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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 외부 전경. 지하는 카지노, 위에는 호텔이다.
 강원랜드 외부 전경. 지하는 카지노, 위에는 호텔이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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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박을 모른다. 고스톱뿐만 아니라 스포츠라든지, 게임이라든지, 뭔가 경쟁을 해야 하는 종목에선 턱없이 낮은 선호도를 보이면서 기피하는 정도다. 경쟁심이 너무 심해서일까, 아님 너무 없어서일까, 암튼 도박에 빠져(?) 보는 게 작은 소망이 된 지 오래인 나다.

그러던 중 강원도 정선에 강원랜드라는 커다란 카지노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늘 라스베이거스에서 커다란 슬롯머신을 힘껏 당겨보는 로망(?)을 가지고 있는 나는, 무척이나 그곳에 가고 싶었다. 그것은 도박의 차원이 아니라 호기심에 더 가까웠다.

초심자의 행운을 믿고, 카지노로 GO!

돈을 딴다고는 생각도 안 했지만, 잃을 생각도 없었던 나는 언젠가 강원랜드에서 30만원을 땄다는 선배의 조언을 떠올렸다. "슬롯머신으론 결코 돈을 딸 수 없다. 게임을 잘 모르면 주사위로 하는 거나, 룰렛 같은 쉬운 게임에서 무조건 높은 배율을 노려라. 승률이 적지만 언젠가는 한 번 걸릴 것이다"라며 세세한 팁을 전해주었다.

사실 듣다보니 그렇게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도박이라곤 원카드랑 도둑 찾기밖에 모르는 나의 귀는 팔랑팔랑 거렸다.

"오예! 본래 세상에는 초심자의 행운이란 게 있는 거야. 못해도 차비는 벌어서 돌아와야지!"

왠지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더 잘 된다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함께 의기를 투합한 친구와 강원도로 떠났다. 천방지축 여자 둘이 떠난 강원도 행이었지만 짐은 거의 십수 일은 밖에서 떠돌 수 있을 것 같이 무장을 하곤, 의기양양하게 버스에 올랐다.

강원도에 가는 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우린 강원랜드가 있는 하이원 리조트행 버스를 탔다. 그 편이 카지노로 바로 가는 직행 버스랄까? 아침부터 버스에 올랐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물론, 다들 강원랜드 행이 아닌 스키장 행이었지만.

어떻게 가나 싶었는데, 김밥 한 줄 먹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서, 3시간 남짓만에 우리는 강원도 정선에 있는 하이원 스키장에 도착했다.

"여기서 강원랜드로 가는 셔틀버스는 어디서 타야 되나요?"

버스 기사 아저씨는 우리 둘의 행색(?)을 쓱 훑어보더니 다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손가락으로 정류소를 가르쳐 주었다. 오메메 우리 타짠 거 다 들켜버린 거야?

오늘은 평일 오전이란 말이야! 카지노엔 사람이 '득실'

입장을 하기 위해선 5천원과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 하루에 입장객을 5천명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나는 3714번인 모양. 맨 아래에 보면 전월, 당월 방문 횟수도 찍혀있다.
 입장을 하기 위해선 5천원과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 하루에 입장객을 5천명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나는 3714번인 모양. 맨 아래에 보면 전월, 당월 방문 횟수도 찍혀있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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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근사하게 생긴 건물 앞에 내린 우리는 자못 당당하게 카지노로 들어갔다. 헉, 그런데 만만하게 생각하고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입구를 들어서자 생각보다 경비가 삼엄했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5000원을 내면 입장이 가능하지만,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했다. 죄를 지은 것이 없어도 괜히 탐지기 앞에선 작아지는 법. 괜히 주춤주춤 통과하는데 갑자기 나를 불러 세우는 보안 담당 언니.

"저기 카드나 화투 같은 거 들고 오셨나요?"
"아…. 아니요."

역시 난 타짜였던 거야. 카드나 화투는커녕 입장도 처음인데, 하며 속으로 재미있어했다. 사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모두에게 물어보는 질문인데, 혼자 재미있어 했던 거 같아서 괜히 뻘쭘해졌지만 말이다.

