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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글감옥> 겉표지
 <황홀한 글감옥> 겉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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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하다고 느낄까? 개인마다 생긴 모습이 다르듯 즐기는 일 또한 천차만별일 것이다. <황홀한 글감옥>의 저자 조정래 선생은 기꺼이 수도자와 같은 삶을 택하면서 글감옥에 갇히는 것을 행복이라 여겼다. 얼핏 생각해서는 납득하기 힘든 일이나, 그런 노력이 있었으니 대작을 잉태하고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을 게다.

"모든 인간적 불의에 저항하고, 올바른 인간의 길을 옹호해야 하는 작가는 오로지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인생을 총체적으로 탐구하는 작가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입니다. 그 책무를 달고 즐겁게 이행할 의지와 각오가 없다면 작가가 되기를 바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35쪽

적어도 작가가 되려면 그 정도의 각오는 해야 하나 보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헤밍웨이나 레지스탕스에 가담한 사르트르, 드레퓌스 사건으로 정부 권력에 도전한 에밀 졸라를 예로 들며 저자는 '작품과 함께 행동하는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릇 소설가라면 연애 나부랭이만을 소재로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는 듯했다.  

자식을 영재로 키우고 싶다면 국어사전을 사라고 저자는 강조했다. 말문이 터진 아이들이 사소한 질문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가끔은 부모도 딱히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난감한 경우들이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그냥 얼버무리기보다는 아이와 함께 국어사전을 펼쳐 뜻풀이를 찬찬히 읽어 보라고 저자는 권한다. 그러다 보면 덤으로 부모의 '단어 실력도 늘어 친구들 중 일기와 편지를 가장 멋지게 잘 쓰는 사람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평소 그런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아이에게 따로 글짓기 공부를 시킬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받아쓰기도 마찬가지.  

"세상의 모든 노동은 치열한 것을 요구할 뿐 감상적 기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노동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로 행·불행이 갈립니다. 저는 그 숨 막히는 노동의 세월을 '글감옥'이라고 표현했고, 그 노동을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작가'라는 직업으로 평생을 살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그 숨 막히는 노동을 견딜 자신이 없으면 작가 되기를 원치 마십시오." - 249쪽

저자는 20년 동안이나 방에 갇혀 술 한 잔 안 마시고 글을 썼다고 한다.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술을 즐기지 않더라도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술도 한 잔 하며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때로는 밤을 세워가며 여유롭게 살아가고픈 게 인간의 본능일진데, 그 모든 세속적인 즐거움을 뒤로한 채, 저자는 스스로 글감옥에 갇혀 황홀한 글쓰기에 전념했다. 술을 마시면 마신 날을 포함하여 며칠 동안을 원래의 몸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허송세월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놀라운 일이 많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을 베껴 쓰라고 한 일화도 인상적이었다. 아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며느리에게까지 그러는 것은 좀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은 이들이 했을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는 태백산맥을 베끼느라 힘들었겠지만, 그 결과 큰 손자가 똑똑한 아이로 태어났으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을까. 태백산맥까지는 아니더라도 아기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단편소설을 몇 편 베껴보는 일도 좋은 태교가 될 듯하다.   

저자가 <태백산맥>을 베끼게 한 이유는 '매일매일 성실하게 꾸준히 하는 노력이 얼마나 큰 성과를 이루는지 직접 체험케 하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루에 원고지 10매씩만 베끼면 4년이면 다 베낄 수 있다고 한다. 태백산맥 문학관에 가면 아들과 며느리, 독자 119명이 릴레이로 쓴 필사본을 볼 수 있다.  

<황홀한 글감옥>은 작가 생활 40년 자전 에세이니만큼 그 울림도 컸다. 그의 대하소설 3부작을 읽은 독자라면 이 책 또한 놓치기 힘들 것이다. 문학을 하고 싶은 사람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인생의 지혜가 가득 녹아있는 책이라 가을의 끄트머리에서 읽으면 참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지음, 시사IN북(2009)


태그:#글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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