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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고철환 서울대 교수가 1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요시다 타로의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고철환 서울대 교수가 1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요시다 타로의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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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떻게 해야 4대강 사업을 막을 수 있을까요?"

'노무현 강독회' 11번째 특강 자리에 참석한 한 시민이 고철환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에게 물었다. 고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인물. 즉 지속가능한 사회 발전을 연구한 학자에게, 지속가능 하지 않은 대규모 국책 사업을 막아낼 비책을 물은 것이다. 고 교수의 대답은 짧았다.

"반대 운동을 해야죠. 열심히 반대를 해야 합니다."

특강을 듣기 위해 1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실에 모인 70여 명의 시민들은 웃었다. 하지만 고 교수의 대답은 농담이 아니었다. 국민 여론은 물론이고 합법적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채 진행 중인 4대강 사업을 막을 뾰족한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게 합리적 토론을 기대하는 건 난망한 일이다.

4대강 사업이 상징하는 토건국가, 우리의 지속 가능한 길은?

4대강 사업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리고 여전히 개발의 굴삭기 소리가 요란한 이 땅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길은 무엇일까. 우리가 '생태' '늘 푸른 혁명' 같은 수사를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고철환 서울대 교수가 1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요시다 타로의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고철환 서울대 교수가 1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요시다 타로의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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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특강의 핵심 고민은 바로 이런 물음들이었다. 특강의 텍스트가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이었으니 참석자들이 이 나라를 어떻게 하면 늘 푸른 생명의 땅으로 가꿀 수 있을지를 생각한 건 당연했다.

일본인 요시다 타로가 집필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은 쿠바의 수도 아바나는 어떻게 도시농업을, 그것도 유기농으로 성공할 수 있는지 현장감 있게 보여주는 책이다. 현재 쿠바는 생태 유기농업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시선을 끌고 있다.

책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듯, 쿠바가 유기농업을 적극 도입하고 도시 자투리 땅을 활용해 도시농업을 짓기 시작한 역사는 채 20년이 되지 않는다.

사실 쿠바의 유기농업은 똑똑한 계획에 의한 선택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처절한 선택이었다.

쿠바는 게바라와 카스트로의 혁명 이후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왔다.

미국과 인접한 사회주의 국가 쿠바가 안정적인 국가 운영을 할 수 있었던 건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원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자 쿠바의 경제는 요즘 말로 하자면 '한 방에 훅' 가버렸다. 여기에 미국의 경제 봉쇄도 시작 됐다.

경제 봉쇄와 원조 중단이 낳은 쿠바의 유기농 혁명

결국 쿠바는 먹고 살기 위해 농촌과 도시를 막론하고 농사를 지었고, 농약이나 비료 등이 없으니 당연히 유기농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쿠바의 불가피한 선택은 오늘의 '푸른 쿠바'가 증명하듯 대성공을 거뒀다. 물론 이런 성공이 우연으로만 이뤄진 게 아니다. 국가는 농업을 장려했고, 연구자는 새로운 농법을 연구했으며, 인민들은 서로 협력해 유통개혁을 이뤄냈다.

1990년 쿠바의 식량자급률은 45%에 머물렀지만, 2002년에는 95%로 바뀌었다. 거의 100% 식량자급을 이룬 셈이다. 그것도 친환경 유기농으로! 식량만이 아니다. 쿠바 유아 1000명 당 사망률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낮고, 교사 1인당 학생, 과학자와 의사 수 등 각종 사회지표에서 미국을 앞서거나 비슷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뿐만 아니라 삶의 질도 높은 편이다.

그렇다면 농약과 제초제 치고 비료를 듬뿍 주는 대한민국의 농업지표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농업생산지수에서 30개국 중 28위다. 식량 자급률은 28%에 불과하고, 전 세계 5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게다가 쌀을 제외하면 곡물 자급률은 고작 5%다.

결국 쿠바, 그중에서도 수도 아바나의 자투리 땅을 이용한 도시농업의 성공은 '식량 약소국'인 우리에게 많은 걸 시사해 준다.

