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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긴~ 롱데이

치열했던 4일간의 레이스를 마친 후 사막 레이스의 꽃이자 하이라이트인 롱데이(보통 1박2일간 80~100km 이상을 달리는 구간)의 날을 맞이했다. 지난 4일간 10%정도의 참가자가 탈락했다. 최고 온도 48도의 시원한(?) 사막에서 탈락했다 하면 돌발적인 부상이나 자기관리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다. 아마도 오늘이 지나면 더욱 많이 참가자들이 짐을 싸고 떠날 것이다.

오늘까지 살아남은 참가자들은 내일까지 과연 살아 있을지 걱정 반 근심 반의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워낙 긴 거리다 보니 초반에 모두 몸을 사리며 천천히 뛰어 간다. 후미 그룹은 아예 느긋하게 처음부터 걷는다.

갈 길이 멀어 코스가 좋으면 무조건 달렸다
 갈 길이 멀어 코스가 좋으면 무조건 달렸다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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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10~12km 사이에 있는 체크포인트(물, 의료지원 텐트)를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앞으로 몇 개만 더 가면 끝이다라는 계산을 한다. 몸은 힘들지만 줄어드는 거리를 보면 더욱 힘이 난다. 마지막까지 아끼던 최후의 식량 ‘돼지육포’를 꺼내기가 무섭게 죄다 나눠줘서 정작 내가 먹은 것은 얼마 안되지만 배 고플 때 먹는 육포 한 조각은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맛있고 먹는 기쁨을 준다. '오물오물' 씹을 때 느껴지는 짭짤한 그 맛, 행복한 미소가 얼굴 가득 넘친다. 참고적으로 사막에서 육포 한 조각을 먹으면 약 20분 정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다. 거의 발정제 수준이다.

롱데이 시작부터 모래 언덕
 롱데이 시작부터 모래 언덕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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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언덕의 연속
 크고 작은 언덕의 연속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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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와의 치명적 사랑

사하라에 가기 전 ‘로마’라는 드라마를 봐서인가? 피곤 하기만 하면 어디선가 자꾸 내 이름을 부르는 언니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의 거친 숨소리만 들리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사하라의 밤 속에 울려 퍼지는 언니들의 목소리. 황홀함과 몽롱함이 몰려와 온몸의 지스팟을 지져주어 달콤함과 짜릿함이 느껴진다.

순간 저 앞쪽 불빛 속에 반라의 무희들이 춤을 추면 나를 유혹한다. 한 손으로 입술을 빨며 한 손은 꼬아가며 나를 부른다. 그런데, 어머나 세상에 그 중심에는 입맛을 다지며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탐하는 클레오파트라가 누워있다. 색기 가득 영롱한 눈빛, 앵두보다 붉은 입술, 풍만한 가슴, 완벽한 S라인. 클레오파트라의 쉑시 윙크 한방에 모든 세포와 근육이 분열되며 순간적으로 다리가 풀려버린다.

예전에 리비아를 여행할 때 클레오파트라 목욕탕이란 곳을 가봤다. 지중해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절경의 목욕탕 유적지에서 묘한 상상력이 발동되어 거동이 불편한 적이 있었는 이런, 내 앞에 클레오파트라가 나타나다니….

“오, 마이! 오오 예스…!’’

나에게 다가오는 클레오파트라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냥 욕심 없이 모든 걸 다 주기로 마음 먹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 발산되는 매력과 쉑시함에 숨이 막혀 온다.

갑자기 눈이 번쩍거린다.
‘오쉣, 뭐야 이거!’

뭔가 검은 물체가 내 눈앞을 지키고 있다.
버둥거리며 검은 물체를 치워내고 주위를 보니 암흑 속이다.

“클레오파트라 어디갔어?”

헤드랜턴을 키고 주위를 살펴보니 내가 있는 곳은 텐트 안이고 나를 덮친 물건은 배낭이었다. 잠시 몽롱함이 가시고 나니 정리가 된다.

