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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9월 6일 3선개헌반대연설중인 김대중 대통령
 1969년 9월 6일 3선개헌반대연설중인 김대중 대통령
ⓒ 김대중도서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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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님,

당신께서 토인비를 마음의 스승으로 생각하셨듯,
저도 당신에게 직접 배운 바는 없지만,
항상 당신을 마음속 스승의 한 분으로 생각해왔습니다.
당신이 '도전과 응전'의 역사철학을 토인비에게 배우셨듯
저는 끝없는 고난과 싸움으로 얼룩진 당신의 삶속에서 '도전과 응전'을 배웠습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어느 무더운 여름날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날이 너무 더워 잠시 은행에 들렀다 손이 심심해 우연히 펼쳐본 당신의 책.
전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아껴두었던 도서상품권으로 당신의 책을 샀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채 돌아오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더랬지요.
그 더운 여름에도 등뒤를 오싹하게 만드는 떨림. 떨림. 떨림.
그날의 떨림을 전 아직 잊지 못합니다.

그렇게 전 당신을 알고, 5.18을 알고,
이 땅의 독재정권이 저지른 만행을 알고,
이 땅의 수많은 열사들의 피울음을 알고,
당신을 비롯한 수많은 거룩한 희생이 이룩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알았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어린 저를 눈뜨게 한, 세상으로의 통로였습니다.

옥중에서, 그 두려운 죽음의 문턱앞에서도,
우리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한 당신의 기도를 기억합니다.

1980년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중이던 교도서에서 부인에게 보낸 김대중대통령의 옥중서신
 1980년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중이던 교도서에서 부인에게 보낸 김대중대통령의 옥중서신
ⓒ 김대중도서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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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주님, 우리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첫째, 이 나라의 국시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만이 자유의 길이요, 경제적 평등의 길이요, 사회적 복지의 길입니다. 민주주의만이 국민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보람과 자랑을 느낄 수 있는 길입니다. 주여,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확고하게 이루어지도록 은혜를 베푸소서.

둘째,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며 역사의 주체입니다. 그러나 민중은 언제나 소외되고 그 권리는 무시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민중의 자기 권리의 회복은 스스로의 각성과 노력과 희생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것만이 정도입니다. 주여, 우리 겨레가 주님의 뜻에 따라 폭력과 파괴를 배제하되 그러나 끈질긴 노력과 전진으로 주님이 주신 천부의 권리를 완전히 누릴 수 있도록 그들을 깨우치고 일으켜 주소서.

셋째, 이 나라는 분단과 동족상잔의 쓰라린 역사 속에 살고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공산주의의 위협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지도자와 국민이 모두 각성해서 이 나라에서 자유와 정의와 번영을 동시적으로 실천하여 공산주의에의 튼튼한 방벽을 이루고, 그들로 하여금 무력통일을 단념하고 평화적인 공존과 통일의 길에 응해 오게 하는 태세를 갖출 수 있게 하소서.

넷째, 이 나라의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법관 등 국가 운명에 대한 관건적 입장에 있는 이들이 국가 운명의 장래에 대한 두려운 경계심과 인간의 명예나 부귀의 허망함을 해방 이후의 많은 교훈적 사례를 통해서 깨닫고, 모든 판단과 행동을 국가와 국민대중을 중심으로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양심을 일깨우고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소서.

다섯째, 이 땅의 모든 고난 받는 이들의 각성과 결단으로 자기 운명과 역사의 주인이 되게 하여 주시고, 의롭게 살다가 지금 고초를 당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주님의 자비와 은혜를 넘치게 주시어 그들이 주님의 영광과 승리를 보고 노래하게 하소서. 아멘.

30여년전에 하신 당신의 옥중 기도가
왜 지금 이토록 가슴에 사무치는지 다시 마음 한 켠이 저려옵니다.
당신이 민주주의를 이룩해 놓은 2009년의 대한민국에서,
왜 우리가 이토록 서럽고 억울해야 하는 것입니까?
왜 당신을 보내는 마음이 이토록 서러워야 하는 것입니까?
나라와 겨레를 위해 덕담을 해주셔도 모자랐을 당신의 여생이
왜 또 다시 걱정과 분노를 토해내는 시간이 되었어야 하는 겁니까?

그 피맺힌 억울함을 짓누르고서라도 당신이 멈추지 않는다면,
보복의 역사는 반복되고, 이 나라 민주주의 역사 역시 거꾸로 흐를 것이라는
그런 피맺힌 용서를 하고 이룩하신 이땅의 민.주.주.의.

그것이 역류해가는 모습.
그 모습을 누구보다 참을 수 없었던 당신을 생각하면,
그 억울한 마음을 안고가신 당신을 생각하면
다시 가슴에 눈물이 흐릅니다.

잘있거라 내 강산아 사랑하는 겨레여
몸은 비록 가지마는 마음은 두고 간다.
이국땅 낯설어도 그대 위해 살리라.

이제 가면 언제올까 기약 없는 길이지만
반드시 돌아오리 새벽처럼 돌아오리
돌아와 종을 치리 자유종을 치리라.

잘있거라 내 강산아 사랑하는 겨레여
믿음으로 굳게 뭉쳐 민주회복 이룩하자.
사랑으로 굳게 뭉쳐 조국통일 이룩하자.

- 이제 가면, 김대중 <1982년 12월 23일 미국으로 출발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님,
저승땅 낯설어도 부디 우리 국민 생각하시여,
가끔은 새벽을 알리는 자유의 종소리로 돌아와주소서.

가시는 순간까지 당신의 마음을 짐지우던,
또 다시 상처입은 이땅의 민주주의.
이 고난의 도전에 처한 저희들에게 자유의 종소리 들려주소서.

당신의 종소리를 듣는 새벽.
모두 다함께 손잡고 후회없는 응전으로 이겨내어,
이땅의 민주주의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겠습니다.
다시 이룬 민주주의로 이 나라 통일의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나의 영원한 스승이여,
부디 설운 마음 접으시고 영면하소서.

부디 영면하소서....
 부디 영면하소서....
ⓒ 김대중평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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