아무튼 우린 누가 봐도 관광객 행색으로 점퍼에 배낭까지 메고는 홀에 들어섰다. 그런데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득실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나와 친구는 깜짝 놀랐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원카드와 도둑찾기... 도박은 너무 어려워!

같이 간 친구는 나름 카드놀이를 해본 솜씨였지만, 앞에서도 밝혔듯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원카드와 도둑 찾긴데, 그런 걸 카지노 안에서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라곤 없었다. 그래서 가이드 책자를 하나 들곤, 뭐 흘린 거 없나 돌아다니는 꼬마 구두닦이처럼 이곳저곳을 찌르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더 헷갈려서, 일단 돈을 칩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눈에 들어오는 거라곤, 칩을 돈으로 바꿔주는 교환소뿐, 처음부터 우린 돈도 못 바꾸고 난관에 빠졌다. 물어보기도 왠지 부끄러워서 방황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카지노 딜러에게 돈을 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거다. 칩 교환은 딜러에게 바로 해야 하는 거였다.

카지노의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우리는 당당하게 딜러에게 다가가 우리의 쌈짓돈 3만원씩을 꺼내 총 6만원을 딜러에게 내밀었다. 헉, 그런데 두 번째 관문. 달러가 돈을 안 받는 거였다. 그러더니 고갯짓으로 땅을 가리켰다. 돈을 내려놓으란 뜻이었다. (손에서 손으로 돈을 건네서는 안 되는 모양이었다.)

카드를 펴듯 돈을 부채꼴로 폈다 접었다를 반복하더니, "얼마로 바꾸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천 원짜리요"라고 대답하는데 역시나 괜히 부끄러웠다.

6만원을 천 원짜리로 바꾸면 칩이 무려 60개다. 그래서인지 딜러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진짜요?'라고 묻는 듯 눈짓을 했다. 나는 맞다는 긍정으로 눈을 부라렸다. '맞습니다. 맞다고요! 천 원짜리 60개!'

두근 반, 세근 반. 무려 20배의 행운!

카지노 입구 사진. 카지노 내부는 사진 촬영이 안된다.
 카지노 입구 사진. 카지노 내부는 사진 촬영이 안된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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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다 쥐어지지 않는 칩을 둘이서 나눠들곤, 반은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칩을 움켜쥔 손에는 벌써부터 땀이 삐질 삐질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게임인 '빅휠'이란 기계 앞에 앉았다.

GOLD, SILVER, DIAMOND 등의 글씨가 써져 있는 판에 돈을 걸고는, 회전판을 돌려서 화살이 가리키는 쪽의 돈을 등급에 따라 받는 단순한 게임이다.

보통 GOLD는 회전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서 걸리면 2배의 돈을 받는다. 반대로 최고점인 JOKER는 회전판에서 딱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걸리면 40배의 행운을 가진다.

나는 처음부터 20배짜리 CRYSTAL에 걸었다. CRYSTAL에게 할당된 회전판의 공간은 딱 두 개. 3.70%의 확률이란다. 처음엔 물론 계속 잃었지만, 하나만 공략해라는 선구자의 말을 떠올리면서 꾸준하게 배팅을 하곤, 낮은 배율에도 몇 번 돈을 걸었다.

천 원을 건 배팅이었지만, 회전판이 돌아갈 때마다 마음은 두근 반, 세근 반 콩닥거렸다. 입으로 크리스탈, 크리스탈을 외치면서 손에 땀을 쥐고 있는 그 순간, CRYSTAL 앞에서 바늘이 우뚝 멈춰서는 게 아닌가. 심봤다! 천 원짜리 칩이 2만원이 되는 순간이었다. 얏호! 순식간에 나에게도 검정 칩(만 원짜리)이 두 개나 생겼다.

