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5일 저녁 7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진영공설운동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차량이 뒤덮고 있었습니다. 봉하 마을, 당신이 눈감은 그 마을까지 오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꼬리가 너무 길어 보였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달려가 당신의 영정 앞에 두 손 모으고 싶어 셔틀버스 승차를 포기했습니다. 걸어서 20여 분 정도 걸리겠다는 주민의 말을 듣고 복잡한 중소 영세공장이 밀집돼 있는 진영읍 어느 언저리에 주차를 했지요.

 

젖먹이 아이도, 허리 구부러진 노인도... 봉하로

 

어둠이 깔린 보도블록으로 조문을 마친 조문객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더군요. 울퉁불퉁 그 길을 걸어 마침내 TV에서 노상 익숙하게 눈이 익었던 '봉하천' 옆 마을도로로 들어섰습니다.

 

왕복 2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는, 당신이 보고파 달려온 사람들은 너무도 많고 많았습니다. 유모차를 앞세운 젊은 부부, 아이를 안고 지고 목말을 태운 젊은 엄마 아빠. 그들의 마음이 너무나 예뻐 보여 그 와중에도 미소가 절로 떠올랐습니다.

 

길거리에는 다른 모습들도 많았습니다. 노부모를 모시고 조문행렬에 동참한 중년 부부. 나이와 성별과 지역을 망라한 저 마음들을, 당신을 속절없이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비통한 마음들을 당신은 헤아리고 계십니까.

 

'미안해 마라' 당신이 웃고 계십니다.

'원망도 마라' 당신이 당부하고 계십니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하나 아니겠느냐' 당신이 일깨워 주십니다.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우리의 우매함도, 당신이 겪었던 모진 고통도 이제는 허공이 된 당신의 크나큰 빈 자리도. 당신의 마지막 당부 그 말씀으로 메워 갈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보수언론에서 말하던 당신의 '아방궁'이 궁금했지만, 당신이 들며 날며 오가던 그 길들을 찬찬히 담고 싶었지만 어둠은 모든 걸 삼켜버렸습니다. 한 줄에 10명씩, 그래도 끝없이 길게 늘어진 조문행렬 속에 차례를 기다립니다.

 

그저 당신의 족적 모든 것을 마음에 담고 싶어 그 흔한 '디카' 하나 챙기지 않았습니다. 이 마당에 사진이 무슨 소용이며 지금 늘어놓는 넋두리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다만 황망하게 맞이한 당신과의 이별이 믿기지 않아 두서없는 발걸음만 떼어놓을 뿐입니다.

 

울퉁불퉁 얼굴도 '매력 쾌남'으로 보이던 그때

 

영전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바치고 짧은 묵념을 하며 눈물 대신 당신과의 유쾌했던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96년~97년이었던가요? 가물가물합니다. 그때 남편이 일했던 문화재단의 강연 연사로 2번에 걸쳐 당신이 초대되었지요. 3당 야합을 반대하고 정치적 소신을 지키기 위해 황야로 나선 당신. 당신의 고향 부산에서 연거푸 낙선하고 있을 때였을 겁니다.

 

그런 당신을 지지하기 위해, 당신의 신념에 동의하고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광주에 특별히 모신 것입니다. 단상에서 당신의 정치철학과 삶의 철학을 열정적으로 토로하는 모습은 정말로 아름답고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때는 울퉁불퉁 못생긴 당신 얼굴조차 매력덩어리 쾌남으로 보였을 정도니까요. 식사를 마치고 간 2차에서 우리들은 당신과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흥겨운 어깨춤도 함께 추었지요. 그런 인연을 이어 광주는 당신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아줌마들조차 당신의 경선승리를 위해 앞다투어 경선인단 모집에 동참했을 정도니까요.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눈물을 흘리며 춤을 추었습니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행복. 당신을 지지했다 하여 떡 부스러기 하나 돌아올 것 없지만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대통령 같지 않은 대통령'의 소중함, 왜 몰랐을까요

 

당신을 믿고 의지했기에 5년 내내 당신을 향한 미움과 원망도 깊었습니다. 비록 집안에선 있는 구박 없는 구박 퍼부어대는 남편이라도 남들이 남편 욕하는 것은 못견디듯, 온갖 메스컴과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난도질할 때는 정말로 힘들고 화가 났습니다.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당신이, 그만한 대접 밖에 못 받는 당신의 가벼운 처신에 너무나 울화통이 터져 욕하는 그 사람들보다 한 수 더 떠 당신을 비판하고 비난하였습니다.

 

독재자를 끔찍하게 싫어한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어느새 그 독재의 사슬에 중독되었나 봅니다. 권위를 팽개친 당신은 더 이상 우리가 존경하는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대통령 같지 않은 대통령'에 짜증도 많이 났습니다.

 

'바보 노무현' 당신은 이 별명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파안대소하셨지요. 이제 알겠습니다. 당신을 훌쩍 떠나보낸 텅 빈 광장에서 당신이 이루고자 했던 새 세상,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파 몸부림쳤던 대동세상의 염원이 얼마나 간절하였던가를.

 

당신은 알고 계십니까?

당신은 보고 계십니까?

뒤늦게 당신을 떠나보내고 통한의 눈물을 쏟고 있는 어리석은 우리들을.

 

바보 노무현, 우리들의 영원한 대통령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태그:#바보 노무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