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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최근 우리 시대 진보의 대안을 만들고 있는 싱크탱크들의 활동을 소개했습니다. 이번 기사는 국내 진보싱크탱크 기획 마지막회입니다. 12월 중순께부터는 해외 진보 싱크탱크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글쎄요. 복지의 '맛'을 알게 됐다고 할까요"

대학원에서 보건학을 전공하는 박은진(35)씨에게는 요즘 새로운 '월례행사'가 생겼다. 그는 한 연구 단체에서 매달 주최하는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다. "처음에는 전공 관련 세미나라 우연히 왔었는데 듣다보니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하는 박씨. 그녀가 참여한 주제는 '의료', '교육', '신자유주의 위기 이후의 경제' 세 가지다.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진 세미나에 단 3일 참여했을 뿐인데 그녀는 어떻게 복지의 '맛'을 알게 됐다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세미나를 주최하는 단체가 바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이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아동, 여성, 노인, 보건, 노동, 교육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능동적인 복지제도를 확립할 수 있는 정책 연구와 유통에 집중하고 있는 민간 싱크탱크다. 이곳에서 다루는 모든 주제는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푸는 데 사용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민주정부가 남긴 양극화, 우리가 치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홈페이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홈페이지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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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출범한 것은 지난 2007년. 현도사회복지대학교  이태수 교수, 서강대 문진영 교수, 제주대 이상이 교수 등 노무현, 김대중 정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학자 20여 명은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1년을 남겨둔 상태에서 "지난 '민주정부' 9년간의 결과물이 문제가 있다"는 합의에 도달했다.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였다. 산업구조가 수출 중심의 대기업과 내수 중심의 중소기업으로 양극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은 대기업에게 지배, 수탈 당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또한 정규직은 숫자가 줄면서 임금이 상승하고, 비정규직은 점점 숫자가 늘면서 임금은 하락하는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나타났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노동시장이 양극화되자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좋은 대학'에 가려는 사회적인 움직임 때문에 사교육비 시장이 팽창했다"며 "사교육에 소득이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교육을 통한 사회적 지위의 대물림 현상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양극화는 대량의 빈곤층을 낳았다. 소득 수준이 중간소득층의 소득 50%이하인 가구 비율을 나타내는 상대빈곤율은 1999년 7.76%에서 2006년에는 16.22%까지 치솟았다.

"시장 소득이 양극화되면 조세, 재정 정책으로 정부가 적극 개입해서 조정해야 합니다. 부자들에게 받는 직접세인 소득세를 크게 늘리고 재정 지출은 전 국민이 보편적으로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복지로 풀었으면 전체적인 소득의 재분배가 일어났을 텐데 국가가 이런 역할을 충분히 못했습니다."

"냉정히 보면 결과적으로 민주정부가 양극화를 심화시킨 정권이 된 셈"이라는 것이 이상이 대표의 분석이다.

복지정책 전문 싱크탱크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만들어진 데는 이런 문제의식이 있었다. 문제는 국가의 사회적 복지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것이었으니 해결책은 간단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정책을 뼈대로 세 가지 목표를 정했다. 첫째는 경제 영역에서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자유 방임, 시장 만능의 체제에 대해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이고, 둘째는 모든 사람들이 복지의 주체이자 대상이되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강력한 조세재정정책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세번째는 이렇게 만든 한국형 복지국가의 장점을 담론화시켜서 확산, 교육하는 것이다.

연구에서 '시식'까지... 복지 '맛'좀 보세요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다른 싱크탱크들과 가장 확연하게 구별되는 지점은 이 곳이 일반적인 연구만 하는 싱크탱크가 아니라는 것이다. 애당초 세웠던 세 가지 목표에도 있듯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복지정책에 대한 연구와 함께 복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지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는 일을 중요한 업무로 진행하고 있다.

이런 특성은 가장 먼저 발간한 연구물인 책 <복지국가 혁명>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지난 2007년 7월에 출간한 이 책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대화체로 구성돼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복지국가혁명>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복지국가혁명>
ⓒ 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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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뿐만이 아니다. '국민건강권 문제를 정확하게 제기하고, 한국의료제도의 미래 청사진을 탁월하게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의료민영화 논쟁과 한국의료의 미래>도 대중이 읽기 쉽게 쓰여졌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연구를 담당하는 정책위원들이 공저자로 참여한 <보험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진실>, <추적, 한국 건강불평등 사회의제화를 위한 국민보고서>등의 서적 역시 대중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다량의 사례들로 구성되어 있다.

