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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KBS 새 사장이 기자였던 1987년 1월 15일 민정당 창당 기념식 보도를 하고 있다.
 김인규 KBS 새 사장이 기자였던 1987년 1월 15일 민정당 창당 기념식 보도를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방송전략실장을 맡았던 '특보 출신' 김인규씨가 지난해 11월 24일 KBS 사장으로 취임하자 KBS 기자협회는 김인규씨가 KBS 기자 시절 어떤 리포트를 했는지, 동영상과 함께 5부작 '기자 김인규를 말한다'를 공개했다.

지난 '증언'에서는 1부에 담긴 두 개의 리포트, 1987년 1월 15일 민정당 창당 기념식 리포트와 석 달 뒤인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 선언'과 관련된 리포트 내용을 전했다. 김인규 기자는 민정당 창당과 관련하여 "구 정치질서의 청산과 개혁을 위해 새 시대 새 정치의 기치를 내걸고 새 역사 창조에 나섰다"고 했고, '4·13 호헌조치'와 관련해서는 "국가 100년 대계를 위해 최선의 길이라는 통치적 차원의 결단이 내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젊은 후배들 눈으로 보면 기자인지, 정당 대변인인지 구분이 잘 안될 수도 있을 법하다.

"전두환 대통령의 단임의지"... 기자인지, 정당 대변인인지

2부는 '노태우 대통령 후보'에 대한 김인규 기자의 시각을 보여주는 두 개의 리포트다.

1987년 6월 3일 '노태우, 대통령 후보 제청', 87년 6월 10일 '노태우 대통령 후보 지명 대회' 관련 리포트다. 2부 공개에 앞서 KBS 기자협회는 "김인규 기자는 엄혹했던 과거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노골적"이라며 "전두환을 미화하고 찬양했다. 그 때부터 권력과의 관계설정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2부 1편인 87년 6월 3일 '노태우, 대통령 후보 제청' 관련 리포트에서 김인규 기자의 표현은 자못 직설적이다.

"집권 여당이 차기 대통령 후보를 결정 제청한 그 자체가 우리 헌정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설정한 것... 전두환 대통령의 변함없는 단임 의지와 평화적 정부 이양의 외골 신앙이 열매는 맺는 과정... 진정한 민주주의를 해 보겠다는 소중한 정성... 민주 정치의 새 장을 열어나가는 좋은 선례...".

2부작 2편인 87년 6월 10일, '노태우 대통령 후보 지명 대회' 리포트도 별로 다르지 않다.

"평화적 정부 이양의 전통을 세우는 것이 우리나라 민주정치 발전의 결정적 전기가 될 것이라는 전두환 대통령의 정치 철학이 현실화되는 우리나라 정치발전의 한 순간... 이번 민정당 전당대회는 단순한 정당 행사가 아니라 우리 헌정사 40년에 새 장을 여는 획기적인 첫 걸음...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노태우 대표위원이 평화적 정부 이양의 전통을 수립하기 위한 정국 안정과 정치 활성화라는 시대적 정치 과제를 원만히 풀어나갈 때 오늘 대회의 정치사적 의의와 역사적 의미는 진정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

리포트의 마지막 부분은 특히 '평화적 정부 이양'을 강조함으로써 노태우 후보의 '대통령 당선 기원'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 듯하다.

이밖에 다른 리포트들도 대동소이하다. 다만 4부는 KBS 기자협회가 이를 공개하면서 '궁극의 동영상'이라 불렀기에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무슨 내용이기에 '궁극의 동영상'이라 했을까.

