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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밤이 깊었는데 어머니가 노래를 부르신다. 밤새 켜놓았던 텔레비전도 끝이 나서 방금 전에 껐다. 이런 때는 리모콘이 참 고맙다. 누운 채로, 반은 잠이 든 채로 손가락만 살짝 움직이면 소음이 사라지는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이 어머니는 어쩌면 반가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큰애기야 큰애기야 건네산에 큰애기야."

 

희미한 어둠 속에서 모로 누운 채로 부르는 어머니의 이 노래 소리에 가물가물 막 들려던 잠이 그만 확 달아나 버린다. 우리 동네 뒷산 건네산이 들어간 것으로 미루어 어머니의 창작임이 분명한 행진곡풍의 이 간단한 노래 한 소절에 무슨 마력이 깃들어 있는 것인가. 여러 수많은 풍경들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휙휙 지나간다. 이렇게 되면 잠을 자기는 다 틀렸다. 몇 시나 되었나. 오전 3시다. 술이나 한잔 할까.

 

"아따 오빠도 참, 대낮에 먼 술을 잡술라고 그러신다요?"

"아녀. 대낮인게 한잔 해야지. 얼른 일어나요. 한잔 하게."

"저는 술 못 먹어요."

"동생이 오빠 말도 안 듣고, 정말 그럴겨? 동생이고 뭐고 떼어놓고 나 혼자 가버린다?"

 

어머니는 더 이상 거부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다. 언제나 한두 번 정도 뒤로 빼다가 마지못해 동의하고 나선다. 마치 착하고 말도 잘 들어서 예쁜 여동생의 표본이라도 되고자 하는 듯이 그렇게.

 

술은 작년에 개복숭아를 따서 설탕에 버무려 발효시킨 것으로 일종의 효소다. 약간 시큼하면서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이것의 알코올 농도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막걸리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어머니는 이것을 어떤 날은 "아따 맛나다"하시며 소주잔으로 한잔을 단숨에 홀짝 마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어매 써라"하고 퉤퉤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아따 맛나다" 쪽인 것 같다.

 

내가 어머니에게 이 술을 권하는 이유는 뭐랄까, 설명이 아주 복잡하다. 술로 어머니를 잠재우고 나도 잠을 좀 자겠다는, 처음의 의도는 분명히 그런 전략적인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은 사라지고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욕망으로 변질되어 있곤 하는 것이다. 오늘의 이야기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건네산 큰애기가 엄마지? 아버지가 엄마를 옛날에 건네산 큰애기라고 불렀지?"

"응? 아니여. 건네산 큰애기는 그냥 건네산 큰애기여."

"에이, 뭐 그런 게 있어."

"아따 오빠도 참, 시집갔어라, 건네산 큰애기가."

"그러니까 건네산 큰애기를 건네산 큰애기라고 불러준 남자한테 시집을 간 것이잖아요, 건네산 큰애기가, 맞죠?"

"아니요. 몰라요."

 

어머니는 눈을 깜빡 깜빡 하다가는 고개를 흔들어대고 만다. 내 입에서 순간적으로 "에이, 재미없어. 뭐 그래"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벌써 그 일은 잊어 버렸다는 표정이다. 오늘도 실패인가. 그런가보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아니다. 사실은 횟수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끊임없이, 라고나 해야 말이 될 것이다. 어머니의 결혼을 전후한 시기, 그러니까 황금기, 그 시기에 대한 이야기가 내 기억의 노트에서 마치 면도날로 오래낸 듯이 쏙 빠져 있었다. 결국 나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의문이 되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 시기가 '무지하게' 궁금했다.

 

 

어느 하루 문득 돌아보니 그랬다. 그 시기의 이야기만 쏙 빠져 있었다. 내가 만일 어머니의 생애를 한 편의 글로 다룬다면 그 중요한 시기의 부재로 인해 결국은 미완성으로 끝나게 된다는 엉뚱한 초조감초자도 있었다. 그리하여 어떤 날은 거센 바람처럼, 파도처럼, 밀물처럼 밀려오는 어머니의 결혼 즈음에 관한 궁금증으로 눈빛을 반짝이며 애써 자리를 만들어보는 것이지만, 어머니는 신기하리만치 그 대목에서는 기억이 막히는 것인지 애써 피하는 것인지 하여튼 진도를 못 내고 있었다.

