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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분야의 예술은 서로 통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문학기행의 주제는 미술과 문학의 조화였다. 오지호 기념관을 거쳐 백민 미술관을 관람하고 점심 식사 후 티벳 박물관과 대원사를 둘러 본 다음 마지막으로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으로 일정을 잡았다. 나는 나름대로 이번 문학기행에서 꼭 얻어올 것이 있었다.

 

날을 받으면 비가 오는 징크스가 있는지 가뭄이 들어 야단이던 대지가 비에 흠뻑 젖은 다음 날. 비가 많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축축한 날씨에 바람까지 세서 따뜻한 곳이 그리운 날. 주암호를 끼고 달리는 버스는 초록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새순들도 그렇게 다 색깔이 다른지 생명은 신기하기만 하다.

 

 

먼저 도착한 곳은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에 있는 오지호기념관. 오지호(1905~1982)는 휘문보고에서 우리나라 최초 여성서양화가인 나혜석의 유화를 접하면서 그림에 눈을 떴다고 한다. 그는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후 인상주의로 화풍이 바뀌었다. 1960년 후에는 청색 계통의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였다. 국어교육에도 관심이 많았고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

 

호남 미술의 거두로 꼽히고 있으며 그의 아들 오승우, 오승윤도 화단에 널리 알려져 있다.오지호 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1층 140여 평 규모로 오지호 화백 작품 외에도 의재 허백련, 운보 김기창, 월전 정우성, 박생광, 오승우, 오승윤 화백의 그림과 조각가 윤영자, 김영중 씨 등의 작품도 전시되어있다.

 

기념관 앞의 들녘은 비를 머금은 구름이 덮고 있었다. 일 나온 아주머니의 수고를 안다는 듯 너그럽고 평화로운 봄 그대로였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시 백민 미술관으로 향했다. 새순들이 옹알이 하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아 자꾸 창밖의 초록 생명들에게 눈이 갔다.

 

 

대원사 가는 길 오른쪽에 자리 잡은 백민미술관은 군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으로 우리나라에서 딱 한 군데밖에 없다.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에 있으며 폐교를 개축하여 만들었다. 오지호화백의 제자인 백민 조규일은 강렬한 선과 호방한 구도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처음 만난 조각상이 "천상유희"라는 작품인데 같이 간 꼬마가 "하나 더 줘"라고 해서 얼마나 웃었는지...

 

전시실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다. "2009 한일 현대미술특별기획교류전"이 있어서 일본 화가들의 작품이 이층에 전시되어 있었다. 일본의 화풍은 보기에도 이거다 싶을 정도로 독특하다. 관람 도중 실내가 환했다가 어두웠다가 하여 위를 쳐다보았더니 자연채광을 이용하고 있었다. 지붕에서 비치는 빛의 밝기에 따라 같은 그림도 느낌이 달랐다.

 

옆건물에는 조상현 판소리 연구원이 있었는데 자물통이 채워진 건물이 어쩐지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조각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빗방울 맺힌 쑥도 들여다보며 수다를 떨다가 대원사 가는 길을 따라 좀 더 이동하였다. 유황오리 주물럭이 맛있다는 음식점에 도착하였다. 음식점 들어가는 길에 라일락, 제비꽃, 애기똥풀꽃 또 이름도 잘 모르는 꽃들이 피어 있었다.

 

 

유황오리 주물럭은 야채를 많이 넣어서 먹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간식으로 이것저것 먹어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입이 벌어지게 쌈을 싸 먹고 동동주도 한 잔 했다. 대원사까지는 멀지 않은 길이라 점심을 먹은 후 천천히 걸어갔다.

 

날씨가 맑으면 경치가 더 깨끗하고 선명해 보였을 텐데 흐린데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몸을 움츠려야 했다. 대원사 초입 오른 쪽에는 여름이면 연꽃이 아름다운 연못이 있는데 지금은 그 연못도 침묵 수행 중이다. 때가 되면 연대를 힘차게 밀어올리고 꽃에 함뿍 하늘을 들어앉히고 사람들을 맞이할 것이다. 왼쪽으로는 수미광명탑과 티벳박물관이 있다.

 

수미광명탑은 가섭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있으며 상륜부에는 금을 입히고 탑신부에는 백옥으로 장식하여 15m에 달하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탑이다. 맞은편의 박물관은 전통 티벳 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탱화, 세밀화, 밀교법구 등이 전시되어 있어서 티벳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한 번쯤 돌아보기에 좋은 곳이다.

 

 

박물관을 돌아보며 느낀 점은 어느 종교나 추구하는 것은 선이며 마음의 평화라는 것이다. 대원사는 연등을 다는 일로 어수선한 것 같았는데 이번 사월 초파일의 봉축행사의 주제가 "당신의 원수에게 연등을"이다. 성경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과 일맥상통 한다.

 

"용서는 단지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원수를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선물이자 사랑이다"라는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은 예수의 사랑과 일치한다.

 

대원사는 백제 무녕왕 3년(서기503년)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 대원사에 들어서면 빨간 모자를 쓴 불상들이 길가나 숲에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대원사가 태아령의 천도를 위한 고찰이기 때문이다. 태아령(태아 영가)이란 부모와 인연은 맺었지만 이 세상 햇빛을 못 보고 죽어간 가엾은 어린 영혼들을 말한다.

