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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활마당 둘째 날이 밝았다. 충남 부여 충화초등학교 관사에서 겨우 눈을 떴을 때는 저 멀리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보다 늦잠을 자다니, 선생님으로서 조금 부끄러웠다.

과활마당의 ‘과활’은 ‘과학 공감 활동’의 줄임말로, 교육과학기술부 주최, 한국과학창의재단 주관으로 진행되는 과학 봉사활동이다. 대학생들이 안동, 울산 등 전국 각 지역으로 흩어져 아이들과 3박4일간 다양한 과학 체험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과학에 대한 애정을 심어주는 것이다. 과활마당은 활동 기간에 따라 1차와 2차로 나뉘어져 1차는 14일에, 2차는 19일에 시작했다.

그 중 2차인 부여 팀은 충화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과활마당을 하게 됐다. 충화초등학교는 전교생이 33명인 작은 학교다. 그 중에서도 24명이 참가했을 뿐인데, 이튿날 학교의 다목적실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왁자지껄했다.

“충화초등학교에 불이 났어요!”

화재경보기를 들고 신기해하는 정유진(4학년) 학생과 윤정선(2학년) 학생.
 화재경보기를 들고 신기해하는 정유진(4학년) 학생과 윤정선(2학년) 학생.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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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의 프로그램은 ‘바이메탈 화재경보기 만들기’로 시작됐다. 바이메탈 화재경보기의 바이메탈은 열팽창률이 서로 다른 두 금속을 붙여 만든 것으로, 가열하면 열팽창률이 적은 금속 쪽으로 휘어진다. 화재경보기는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인데, 고정해놓은 바이메탈 아래 촛불을 켜두면 소리가 나고 발광다이오드의 불이 반짝였다.

바이메탈 화재경보기가 작동하는 것을 지켜보는 아이들의 눈도 호기심과 놀라움으로 반짝였다. 갑자기 소리가 나자 깜짝 놀라는 아이, 불이 났다고 소리치는 아이 등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곧 다목적실은 여기저기서 쉴 새 없이 나오는 화재경보기 소리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한데 섞여 시끌벅적해졌다. 

직접 만든 화재경보기를 들고 포즈를 취한 충화초등학교 학생들.
 직접 만든 화재경보기를 들고 포즈를 취한 충화초등학교 학생들.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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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사수하기'가 돼버린 '달걀 구출하기'

하지만 화재경보기보다 더 시끌벅적했던 프로그램은 ‘달걀 구출하기’였다. ‘달걀 구출하기’는 나무젓가락과 고무줄을 이용하여 달걀을 넣는 구조물을 만들고, 그 구조물을 높은 곳에서 떨어뜨렸을 때 달걀이 깨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우선 아이들은 종이에 구조물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정해진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구조물은 아이들 수만큼 다양했다. 종이에는 세모, 네모 등 여러 가지 도형들이 등장했다.

구조물 대신 만화를 그리는 강효정(5학년) 학생.
 구조물 대신 만화를 그리는 강효정(5학년) 학생.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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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다른 것을 그려넣는 학생도 있었다. 강효정(5학년) 학생은 구조물 대신 만화를 그려 넣었다. 만화 속의 달걀은 땅에 떨어졌는데 왜 안 깨졌을까 스스로 묻고 있었다. 만화를 그린 학생에게 그 이유를 묻자 만화를 그리며 방법을 생각해 보려 했단다.  

'달걀 구출하기' 시간에 구조물을 만드는 충화초등학교 학생들.
 '달걀 구출하기' 시간에 구조물을 만드는 충화초등학교 학생들.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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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나무젓가락과 고무줄이 주어지고, 아이들은 생각대로 구조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조물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안에 달걀을 넣는 것은 훨씬 어려웠다.

"악! 달걀 또 깨졌다!"

방금 막 깨진 달걀 앞에 서 있던 함명건(3학년) 학생은 누나가 깨뜨린 달걀을 보며 "누나는 세 개째, 전 한 개째"라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달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대학생 선생님들은 구조물 만들기보다 깨진 달걀을 청소하느라 더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달걀 구출하기' 시간에 실험도 못해보고 깨진 달걀들.
 '달걀 구출하기' 시간에 실험도 못해보고 깨진 달걀들.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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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의 불안감도 커졌다. 달걀이 계획했던 것보다 너무 많이 깨져 달걀이 아이들의 수보다 부족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불안감도 커지긴 마찬가지였다. 점점 달걀 수가 줄어들자 아이들은 구조물 만들기보다 '달걀 사수하기'에 열을 올렸다. "내 달걀 건들면 죽어!"라고 협박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달걀 사수하기는 거의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자기 달걀만은 안 깨졌다며 자랑하던 아이도 달걀을 깨뜨리고는 울상을 지었다. 그래서 결국 구조물을 완성한 6명의 학생에게만 실제로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결과는 6학년 여학생들이 만든 구조물 하나만 성공이었다.

달걀 구조물을 창 밖으로 떨어뜨려 달걀이 깨지는지 직접 실험하고 있다.
 달걀 구조물을 창 밖으로 떨어뜨려 달걀이 깨지는지 직접 실험하고 있다.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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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달걀이 부족해서 실험하지 못한 친구들도, 달걀 구출하기에 성공하지 못한 학생들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달걀 구출하기에 실패한 일부 남학생들은 학교 도서관으로 가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달걀 구출하기'를 3박4일의 과활마당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깊었던 실험으로 꼽았다. 윤제선(4학년) 학생은 어떤 프로그램이 가장 좋았냐는 질문에 "고무줄로 직접 만들어볼 수 있어서 달걀 구출하기가 제일 재밌었다"고 말했다.

'달걀 구출하기' 시간 중 직접 만든 구조물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이원준(4학년) 학생과 윤제선(4학년) 학생.
 '달걀 구출하기' 시간 중 직접 만든 구조물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이원준(4학년) 학생과 윤제선(4학년) 학생.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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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과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과학 영화 <월-E(2008)>를 본 뒤 다음 날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눴다. 어두컴컴한 저녁, 아이들이 떠난 다목적실은 갑작스런 고요함으로 어색하게 느껴졌다. 벌써 다음 날이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하니 흘러가는 시간이 얄밉게 느껴졌다.

이 날도 대학생 선생님들은 다음 날 준비를 하느라 일찍 잠들지 못했다. 1차로 다녀온 학생들이 과활마당을 할 때는 무엇보다도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고 했었는데, 그제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이튿날도 새벽까지 아이들에게 보여줄 동영상을 편집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3박4일 짧은 기간 동안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최대한 많은 것을 주고 싶었다. 동영상은 그 중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동영상을 보며 환하게 웃을 아이들을 상상하니 무척 뿌듯했다.

편집이 끝났을 때는 새벽 3시 반이었다. 몇 시간 뒤면 또 아이들을 만날 것이었다. 피곤했지만, 전날보다 일찍 일어나 아이들과 웃는 얼굴로 인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 과학만큼 사랑도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태그:#과활마당, #과활, #부여, #충화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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