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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하면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아니 그는 사실 거리에서 로또라는 두 음절만 접해도 절로 떠오르는 얼굴이다. 이름 끝에 배자가 붙어서 '똘배'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그는 로또뿐만 아니라 '말 밥 주기'에도 능했고, '잭팟'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잭팟, 잭팟, 소리를 질러대서 잠든 사람들을 깨워놓기 일쑤였으며, 두 명 이상 야유회를 갈 때는 반드시 화투를 주머니에 넣고 가야지만 안심을 하는 사람이었다.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 땅에 로또가 들어온 지 2, 3년쯤 뒤의 일이었을 것이다. 살던 집이 팔렸다고, 무조건 비워달라고 해서 다른 새로운 집을 마련할 자금을 벌기 위해 아파트 공사 현장을 따라다니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에 울산시 동구 전하동 산꼭대기에 집 한 채를 빌려놓고 13명 한 팀이 1년 4개월을 보냈다.

멀리로 현대중공업의 거대한 기중기들이 내려다보이는 그 동네는 뭐랄까, 벌집촌이라고나 할까, 밖에서 보면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그 작은 집들마다 작은 방들을 다서 여섯 개씩이나 거느리고 있었다. 방마다 부엌이 있기는 한데 한 사람이나 겨우 움직일 정도였고, 방은 특이하게도 창문이 아예 없거나 있다 해도 너무 작아서 담배연기나 겨우 빠져나갈 정도였다.

때문에 저녁 식사가 끝나면 겨울에도 방에 있기가 답답해서 밖으로 나가곤 했다. 밖으로 나가서 위로 조금만 올라가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현대 중공업 정규직 사원들의 문화센터 격인 한마음회관이 크리스털 조명을 우아하게 혹은 강렬하게 뿜어내며 그야말로 신세계처럼 언덕 아래쪽으로 펼쳐져 있었다.

비정규직은 사용 자격이 없다고 하는 이 회관 주변에는 마치 보이지 않는 경계선처럼 언제나 부드러운 음악이 흘렀고, 깊은 밤에도 테니스공이 팅, 팅 소리를 내며 공기를 갈랐다. 그 중에서도 수영장은 유난히도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반 지하에 거대한 통유리로 외부와 벽을 쌓고 있는 수영장 내부가 언덕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보고 싶지 않아도 환히 내려다보였다.

무더운 여름밤에는 인어처럼 매끄럽게 물을 가르는 그 모습이 하도 시원해서 은근히 부러웠고, 겨울에는 겨울에도 저렇게 손바닥 만한 헝겊으로 몸을 가린 채 수영을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주섬주섬 해대며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아 이거 큰일났네, 얼른 가서 로또라도 한 장 사야 되는 것 아닌가 싶어지면서 자신의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게도 초라하고 한심해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담배값도 술값도 아껴서 로또를 산다

똘배는 물론 한마음회관의 그런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로또에 빠져든 것은 아니었다. 그는 돈만 있으면 언제라도 말 밥 주기로 삼천 배 정도는 문제없이 배당을 받을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쳐온 사람이었다. 오락실에서 잭팟을 터뜨리는 것 또한 돈이 적어서 탈이지 돈만 많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돈이 없는 까닭에 눈물을 머금고 잔돈푼으로 할 수 있는 로또에 온 정성을 쏟는 셈이었다.

그는 사실 로또 때문에 담배도 끊고 술도 끊었다. 한 번에 뚝 끊은 것은 아니었다. 옆에서 누가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슬그머니 다가가서 옆구리를 찌르며 "내 입도 입인데 한 대만" 하는 식으로 근근이 연명했다.

"야 너는 일당도 안 받고 일 하냐, 네 돈으로 사 인마" 하면 그는 아주 천연스럽게 "아 나는 로또 사야지요. 내가 로또 터지면 그게 어디 나 좋은 일이겠어요. 내가 형한테 스텔라 한 대 뽑아줄 텐데 그러면 그게 어디 나 좋은 일이냐고요"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담배 인심이 세월 모르게 되풀이될 수는 없는 일이어서, 3개월쯤 지난 뒤에는 극심한 구박과 원성을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정말로 끊게 되었다.

술은 문제가 좀 더 복잡했다. 간식 때 나오는 막걸리를 어떤 날은 끊었다며 손도 대지 않았고, 또 어떤 날은 목이 컬컬하다며 두세 잔을 거푸 들이켰다. 사용주가 회식자리를 마련하면 언제나 "오늘만"이라는 단서를 붙이며 술을 마셨고, 옆에서 누가 생일이라고 자축이라도 할라치면 "내가 빠지면 되겠느냐"며 또 마셨다.

