상황에서 미국 상원이 왜 지난해 미연방통신위원회(FCC)의 주요 도시 지역 신문·방송 겸영 허용 조치를 부결시켰는지 그 배경도 잘 살펴볼 일이다.

 

여야를 떠나서 한국 정치의 내일에 희망을 찾고자 하는 정치인들이라면 한국 정치가 한국 언론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하고 유념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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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나라당, #언론법, #신방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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