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 병원에 가 봅시다. 예약을 해 놓을 게요."

 

배가 아파 끙끙거리며 새벽잠을 설치던 나를 두고 아내가 하는 말이다. 3일 째 이어지는 남편의 위통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도 증세가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좀 더 두고 보자며 뭉갤 텐데,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또 위 내시경을 해야 하나? 두려웠다. 그러나 마누라의 지시를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작년에 갔던 병원으로 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부인이 보호자로 같이 온 경우는 나 혼자인 것 같았다. 아내는 보호자로서 충실했다. 진료 신청을 도맡아 했다. 이런 대외적인 행사 때는 마누라가 보통 나서니까 나는 그냥 가만히 있기나 하면 된다. 아이처럼 따라다녔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아내는 의사에게 아픈 증세를 얘기했다. 나는 별 할 말이 없었다. 새삼 그녀가 든든해 보였다.

 

공포의 위 내시경이 있었다. 예전과 달리 검사과정이 더 길게 느껴졌다. 의사는 뭔가 이상한 것을 본 것이 아닌가? 순간 두려웠다. 더 참기가 어려웠다. 목에 박힌 호스를 손으로 뽑고 싶었다. 인내의 한계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오니 대기실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었던 아내의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은 것처럼 빤히 쳐다보았다.

 

"속이 엉망이요. 일 년 사이 이렇게 나빠지다니."

 

마누라의 얼굴에 실망한 빛이 역력했다. 이런 상태로 조장하고 방치한 나를 나무라는 것 같았다. '그 놈의 술'을  또 탓하는 것 같았다.

 

아내가 본 그 모니터의 험한 영상들이 떠올랐다. 은근히 겁이 났다. 혹시 암이라면? 자꾸 소심해지기 시작했다. 최근 주변에 있었던 암 수술환자들도 생각났다. 나도 혹시?  

 

사진 판독시간 다시 의사에게로 갔다. 온 신경이 쏠렸다.

 

"많이 나빠졌네요. 여기 저기 헐었습니다. 위궤양이 심하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선생님 괜찮겠습니까?" 아내가 끼어들었다.

 

"좀 고약한 곳도 있네요. 많이 조심해야 합니다. 술, 담배, 자극성 있는 음식은 피하고... 괜히 하는 소리 아닙니다. 조직검사결과는 일주일후에."

의사는 다짐하듯 나를 쳐다보았다. 겁이 덜컥 났다.

 

병원을 나오니 아내는 더 걱정이 되어선지 가만히 있지 못했다.

 

"당신 정말 간이 크네요. 그렇게 조심하랬는데. 그 놈의 술, 담배! 당신 지금 나이가 몇 살이요. 계속 건강할 줄 아는 가 베? 알아서 하소!"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내가 불쌍히 보였는지 더 이상 잔소리는 이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도 우울한 기분을 애써 지우려고 했다.

 

"별 것 아닐게요. 두어 달 약 복용하면 완쾌되겠지요. 넘 걱정 마소."

 

집으로 오는 동안 아내의 시선을 멀리하며 생각했다.

 

'내가 너무 간 큰 짓을 한 건가? 이제 좀 쉬라는 가 보다.'

 

 

 


태그:#위장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