그가 술을 끊었다고 두 손 탁탁 털며 과감하게 돌아서는 순간은 비가 와서 일을 못 하게 되었을 때거나 혹은 자재가 없어서 하루 쉬게 되었을 때, 그리하여 나도 얼마 너도 얼마 돈을 걷어서 술도 사고 안주도 준비하는 추렴의 자리였다. 그는 그렇게 자기가 돈을 내야 하는 술자리는 극력 피해 다녔다. 그러니까 술을 끊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닌 셈이었다.

방귀점으로 큰 틀을 정하고 행운의 숫자 7시에 로또를 산다

건설 현장의 임금 지급일은 정해진 날짜가 따로 없었다. 있다 해도 사용주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서 보름 만에 한 번이기도 하고 삼 개월 만에 한 번이기도 했다. 그러나 똘배는 완전히 예외적이었다. 그는 날마다 일이 끝나면 이만 원만, 삼만 원만, 하고 손을 벌렸다. 물론 일이 없는 날에도 그렇게 손을 벌렸다. 그 돈으로 일단 한 장이나 세 장, 아니면 두 장이나 네 장의 로또를 사고, 그 다음은 잭팟을 기원하며 오락실로 향했다.

그렇다고 로또를 아무 때 아무 데나 가서 사는 것이 아니었다. 아침에 밥을 먹고 일어서면 별나게도 방귀를 뿡뿡 뀌어대는데 그는 그 방귀의 횟수와 강약으로 그날의 점을 쳤다. 사거리에서 서쪽으로 몇 걸음을 가다가 두 번째 가게라거니, 남쪽으로 직진을 하다가 첫 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몇 걸음 가다가 첫 번째 가게라거니 하는 등등의 매일 다른 아주 희한한 점괘가 줄줄이 쏟아지는데 그럴 때 보면 정말로 무슨 점쟁이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동물의 내장으로 점을 쳤다는 고대인들을 연상케 하는 것이어서,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근거로 무엇을 보완하고 해석하는지 감도 잡을 수 없는 채로 그저 피식 피식 웃기나 할 뿐이었다.

다른 사람은 웃더라도 그에게는 아침의 방귀점이 매우 중요한 출발이었다. 방귀점으로 그날 사야 할 로또의 양이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시간 또한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그는 정확하게 저녁 일곱 시에 맞춰 로또 판매점 문을 열었다. 문을 열기 전에 하는 또 하나의 의식이 있는데,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오백 원짜리 동전 열일곱 개로 홀짝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오른손에 쥐어진 동전의 개수가 홀이냐 짝이냐 더하기 아침의 방귀점에서 얻은 점괘, 이렇게 해서 홀이면 한 장이나 세 장의 로또를 사고, 짝이면 두 장이나 혹은 네 장을 사는 것이었다.

기를 모아야 잭팟이 터진다?

그렇게 해서 일단 로또를 사고 나면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설탕과 크림을 듬뿍 넣은 커피를 맛나게 마시고, 또 한 잔의 커피를 들고 거리로 나서는데 행선지는 잭팟이 기다리는 오락실이었다. 이때도 그냥 휘적휘적 걷는 게 아니라 입으로 크게 아주 크게 잭팟을 외치며 걸었다. 옆에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아주 큰소리로 허공을 향해 잭팟, 잭팟, 소리를 잇달아 질러대며 걷는데 그 소리가 멈추는 시점은 오락실 문을 열고 한 발을 들여놓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도 다 뜻이 있었다. 문을 열기 전에 소리를 멈추면 터지려던 잭팟이 문 앞에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고, 안으로 다 들어간 뒤에 소리를 멈추면 잭팟이 주인을 잃고 다른 사람에게 붙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그러나 그는 역시 돈이 적은 탓으로 잭팟이 터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매일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주인이 내미는 선물이나 들고 밤이 깊어가는 산비탈을 터덕터덕 걸어오를 뿐이었다.