"말이 필요 없는 궁극의 동영상"... "한국 보는 눈 달라졌다"

KBS 김인규 신임 사장이 2009년 11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릴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사측이 배치한 청원경찰들에 둘러싸여 본관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KBS 김인규 신임 사장이 2009년 11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릴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사측이 배치한 청원경찰들에 둘러싸여 본관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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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포트는 1982년 전두환 정권이 1년을 맞았을 때 김인규 기자가 직접 제작하고 리포트한 <특별 입체 기획, 제5공화국 1년>- 1부 '새 시대 달라진 세계의 눈'이라는 30분짜리 특집 프로그램이다. KBS 기자협회는 이 프로그램을 공개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4편은 별로 쓸 말이 없다. 화면만 보면 된다... 혹자는 그런다. "그 시대에는 다 그랬다. 김인규한테 너무 그러지 마라". 결코 아니다! 정도의 차이라는 게 있다... 지속적으로 정권에 부역하면서 '정치부 기자-정치부 차장-미국 특파원'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이력을 얻어냈다. 김인규가 전두환, 노태우 밑에서 이렇게 잘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프로그램이 말해준다. 이런 사람을 21세기에 사장으로 다시 맞는다는 것은 KBS에게 너무 가혹하다".

이런 평가를 내린 뒤 이렇게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말이 또 길어졌다. 프로그램이 길어서 앞부분 3분만 잘라냈다. 전체 프로그램을 이해하는데 하등 지장 없다. 일단 보시라. 손발이 오그라들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보기 드문 체험을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을 사장으로 다시 맞는다는 것은 KBS에 너무 가혹하다"는 혹독한 평가, "손발이 오그라들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체험"이라고 야유한 이유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리포트 내용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개혁과 창조, 안정과 도약, 그리고 화합의 한 해였다. 개혁의 한 해, 창조의 한 해, 안정의 한 해, 도약의 한 해, 그리고 화합의 한 해, 이 다섯 가지가 합해진 한 해가 바로 제5공화국 1년이다... 이제 한국을 보는 세계의 눈은 분명히 달라졌고, 경이의 눈길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제5공화국 출범과 함께 전두환 대통령의 역사적인 미국 방문과 아세안 순방, 그리고 88년 올림픽 서울유치 등이 성공적으로 이뤄져서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선진국 대열에 부상했기 때문입니다"

KBS 기자협회가 공개한 5부작에 대한 소개는 이 정도로 끝내겠다. 나머지 부분은 KBS 기자협회의 블로그인 '싸우는 기자들(KBS 기자협회)' 사이트에 들어가면 모두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 매체들도 전문 소개를 비롯해 자세히 보도했다(관련기사: '노태우 후보 제청은 헌정사의 새 이정표' '4.13 호헌 조치, 백년 대계 위한 결단')

지금은 '김인규 리포트' 동영상들을 볼 수가 없다

그런데 KBS 기자협회가 '기자 김인규를 말한다' 5편을 공개하자 KBS 사측은 당시 KBS 기자협회장에게 감봉 2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징계 사유는 '김인규 기자 시절의 리포트 동영상'을 외부에 유출해 KBS의 저작권을 침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영상 자료를 맨 처음 대여한 기자에게도 '주의 처분'을 내렸다. 이유는 자신이 대여한 테이프를 다른 기자에게 다시 대여하면 안 된다는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올 2월 12일자 KBS 기자협회 블로그).

KBS 사측은 기자협회장 등에 대한 징계와는 별도로 KBS 기자협회 블로그가 있는 포털 다음 측에 저작권 위반이라며 동영상 삭제를 요청했고, 다음은 동영상을 모두 삭제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 동영상을 볼 수가 없다.

지난 '증언' 때 밝혔듯이 백운기 기자는 지난해 11월 25일 김인규 사장 취임 다음날 사장 비서실장으로 발령을 받은 뒤 <미디어 오늘>과 가진 인터뷰에서 "김인규 사장은 내가 지금까지 25년 기자생활을 해 오면서 '열정' '결단력' '추진력' '공정보도 의지' 면에서 가장 존경하는 선배이며, 내 인생의 멘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운기 기자가 '공정 보도 의지' 면에서도 가장 존경하는 선배라고 칭송했는데, KBS의 젊은 후배 집단이 기자협회는 이와 다른 평가를 내린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와 인간의 기본권리를 위해 처절하게 저항하고 그런 과정에서 해직, 수배, 투옥, 고문, 심지어 죽음까지 당했던 그 엄혹했던 시절에 했던 김인규 기자의 리포트가 어떤 것이며,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후배 기자들은 준엄한 평가를 내렸다.

