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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는 이 책에 대해 "이 육성의 질문들은 모든 독자들의 궁금증을 푸는 데 그런 대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히고 있다.
▲ 조정래의 <황홀한 글감옥> 조정래는 이 책에 대해 "이 육성의 질문들은 모든 독자들의 궁금증을 푸는 데 그런 대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히고 있다.
ⓒ 시사IN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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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라니! 괜한 주례사는 집어치우기로 하자! 다만 그가 펴낸 대하소설에 소비된 방대한 양의 원고지 분량은 기록해두자! 찬사만을 위해 기록하자는 것이 아니다. 필자에게는 정말로 궁금했던 것이 풀렸던 경험을 말하기 위함이다.

왜 가끔 그런 소설 본 적 있지 않나? 장편소설을 읽는데, 초반에 잠깐 스치듯 나왔던 인물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뜬금없이, 정말 뜬금없이 나타나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 작가의 역량 부족이라거나, 개연성 부족이라고 지적하기에는 작가들에게 사실 좀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 원고지의 빈 칸을 채워나가기 직전, 그들이 가졌던 '백색공포'를 떠올려보라. 또 그들이 그 원고지의 빈 칸을 채우기 위해 쏟은 열정을 생각해보라.

그런데 조정래라니! 그가 써 낸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떠올려보라! <태백산맥>과 <한강>은 각 10권이다. <아리랑>은 10권으로도 부족했는지 12권이나 썼다. 비록 일부 평론가들이 소소한 것들을 지적한 적도 있지만, 이 소설의 전개에는 큰 무리가 없다. 조정래는 어떻게 그러한 방대한 소설을 꾸려낼 수 있을까.

몇 해 전, 필자는 '태백산맥 문학관'과 '아리랑 문학관'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아름다운 지도'란 그건 조정래가 대하소설을 꾸리기 위해 그린 지도였는데, 소설의 배경을 대략적인 지도 형식으로 그리고 그 위에 인물들의 이름과 간략한 메모를 남겨놓은 지도였다. '그렇지'라는 생각이 먼저 스쳤다. 그리고 '제 아무리 조정래 선생이라도 저런 지도 없이는 그 방대한 양의 원고를 쓸 수 없었겠지'라는 생각이 그 뒤를 이었다.

조정래 선생은 <태백산맥>을 쓰기 위한 준비에만 4년을 보냈다고 한다. '태백산맥문학관'에는 자료 조사 당시의 각종 지도와 취재수첩, 메모 등이 전시되어 있다.
▲ <태백산맥> 집필 준비자료 조정래 선생은 <태백산맥>을 쓰기 위한 준비에만 4년을 보냈다고 한다. '태백산맥문학관'에는 자료 조사 당시의 각종 지도와 취재수첩, 메모 등이 전시되어 있다.
ⓒ 태백산맥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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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글감옥>은 조정래의 키를 훌쩍 넘긴 원고지에도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왜 소설을 읽다보면 궁금한 것들 있지 않은가. '몇 시에 주무세요?'라든가, 잔혹한 질문이지만 조정래가 자주 들었을 법한 질문 '선생님도 좌빨이시라면서요?'라든가. <황홀한 글감옥>은 그런 질문들에서 출발하여 꾸려진 책이다. 그 질문은 누가 했는가. 조정래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주로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시사IN> 인턴기자 희망자들이 나에게 보낸 질문은 5백여 가지였다. 그 중에서 겹치는 것은 빼고,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을 간추린 것이 이 책에 수록된 84가지이다. 이 육성의 질문들은 모든 독자들의 궁금증을 푸는 데 그런 대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 조정래, <황홀한 글감옥> 서문, 시사IN북, 2009, 5쪽.

수많은 원고지의 빈 칸을 채워나갔던 작가, 게다가 툭하면 이념적으로 오해되곤 했던 작가. 그리고 '88만원 세대'를 살아가는(아니 88만원 세대를 눈앞에 둔) 대학생들. 이들이 함께 만들어 낸 책이 바로 <황홀한 글감옥>이다. 아무튼 이 책을 읽기 위해 필자는 꽤 긴 시간을 할애했다. 그 긴 시간이 투자된 까닭은 단 하나였다. 조정래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위해 긴 시간을 할애했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 책을 읽는 데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긴 시간은 책장을 펴는 데 할애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과연 이 책을 읽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칭 글쟁이'인 필자는 '진짜 글쟁이'인 조정래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긴 시간을 보내고 결국 책을 펼쳤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에 대해 필자는 아무 것도 밝히고 싶지 않다. 필자가 언급하고 싶었던 바는, 이 책의 형식적 의미를 조금 밝혀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디 내용은 구조와 관계되기 마련이다.

세상에는 자서전 형식의 책이 꽤나 많다. 문학 분야의 제대로 된 자서전을 읽고 싶다면, 필자는 과감히 이 책과 더불어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가의 각오>(문학동네, 2003)를 추천한다. 어디 그뿐이랴. 정말 세상에는 많은 문학적 자서전이 많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황홀한 글감옥>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지금껏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그리고 대개의 작가들이 그렇듯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했던 작가가 우리의 세계로 뛰어들어 왔다는 점이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E-book 시대'에 도착한 '원고지 세대' 작가의 편지>라고 부르고 싶다.

인터넷이 지배하는 이 세계, 원고지 따위는 글쓰기 강의 시간에나 한두 번 구경하는 시대, 그리하여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이 없다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틀리는 게 당연해진 이 세상에 여전히 원고지에 소설을 쓰고 있을 조정래가 나온 것이다. 물론 이 책의 초고도 원고지에 작성되었다.

그러나 그간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많은 독자들을 대신하여 88만원 세대의 대학생들이 5백여 개에 이르는 질문을 던졌고 조정래는 그것을 요령 있게 80여 가지의 질문으로 추렸다. 이 새로운 형식의 자서전, 이것은 하이퍼텍스트를 응용한 글쓰기의 흔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흡사, 이른 새벽에 트위터의 타임라인에 나타나 아포리즘 같은 몇 구절의 말을 툭 던져놓고 사라지는 이외수처럼, 조정래는 책 속에서 독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어쩌면 작가들의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방법들이다. 그런데 이 '익숙한' 길에 유명 작가들이 나타나지 않는(못하는?) 이유는 뭘까.

그들은 정녕 너무 바쁘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그 많은 이유들 중에서 포함됨직한 답 하나를 조정래의 책에서 찾았다. 바로 이것이다.

"참된 지식인의 삶은 고달프나 그 의미와 보람은 하늘의 넓이입니다."(379쪽)


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지음, 시사IN북(2009)


태그:#황홀한글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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