오락실에서 주는 선물이란 대개 수건이나 라이터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시중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매우 독특하게 야한 디자인이어서, 그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이른바 봉을 찾아서 눈을 번뜩이고는 했다. 식당에서건 현장에서건 낯선 사람을 만나면 태국에서 밀수입해 온 것이라는 둥, 이탈리아 마피아들의 패밀리 표식이라는 둥 기상천외한 거짓말로 로또 구입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노동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사람들은 그런 어이없는 거짓말에 속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가끔 인력소개소를 통해서 나온 아르바이트 학생들은 주머니를 털리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그놈의 로또를 해야만 하겠냐?" 하고 누가 옆에서 침이라도 뱉을라치면 그는 "못할 이유가 뭐"하고 아주 천연스럽게 흘려버리곤 했다. 훨씬 나중에서야 우리는 그의 그러한 행동이 개인적으로 매우 절박하고 간절한 진심에서 나온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상종 못할 인간으로 낙인찍어놓고 피식피식 웃어나 댈 뿐 그의 개인사에는 거의 관심조차 갖지 않았었다.

아이를 갖고 싶은데 아내가 불임이었다고

돈을 그렇게 다 써버리면 집에 식구들은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가끔 비아냥대는 질문을 던지기는 했었다. 그럴 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은 "걱정 없어. 문제 없어. 내가 마누라를 아주 잘 만났거든" 하는 정도였다. 우리는 그렇게 믿었다. 부인이 뭔가 특출한 능력이 모양이라고.

그런데 6개월인가 7개월째 되던 무렵에 그 부인이 내려왔다. 부부는 만나자마자 서로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렸다. 누가 옆에 있거나 말거나 아내는 남편의 멱살을 움켜잡았고, 남편은 아내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그렇게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남편이 그동안 한 번도 아내를 찾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통상 한 달에 한 번씩은 집에 다녀온다고 현장을 떠나곤 했는데 집이 아니라 딴 데로 새곤 했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다음날 아침에는 부부가 모두 전혀 다른 얼굴들이었다. 간밤에 싸운 것 서로 화해도 하고 사과도 할 겸 오늘 하루는 쉬겠다고, 그렇게 둘이서 다정하게 손을 잡고 몽돌해수욕장 여행을 떠났다. 식당 아주머니에게 부탁해서 김밥으로 도시락까지 만들어서 싸 들고 가을날의 해수욕장 구경을 나선 이들 부부는 해수욕장에서 무슨 언약을 했는지 돌아와서는 방 한 칸을 자기들 둘이서만 쓰겠다고 선언을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그동안 거짓말을 좀 했어요. 우리는 자식도 없고, 부모도 안 계시고, 두 사람뿐이거든요."
"그래서 자네 부부가 방 하나를 차지하고, 말하자면 신방을 꾸리겠다고?"
"신방은 아니죠. 그 대신 우리 두 사람 밥은 우리가 지어먹을게요."

요컨대 식당에 지불하는 밥값 대신 방을 한 칸 독점하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그들은 신방을 꾸민 정도가 아니었다. 사흘째 되는 날부터 그의 아내는 현장에서 청소하는 일거리를 얻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밤만 되면 다정하게 손을 잡고 7시에 맞춰 로또를 사러 갔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저녁을 지어먹고, 다시 또 다정하게 손을 잡고 허공을 향해 잭팟, 잭팟, 소리를 합창으로 질러대며 오락실로 가는 것이었다.

그런 생활이 물경 6개월이었다. 그러나 잭팟도, 로또도, 그 어떤 것도 한여름밤에 수박이 쪼개지듯이 시원하게 터졌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공사도 다 끝나고, 팀이 해체되어 마지막 회식을 하던 날 그는 만취에 대취까지 해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 쓰러진 남편을 가슴에 껴안고 눈물을 뿌리는 그 아내의 중언부언하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우리는 그녀가 불임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를 갖기 위해 이런저런 좋다는 거의 모든 일을 해보았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거였다. 좋은 결과도 없이 헤매는 동안 근무 태만으로 권고사직을 당했고, 전세를 살던 아파트는 단독주택 반 지하 단칸방 월세로 떨어졌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아주 포기하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많아서,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그래도 현실적인 방법을 찾다 보니 눈에 띄는 것이 로또요 잭팟이요 말밥 주기였다는 얘기였다.

그들의 이런 어이없는 안타까운 희망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헤어질 때도 역시 할 말은 많지 않았다. 그저 서로 손이나 잡고 좋은 일 있으면 연락이나 하면서 지내자는 인사를 끝으로 서둘러 헤어지고 말았다. 그 뒤로 그의 얼굴은 무시로 떠올랐지만, 그러나 전화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만약에 대박이 터진다면 그쪽에서 먼저 전화를 해 오겠지 하는 그런 넋 없는 생각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로또 응모글



태그:#로또, #불임치료, #안타까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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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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