강연회나 교육 일정도 1년간 빼곡하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는 복지국가의 정책 전문가를 꿈꾸는 이들을 대상으로 5주간 교육하는 '복지국가 정책아카데미'를 5회까지 진행했으며, 정치·경제·사회 분야에서 주제를 정해 토론하는 자리인 '월례정책세미나'를 매달 열고 있다.

10만원 가량의 수강료를 받는 '복지국가 정책아카데미' 수료자는 현재까지 120여명, 무료로 진행되는 '월례정책세미나'에는 매달 많게는 20~3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밖에도 서울 이외의 지역을 순회하며 연간 10회정도 강연회를 연다. 매년 1000여명의 시민에게 직접적으로 복지 정책에 대해 알리고 있는 셈이다.

정책위원들이 개인적으로 다니는 강연까지 합치면 시민과의 접촉 횟수는 훨씬 늘어난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 의료민영화, 보편적 복지정책을 주제로 정책위원들이 1년에 120회정도 강연을 다닌다"는 것이 이상이 공동대표의 설명이다. 이 대표만 해도 이번 달 강연일정이 15회 잡혀있다.

지난 11월 23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실에서 열린 월례정책세미나. 2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지난 11월 23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실에서 열린 월례정책세미나. 2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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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으로는 홈페이지에 가입한 회원들 5500여 명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2번씩, 월요일과 목요일에 뉴스레터를 발송한다. 월요일 뉴스레터는 정책위원들이 쓴 칼럼이 주 내용이고 목요일은 주로 논평과 성명으로 구성된다. 논평이나 성명은 그 주에 사회의 이슈가 되었던 사건, 사안에 대해 복지국가적 입장에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최근 발송된 칼럼은 <'친서민 중도실용'은 복지재정에 반영되고 있는가?>. 이명박 정부가 친 서민 중도실용 노선을 강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책 노선이 복지예산에 매우 미미하게 반영되었거나, 추경예산을 기준으로 한다면 오히려 더 악화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논평으로는 'MB식 등록금 후불제 본색 드러났다'있다. 정부가 등록금 후불제를 졸업 후 상환제로 바꾸면서 이에 들어가는 국가 예산은 크게 줄인반면, 청와대 관련 예산은 크게 늘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뉴스레터로 나가는 칼럼과 논평은 각각 <프레시안>과 <레디앙>에도 실린다.

"상근 연구원 확충...후원회원 늘리는 게 고민"

연구를 담당하는 정책위원의 숫자만 60여명. <코리아 연구소>와 함께 국내에서는 매머드급 네트워크형 싱크탱크로 꼽히지만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역시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책위원들이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만 각자 생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노동현안, 고용보험 문제 등 중요한 이슈에 대해 즉각적으로 결과를 만들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네트워크형 싱크탱크의 한계는 상근연구원이 적거나 없기 때문에 시사적인 문제에 대해 즉각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겁니다. 가령 비정규직 문제가 발생했을때 언론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답이 뭐냐'고 질문해올 수 있거든요. 이 때 빨리 대답을 해줄 수 있어야 그 싱크탱크의 영향력이 커지고 그 연구의 담론이 확산될 수 있지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는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3명 정도 상근 연구원을 두려고 준비중이다. 지금까지는 상근 연구원이 맡아서 해야 할 역할을 소수의 '운영위원'들이 해왔지만 이제 '용량초과'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들의 후원에만 의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형편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250여명의 후원회원이 보내주는 월 750만원 가량의 후원금을 2배 수준으로 올려야 3명 정도의 상근 연구원 인건비와 연구 지원이 가능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후원회원의 수를 크게 늘려야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

빠듯한 예산 때문에 생기는 고민은 또 있다. 바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홈페이지 접근성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점. 현재 검색사이트 <구글>에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검색하면 링크와 함께 '이 사이트는 컴퓨터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경고문구가 표시된다. 지난 7월에 있었던 DDOS공격 사태 전에는 2만 ~ 4만등 사이를 유지하던 홈페이지가 악성 코드의 공격을 받으면서 10만등 아래로 떨어졌다.