지난 10월 26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경찰병력이 동원된 가운데 4대강 예정지 측량이 강행되자 농민들이 도로를 농기계로 봉쇄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농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말바꾸기를 규탄하는 뜻으로 대선 후보 시절 팔당지역 유기농업 현장을 방문한 사진을 농기계에 걸어 놓았다.
 지난 10월 26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경찰병력이 동원된 가운데 4대강 예정지 측량이 강행되자 농민들이 도로를 농기계로 봉쇄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농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말바꾸기를 규탄하는 뜻으로 대선 후보 시절 팔당지역 유기농업 현장을 방문한 사진을 농기계에 걸어 놓았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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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 교수는 "아바나 도시농업은 풍족하지 않게,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여 주었다"며 "생태계를 되살리는 효과까지 있었으므로 농업, 생태계, 인간사회가 함께 상생하는 결과를 가진 것이 아바나 도시농업이다"고 아바나 모델을 통한 우리 삶의 변화를 주문했다.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28%... 팔당 유기농가는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질 판

하지만 현재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떠올려 보면 아바나의 성공 신화를 벤치마킹하는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쿠바 아바나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경기도 남양주 일대 팔당지역에는 대규모 유기농단지가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연간 약 100톤의 유기농산물은 수도권으로 공급되고 있다. 이런 환경으로 인해 '유기농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도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하지만 이 행사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으로 팔당 지역의 유기농이 없어지거나 대폭 축소될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도시 주변에 존재하는 유기농도 갉아 엎으면서도 현 정부는 '녹생성장'을 주장하고 있다.

퇴임 후 봉하마을로 내려가 직접 친환경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지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을 읽으며, '생태마을 봉하'를 꿈꿨을까? 친환경 농법을 직접 실천한 노 전 대통령이었으니, 분명 이 책에서 많은 감동과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친환경 농부 노무현'에게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적잖게 실망했던 적도 있다. 바로 새만금사업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새만금사업 역시 4대강 사업만큼이나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업이라고 평가해왔다. 친환경 생태에 관심을 가진 노 전 대통령은 왜 새만금 사업을 저지하지 못했을까.

고 교수는 "우리 사회는 경제는 발전했지만 다른 사회적 지표는 그를 따라지 못하는 상황이다"며 "일제시대인 1920년대 만들어진 '공유수면매립법'이 여전히 남아 있어, 간척 사업 등을 하게 만드는 강력한 근거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 새만금 사업이 대법원까지 갔고,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여러 기회가 있었는데 슬프게도 '간척사업을 막는 브레이크'까지는 걸리지 않았다"며 "결국 경제 성장에 걸맞게 사회가 성숙해져야 하고 (환경을) 근본적으로 처방할 줄 아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제 성장에 걸맞게 의식이 생겨야 새만금이든, 4대강을 지킬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고철환 서울대 교수가 1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요시다 타로의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고철환 서울대 교수가 1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요시다 타로의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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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권력 집단이 특정한 의지를 갖고 강제로 환경 사업의 방향을 정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의 의식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근본적 성찰을 요구하는 고 교수의 제안은 일견 추상적이고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4대강 사업 등 토건국가로의 회귀를 막을 수 있는 해법은 시민 개개인의 생각의 전환과 성찰일 수밖에 없다. 고 교수의 말을 더 들어보자.

"과학자여서 그런지, 나는 과학기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부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세상을 파괴했다고 말해야 개혁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과학을 알아야 자연을 관리할 수 있다.

새만금을 잘 보호해야 한다고? 그러면 왜 보호해야 하는지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정책은 과학과의 상호 관계를 통해서 나온다.

우리는 능력을 함양하고 계속 개발해야 한다. 다시 말해, 끝없는 배움에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것, 그래서 세상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열심히 해야 할 일이다."

지속가능한 개발과 삶. 그것은 결국 세상과 자연의 순환 법칙을 알고 새로운 삶을 고민할 때 가능할 것이다.

저 멀리 봉하마을의 생태 농법은 노 전 대통령이 떠났어도 올해 큰 성과를 냈다. 그렇다면 4대강 사업도 이명박 대통령이 물러나도 우리에게 축복으로 다가올까, 아니면 재앙으로 다가올까?



태그:#노무현 강독회, #고철환, #생태도시 아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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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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