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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결혼을 해야 하는가?
남자와 여자 서로가
상대방 없이는 살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될 때다.
좋은 결혼에서 좋은 자녀가 태어난다.
육체적 사랑에 한 번 빠진 사람은
상대를 바꿔가며 계속 그런 사랑을 반복한다.
그러다 결국에는
진정한 사랑의 능력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미움, 절망, 역겨움 속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된다.

-톨스토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중에서.

참 이상한 일이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분명,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그 사랑을 지켜나가는 일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배워오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온 세상이 불륜을 이야기한다. 배우자 외의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마치 거역할 수 없는 운명적인 만남인양 포장되어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쓰인다.

2009년 한 이혼사유 조사에 따르면, 배우자의 외도로 인한 이혼은 폭력-폭언 등의 부당대우로 인한 이혼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기혼여성이 회원 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 포털 사이트에는 남편의 바람으로 고민하는 아내들의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그녀들 대부분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고 괴로움을 호소한다.

TV, 영화의 단골 소재 불륜...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이름

<내 남자가 바람났다> 표지
 <내 남자가 바람났다> 표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은 신의 몫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한 구절에 깊이 동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필자는 무신론자이지만, 신이 있다는 가정 하에)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라는 것을 주지 않았는가? 왜 사랑은 인간이 하고 책임은 신에게로 돌리는 것인지 갸우뚱하게 된다. 아무튼 여러모로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이름 '불륜',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책 <내 남자가 바람났다>의 저자 송강희씨는 필명 '캡사이신'으로 여성포털사이트에 외도와 결혼생활에 관한 글을 연재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작가이다. 그녀는 현실적인 감각과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다각도에서 불륜을 분석하며 배우자의 외도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게 적절한 대처법을 조언한다.

외도는 범죄입니다. 본인에게는 얼마나 절절한 사랑인지 모르겠지만 그 행위가 다른 사람을 지옥의 고통으로 몰아넣는 행위라면 미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즐겁자고 남을 괴롭히는 일은 범죄니까요. 이 글을 쓰는 바람이 있다면, '외도는 상대를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하는 것입니다. -책 서문에서.

저자는 외도=범죄라고 못 박은 채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새는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바람피우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라지만, 책에서는 남자들의 외도만을 다룬다. 아직까지는 남자들이 여자들보다는 바람을 훨씬 많이 피우기 때문이고, 남자들이 여자들에 비해 본인의 외도에 대해 훨씬 관대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사회 분위기상 여자는 바람피우는 것을 마약처럼 생각하지만 남자는 담배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부일처제는 달콤한 열매와 정조의 의무가 동시에 담긴 세트

일부일처제는 상대가 제공하는 달콤한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권리와, 정조의 의무를 지켜야 하는 괴로움이 함께 들어있는 세트와 같다. 그럼에도 바람피우는 이들은 달콤한 열매의 맛과 영양은 섭취하되 정조의 의무를 지키는 일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시한다. 그 결과 많은 배우자들이 상처받고 분노하며 결혼생활 자체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

책은 배우자의 바람으로 삶의 의욕을 상실한 이들의 사례로 가득하다. 독자인 나조차 그들의 경험담을 접하는 일이 고통스러울 만큼 생생한 이야기를 전한다.

남편의 외도 후 웃음을 잃고 수 년 간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주부의 이야기, 15년간 뒷바라지 한 남편이 처녀와 바람을 피워 그 후유증에 남편을 돈 벌어오는 기계라 여기고 하루하루를 아이 교육에만 힘쓰며 사는 아내의 이야기 등등.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을 살아왔기에 차마 이혼하지 못하고 남편을 받아들여야 하는 괴로움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저자는 남편과 바람을 피운 상대방 여자를 만났을 시 알고 있는 모든 욕설을 동원해 후회남지 않도록 감정을 발설하라고 조언한다. 또한 이혼을 결심했을 경우 어떻게 하면 가장 합리적으로 위자료를 받아낼 수 있는지, 상처를 잘라내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해 상세히 기술한다. 남성(가장) 위주의 사회분위기, 바람 피워도 '남자가 그럴 수 있지'라며 쉬쉬하는 현실 속에서 아내의 대처법을 제시한다.

또한 유부남과 데이트하는 처녀들에게도 쓰디쓴 조언을 한다. 존재 자체가 민폐인 사랑을 하며 스스로를 낮은 자리에 두는 것은 낳아주신 부모님께 불효하는 짓이라며, 얼른 발을 빼고 반성한 후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라고 이야기한다.

존재 자체가 민폐인 유부남과의 사랑

그 남자와 그 부인 사이에는 당신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 남자의 젊은 시절에 대한 추억이지요. 그 남자가 젊은 시절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떤 시절을 보냈으며 그의 청춘의 모습은 어땠는지, 그의 패기와 이상이 얼마나 순결하고도 순수했는지⋯…. 그 부부도 당신 같은 나이를 거쳐왔고 그 시절을 같이 살았습니다.

그들이 같이 통과해 온 그 젊음은 그들 사이에 세월과 추억으로 쌓여 누구도 끼어들 수 없을 만큼 강한 자산이 되어 있답니다. 남편이 아무리 바람을 피워도 여자들이 이혼 못하고, 어떤 이상적인 여자를 만나 휘몰아치는 감정에 휩쓸려도 그 남편이 이혼 못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그들은 아이 때문에 사는 게 아닙니다. 당신이 그 동안 많은 동화책과 영화와 드라마와 소설에서 보며 동경해왔던 결혼, 그 결혼을 한 사람들입니다. -책 중에서.

책은 아내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채 밖으로만 시선을 두는 남편들에게 경고(?)하는 내용으로 끝맺음을 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마치 TV드라마 '사랑과 전쟁'을 수십 편 본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매우 피곤해진다. 더 이상 바람피우는 배우자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한다. 또한 좀 더 순수한 마음으로 결혼을, 지금의 배우자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남자가 바람났다

송강희 지음,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2006)


태그:#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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