 

어머니의 소녀 시절에 관한 이야기는 나도 이제 그림으로 그리라면 그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책보 싸 들고 학교 간다고 나가서 학교는 안 가고 나물이나 캐다가 귀가했는데 그놈의 나물 때문에 학교 안 갔다는 사실이 들통 나서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서껀, 수풀 속에서 뱀인 줄 모르고 그 꼬리를 손으로 잡았다가 뱀이 몸을 홱 틀어서 달려드는 바람에 뒤로 나동그라졌는데 눈을 떠 보니 집이더라는 이야기 등등 그야말로 한 권의 책을 쓰고도 남을 만했다.

 

결혼 뒤의 이야기 또한 빈궁하지 않았다. 시아버지로부터 저만치 서라는 말 한 번 들어본 적이 없다는 둥, 시집올 때 이미 시어머니가 안 계신 까닭이기도 하지만 시집살이가 무엇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남의 시집살이를 구경하고서야 알았다는 둥, 시아버지가 서당 훈장을 목적으로 멀리 타동네로 떠나신 뒤에는 작은 집이 너무나 크고 쓸쓸해서 군대에 있는 남편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는 둥 이 또한 한 권의 책을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들은 어머니가 작심을 하고 아들에게 들려준 것은 아니었다. 어떤 계기가 왔을 때, 오늘을 이야기하는 도중에 문득 과거의 단편 하나를 슬쩍 끼 워 넣는 식으로 말하자면 흘려놓은 것일 뿐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흘려놓은 과거의 단편들을 마치 이삭이라도 줍듯이 수집해 들였다. 그것조차도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자고 해서 수집을 한 것은 아니었다. 동일하거나 비슷한 주제가 반복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그 이야기들이 저장되면서 자동으로 일목요연하게 순서가 정해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 저장된 폴더 어디에도 결혼을 전후한 시기의 이야기가 없는 것이었다. 계산을 해보면 어머니가 결혼한 지 십 년이 넘어서야 큰아들인 내가 태어났다. 어림짐작을 해보면 내가 태어나기 오 년여 전까지의 이야기는 어머니가 더러 언급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군대를 기피할 목적으로 낳지도 않은 아이를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출생신고를 해버린 양반이었다. 그러나 결국 잡혀가다시피 군대를 갔고, 잡혀간 뒤에는 또 군대의 무엇이 그리도 좋았는지 덜컥 부사관 지원을 해 버렸다.

 

군대에 말뚝을 박아버린 남편에 대한 섭섭한 추억이 어머니의 입에서 가끔 나왔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밥을 지어먹는 시간들이 너무도 끔찍했다는, 그러다가 큰아들이 태어나면서 구경 오는 사람도 생기고 해서 숨통이 트였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버지가 군에 입대하기 전의 이야기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 기간이 대충 계산을 해봐도 오륙 년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무엇일까. 무엇이 있었기에 그 시기의 이야기는 피하는 것인가. 아니면 기억할 만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일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만약에 정말로 기억을 못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또 왜인가. 너무도 중요한 시기라서 어머니 당신마저도 꺼내볼 수 없도록 아예 단단히 봉인을 해버린 것일까. 그렇다 해도 나는 알고 싶다. 어쩌면 '건네산 큰애기'라는 어머니의 창작 가요에 그 실마리가 묻어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건네산이 왜 건네산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알아요? 알지?"

"건네산이 뭐이다요?"

"엥? 건네산 몰라요?"

"몰라요."

 

허무하다. 어머니는 아무런 것에도 흥미가 없다는 듯 입을 굳게 다무는가 싶더니 그냥 옆으로 쓰러져 버린다. 아무래도 술기운이 오르나 보다. 술로 어머니를 재우겠다는 최초의 의도는 달성이 된 셈이지만, 보다 소중했던 욕망은 이렇게 해서 다시 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술잔을 치우려고 몸을 일으키는데 창문이 파랗다. 어느새 아침이다. 밖에서는 까치들이 소리를 내고,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에서 개들이 앞을 다퉈 짖어댄다.

 

이게 뭔가 하는 허망함으로 잠시 우두커니 서 있는 참인데 문득 한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치매라는 어처구니없는 기억분열의 상태에서도 지키고자 하는 비밀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곧 사람임을 증거하는 최고 가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알고 싶다. 결혼을 전후한 시기에 어머니가 보았던 하늘이, 땅이, 그 색깔이 너무도 궁금하다.


태그:#치매, #어머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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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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