좋아서 방방 뛰다가 순간 주위를 둘러보곤 화들짝 놀랐다. 나 말고는 아무도 돈을 땄다고 즐거워하거나, 돈을 잃었다고 슬퍼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에 몇 십 만원씩이 왔다 갔다 하는 판에, 꼴랑 2만 원 땄다고 좋아하는 내 모습이 얼마나 귀여워(?) 보였을까 싶기도 했다.

한 번에 5000만원? 잭팟이 터지다

좀 머쓱하기도 하고, 다른 게임도 즐겨볼까 하고 자리를 옮겼는데, 다른 덴 사람이 너무 많아서 우릴 끼워주지도 않았다. 괜히 의기소침해서 옆에 비치되어 있는 공짜 음료수만 홀짝거리면서 슬롯머신에 도전했는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돈을 넣고 몇 번 툭툭하고 누르니 금세 돈이 다 떨어졌다.

"그러면 안 돼요. 적어도 18배 정돈 넣어야 따지. (1800원을 말하는 모양이다.) 내가 하는 걸 봐요."

우리가 안 돼 보였던지, 옆에 있던 아줌마가 참견을 했다. 우린 아줌마 하는 모양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러나 우리한텐 자신만만하던 아줌마의 슬롯머신은 1분에 만 원씩을 꿀꺽꿀꺽집어삼키고 있었다.

그 순간 바로 옆 슬롯머신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리면서 번쩍 번쩍 빛이 났다. 잭팟이 터진 거였다. 호기심 많은 나는 순식간에 달려가서 사람들 틈새를 마구 비집고 들어갔다. 슬롯머신 앞에는 한 아저씨가 자못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고, 딜러가 달려와 사진을 찍고 어쩌고 하면서 부산을 떨고 있었다.

"얼마 당첨된 거예요?"
"5000만원!"

우와~ 5천만 원! 잭팟이 터진 바로 옆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씁쓸하게 입맛만 쩝쩝 다시면서 서 있었다. 그 짜릿한 한 방 때문에 모두가 여기 앉아 있는 거겠지. 허나 5천만 원에 당첨된 아저씨도 그렇게 기뻐 보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아마 그 돈을 따기 위해 수십, 수백, 아니 혹은 수천의 돈을 쏟아 부었겠지. 게다가 한 방에 딴 그 돈을 온전히 들고 나갈 수 있을까? 아마 다른 잭팟에 기대서는 그 돈을 다 날려버리는 건 아닐까? 그 장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카지노에 들어와서 3시간 남짓이 지나고, 따고 잃고를 반복하는 동안, 결국 나는 만원을 잃었다. 그런데도 조금만 더 하면 될 것도 같은데, 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결국 강원도의 다른 곳도 구경해야 하기 때문에 "될 거 같은데..."라는 마음을 접고 2만원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환전을 했다.

문제는 "이번엔 될 것 같은데..."라는 마음이 아닐까?

병 주고 약 준다고, 카지노 측에서도 나름 중독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비고에 써져있는 '2개월 연속 15일 출입시 의무상담'! 의무상담이 과연 뭘까? 강원도민은 일주일에 한 번만 카지노 출입이 가능하단다.
 병 주고 약 준다고, 카지노 측에서도 나름 중독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비고에 써져있는 '2개월 연속 15일 출입시 의무상담'! 의무상담이 과연 뭘까? 강원도민은 일주일에 한 번만 카지노 출입이 가능하단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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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하마터면 희도 비도 없는 무기력한 그 곳에 빨려 들어갈 뻔했다. 자꾸 하고 싶고, 이번엔 될 것 같고, 이래서 도박이 무섭긴 무섭구나 싶었다. 나와서 걸어가는데 카지노 앞에 줄지어 늘어선 전당포들엔 금은 물론 차까지 맡아준다는 광고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슬펐다. 나는 '재미있자고' 카지노에 가서 재미나게 즐겼지만, 어떤 사람은 '죽자고' 카지노에 가서 이 어려운 세상에서 어쩌면 마지막 희망인 양, 도박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세상에는 공짜란 건 없다. 알지만, 잘 알고 있지만 나 같은 '헐렝이'도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것이 도박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이 무서워졌다.


태그:#강원랜드, #카지노,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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