 

 

처음에 이 절의 스님이 태아령 천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10년 전 서울 '마리아 수녀회'에서 보급하는 '침묵의 절규'라는 비디오를 보고나서라고 한다. 생명은 귀한 것이고 생명을 지키는데 종교가 일조를 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가 다니는 천주교에서도 낙태를 반대하고 있다.

 

날씨 탓인지 경내는 마당 가득 연등만 차가운 바람에 흔들리고 구경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같이 갔던 분들도 차에 올랐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작은 연못 속의 올챙이가 고물고물하는 것까지 천천히 보고 나서야 꼴찌로 버스에 올랐다. 유명한 벚꽃길의 벚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봄은 이미 신록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태백산맥 문학관으로 이동하였다.

 

 

고목이 아름다운 길을 따라 올라가자 특이하고 세련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인상깊은 것은  문학관에 들어서기 전 왼쪽 벽에 새겨진 건축가의 이야기였다. 문학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김원씨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아픈 역사를 끄집어내기 위해 벌교읍 제석산의 등줄기를 잘라내고, 2전시실은 공중에 매달려 있는 형상으로 건축되었다. 또한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북쪽을 향하고 있다.

 

건축가 김원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소설이 그려낸 분단의 아픔은 산의 등줄기를 잘라내는 아픔과 비견될 것이었다. 건축가가 산자락을 잘라내는 행동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건물은 우리의 그 아픈 이야기가 묻혀있던 땅 속에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등줄기가 잘라지는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어야 했다.

 

 

땅을 파내려가 만든 토목옹벽이 건축물의 벽이 되었다. 나머지 한쪽 옹벽에는 소설을 그림으로 그리고자 마음먹었다. 그 엄청난 일을 일랑 이종상선생이 흔쾌히 맡아 주셨다. 그 고마움에 나는 건물 전체를 그림을 향하도록 놓았다.........건물은 한 발 물러선 듯, 멀리서 보면 그저 언덕에 유리탑 하나가 서 있어서 밤에는 지하의 억울한 영혼들을 위로하는 불빛이 새어나오는 듯한 탑이 하나 보였으면 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우선 소설 태백산맥의 표지를 그려 세워놓은 것이 강렬하게 눈에 들어온다. 전시실에서 유리를 통해 마주 보게 되는 옹벽은 높이 8m, 폭81m에 이르는 「원형상-백두대간의 염원」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일랑 이종상 화백에 의해 시각화 되어있다. 오방색 자연석을 재료로 세계 통일을 간구하는 문학, 건축, 미술이 조화를 이룬 최대․최초의 야외건식 '옹석벽화'이다. 바라보고 있으면 오방색이 주는 편안함도 느껴진다.

 

건축도 또한 문학과 통한다. 문학은 옹벽의 벽화와 통하고 벽화는 살풀이처럼 간절한 넋의 소리와 통한다. 이 소리는 음악과 통하고 빛과 색과 통하고 우리의 삶과 역사와 통한다. 그리고 종내는 정신과 가슴과 영혼과 통한다. 예술은 생명이며 모두 하나이다. 예술인의 눈물 속에 뻗어가는 상생의 지류처럼 산다는 것은 서로 통하는 일이다.

 

태백산맥하면 할 말도 생각도 많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작가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자료수집에 4년, 집필에 6년, 무려 10년을 태백산맥 집필에 매달렸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새삼스럽게 가슴이 뜨거워진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런 작가적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잖아도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요즘의 내 자신을 채찍질하게 된다. 나는 글에 그토록 열정적으로 매달려 본 적이 있던가?

 

 

작가의 육필 원고는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등장인물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보성, 벌교, 순천, 광양의 지도를 직접 그려가며 완성한 소설이 어찌 대단하지 않을 수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정신"이라는 말은 이런 때 어울리는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가 태백산맥을 필사한 원고뭉치도 내 키 높이였으니 참 대단하다. 내가 필사한 시는 어느 높이만큼 되려나? 너무 얇아서 두께를 잴 수도 없다.

 

전망대에서는 제석산과 현부자네집이 보였다. 중도 들녘이 내려다보이는 제석산 자락에 세워진 이 집과 제각은 본래 박씨 문중의 소유이다. 대문과 안채를 보면 한옥을 기본 틀로 삼았지만 곳곳에 일본식을 가미한 색다른 양식의 건물이라서 느낌도 독특하다.

 

소화와 정하섭의 애틋한 사랑의 보금자리이기도 하고 풍수를 전혀 모르는 눈으로 보더라도 그 땅은 참으로 희한하게 생긴 터라고 소설에서 첫 장면에 등장하는 첫 집이다. 유자나무가 잎을 틔우고 대문 앞에는 넓은 연못이 한가로운 풍경을 더하고 있다. 문학관 관람은 5월 31일까지 무료입장이고 6월 1일 이후에는 입장료를 받는다고 하니 관람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참고해도 좋겠다.

 

오늘의 대미를 장식한 태백산맥이 가슴 속에 오래 남아 있다. 문학 기행이란 이런 것이다. 작가 정신에 감동을 받고 나도 감동을 주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것. 적어도 그런 열정을 얻고 자극을 받는 것. 글을 쓸 때만큼은 나와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느낌으로 피를 토하듯이 쓰지 않으면 결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내게는 더욱 절실한 작가적 태도이다. 오늘 얻어온 것은 바로 이것. 태백산맥의 기운이다.

 


태그:#오지호기념관, #백민미술관, #대원사, #티벳박물관, #태백산맥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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