어제 밤, 중간 체크포인트에서 한 시간만 눈을 붙인다는 게 시간을 보니 7시간 동안 퍼지게 잠을 잔 것이다. 그 동안 꿈 속에서 클레오파트라를 만나고 다리도 풀리고 온몸도 쑤시는 게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하여튼 그 이상 뭔가 있었던 것 같은 긍정적인 예감이 든다.

현실이건 아니건 어쨌든 나는 사막에서 클레오파트라를 만나 참을 수 없는 유혹에 넘어갔던 게 확실하다. 흐미… 가슴 가득 부풀어 오르는 행복감, 그나저나 다리가 풀려서 문제다.

야간 레이스 전
 야간 레이스 전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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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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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달림이

중간 체크포인트에서 7시간 정도 자고 클레오파트라와의 러브를 즐기니 기분이 좋다. 행복한 사막의 새벽 만찬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사하라의 아침을 맞이하니 더욱 힘이 난다. 헤드랜턴을 주머니에 집어 넣고 구름 속의 산책을 하듯 나만의 낭만 달리기를 시작한다.

나는 '체리필터'가 부른 슬프고 우울한 '낭만 고양이'가 아니다. 나는야 '사막의 낭만 달림이'다.

“나는 낭만 달림이,
아무도 없는 사막,
태양 가득 기를 받고

나는 낭만 달림이
금빛 찬란한 저곳
넓고 넓은 나의 사막이여”

사하라 사막의 태양 기운을 받고 달리는 나의 모습이 너무나 멋있어 보인다. 자화자찬은 사실 재수 없지만 힘든 상황에서는 에너지를 극대화 시키기 위한 자기 최면은 필요하다.

깃발 대신 작은 탑으로 방향 표시를
 깃발 대신 작은 탑으로 방향 표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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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데이를 마치고 달콤한 휴식
 롱데이를 마치고 달콤한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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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골인 지점인 피라미드를 향하여
 최종 골인 지점인 피라미드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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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지옥

롱데이 마지막 12km의 모래밭은 역대 최악의 코스로 기억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양탄자를 깔아 주지 못할망정 모래함정에 집어 넣은 만행에 가까운 주최측의 횡포는 이번 대회를 모두의 기억 속에 진한 추억으로 남도록 만들어 주었다.

나는 내가 평생 운전 하면서 뱉었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욕을 단지 12km를 오는 동안 퍼 부었던 것 같다. 온 몸이 쑤시고 피곤한데 모래에 빠진 발은 안에서 돌아가지 가도가도 끝은 안보이지 배고프지, 만약 내가 헐크였다면 수백 번 변신했을 것 같다.

길고도 길었던 롱데이를 마치면 사실 아쉬움이 점점 밀려온다. 끝났다는 아쉬움, 자연이 주는 자유와 낭만을 버리고 다시 현실의 사회에서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는 스트레스 등등.
그러기에 우리 인생은 항상 또 다른 일상탈출을 꿈꾸며 사는지 모르겠다.

공호성,박상연씨 골인 모습
 공호성,박상연씨 골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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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정운로씨를 행가래 치는 한국 참가자들
 시각장애인 정운로씨를 행가래 치는 한국 참가자들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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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꼬와 완주 세래모니
 유카꼬와 완주 세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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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사막에서 사랑을 외치다

6년 반만의 데이트.
행복했던 일주일.
I Love Sahara.

I LOVE SAHARA
 I LOVE SAH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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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하라사막마라톤 - 마지막날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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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하라사막마라톤 - stage2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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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하라사막마라톤 - 듄데이 모래언덕 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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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사막의아들 유지성 / www.runxrun.com

사막, 트레일 레이스 및 오지 레이스 전문가. 칼럼니스트,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사막, 남극 레이스, 히말라야, 아마존 정글 마라톤, Rock and Ice 울트라 등의 한국 에이전트이며, 국내 유일의 어드벤처 레이스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태그:#사하라사막마라톤대회, #사하라, #아프리카, #이집트,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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