"그 와중에 해킹도 한 번 당했다"며 "'복지국가를 안 하고 싶어하는 세력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웃으며 말하는 이상이 대표.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홈페이지를 정비하고 블로그형 홈페이지로 개편을 생각중이라고 한다.

"복지국가 실현 위해 지방선거 정책 지원할 것" 

요즘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내년 지방선거에 촛점을 맞춰 새책 집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개혁·진보 세력이 지방선거에서 이기고 복지국가의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전면에 나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새로 나올 책은 복지국가의 조세·재정 전략, 정치 전략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며 내년 3월쯤 출판될 예정이다. 이상이 공동대표는 "지금까지 진보세력이 한나라당과 뚜렷하게 차별되지 못했던 정책 실현 부분을 보완할 예정"이라며 "'복지국가가 이래서 가능하겠구나'하는 것을 보여주는, 대학생 수준이면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이 낮은 형편이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내놓을 구체적인 복지정책에 걸리는 기대는 더욱 크다. 지난 11월 18일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발표한 '경제사회 발전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복지·분배 수준은 OECD 30개 회원국 중 최하위였다. 게다가 그마저도 2010년 예산에서는 저소득층으로 가는 복지 예산이 대폭 삭감된 상태다.

국민들이 정부의 복지 예산 삭감에 별 저항을 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 복지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따뜻한 것인지를 제대로 체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국민들의 '복지 미각'을 되찾아 줄 수 있을지 자못 기대가 크다.

"시민들 참여없이는 진보 싱크탱크 발전 어려워"
[인터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상이 공동대표
'복지 후진국'인 우리나라에서 지식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복지를 전문으로 하는 싱크탱크를 운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창립멤버인 이상이 공동대표에게 들어보았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상이 공동대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상이 공동대표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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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후 복지국가 소사이어티의 연구 지향은 어떤 것입니까?
"복지국가의 사례연구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스웨덴의 노인복지, 유럽 주요국가들의 노인복지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생동감있게 연구하고 우리 상황에 어떻게 적용 가능한지 살펴보는 겁니다. 교육과 보육 분야도 하나하나 심도있게 연구해서 책으로 낼 예정입니다. 복지국가의 정치와 우리나라의 정치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연구하는 것도 관심이 많습니다.

- 싱크탱크 운동을 하며 만족스러웠던 부분이나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이 있다면.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복지국가라고 하는 것이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인정을 못받았는데, 최근 2년사이에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죠. 복지국가가 양극화 시대에 가장 적당한 대안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 제일 기쁩니다.

아쉬운 것은 전문적으로 복지국가 담론을 추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겁니다. 다 함께 잘 살수 있는 복지적 가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역시 떨어지고 있어서 진보의 추진력이 날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는 것들이 아쉬운 부분이죠."

- 우리사회의 진보 싱크탱크의 수준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어떻게 보십니까?
"대한민국의 진보 싱크탱크는 아직 취약한 수준입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채택하고 있는 전문가 네트워크형 싱크탱크도 취약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참여하는 숫자나 참여하는 사람들의 강도가 아직 견고하지 못하고, 무엇보다 상근연구원을 고용하고 있는 싱크탱크가 전체 중 매우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문제에요. 재정없이 연구할 수 있는 싱크탱크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싱크탱크가 독지가나 기업이나 정치 권력으로부터 후원을 받게 되면 본래 취지가 순수해지지 못하고 훼손되기 쉽습니다. 시민들이 싱크탱크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에요. 오래가는 싱크탱크를 위해서는 이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로서 시민사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어떤 형식으로든 관심을 가지고 참여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양극화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요즘은 다들 개인적으로 위험에 대처하고 살아남는데만 집중하는 것 같아요. 시민들이 한 번쯤은 옆을 보면서 다 같이 살아남는 것을 함께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이 복지국가거든요.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살아남자고 옆 사람을 끌어안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이 이어진다면 우리나라도 금방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김동환 기자는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재학생입니다.



태그:#진보싱크탱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싱크네트, #싱크탱크, #복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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