과거와 지금, '특보 출신 사장'에 대한 수구언론의 정반대 평가

2003년 3월 27일 KBS로 출근하려다 이를 저지하는 노조원들과 대치하고 있는 서동구(오른쪽)씨.
 2003년 3월 27일 KBS로 출근하려다 이를 저지하는 노조원들과 대치하고 있는 서동구(오른쪽)씨.
ⓒ KBS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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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대통령 후보 특보 출신'이 KBS 사장으로 취임한 데 대해 수구 언론이 내린 평가가 2003년 참여정부 때와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다. 같은 사안인데 정반대의 입장이다. 고위 공직자 검증에서 투기의혹, 위장전입 등에 대한 잣대도 일관성 없기는 마찬가지다('증언 33호 참조). 정권에 따라 정반대로 바뀌는 수구 언론의 이중잣대의 실체를 한번 보자.

<조선일보> 2003년 3월 24일자 ''대통령의 사람'을 다시 KBS 사장으로?'라는 제목의 사설은 "대선 후보의 언론 고문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안 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서동구씨는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언론 고문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임자가 아니다. 후보 시절 언론 분야를 조언했던 인사를 대통령이 된 후 KBS 사장에 임명한다면 KBS는 대통령의 언론관을 홍보하고 시행하는 시범관이 될 우려가 있다... '대통령의 사람'이 KBS 사장으로 들어오게 되면 방송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기대하기 어렵다...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언론 고문을 거침없이 밀어붙이려는 것은 현 정권 역시 방송을 전리품 쯤으로 여기거나, 아니면 방송을 국정의 도구화하려는 의도라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없지 않다."

대통령 후보의 '언론 고문'을 맡았던 사람이 KBS 사장이 되었다고 이렇게 날을 새우면서 직격탄을 날렸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방송관련 업무를 총지휘한 방송전략실장을 지낸 '대통령의 사람'이 KBS 사장이 된 데 대해서는 '방송의 정치적 독립'이니, 그런 문제들은 아예 말도 끄집어내지 않았다. 'KBS 사장 후보에 김인규 씨... 친정 떠난 지 3년 만에 화려한 복귀'라는 기사의 제목부터가 <조선일보>의 의도를 잘 드러내고 있었다. (<조선일보> 2009년 11월 20일 6면).

이 기사에서는 '대통령의 사람'이라는 정치적 문제는 더 이상 거론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수신료 인상, KBS 정체성 확립, 내부 갈등 해소 등 김인규 사장이 풀어야 할 여러 과제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KBS는 정연주 전 사장 시절 빚어진 '탄핵방송' 등으로 신뢰도와 중립성에 큰 타격을 입은 상태"라며 나의 문제를 걸기도 했다.

<동아일보>도 오십보 백보였다. 2003년에는 기사와 사설을 통해 특보 출신을 통렬하게 비판했지만, 2009년에 이르러서는 그런 비판은 찾기 어려울 뿐더러 오히려 '언론 특보'의 경력을 긍정적 적극적으로 평가하기까지 했다. 2003년에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뛴 언론고문이 사장에 임명될 경우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고 했는데, 2009년에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방송팀장으로 활동해 대통령의 신뢰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2009년 11월 20일 8면 기사)라고 평가했다. 이게 우리 언론의 생 얼굴이다. <동아일보> 사설은 또 어떻게 180도 다른 소리를 담았는지, 그 생 얼굴을 한번 보자.

"공영방송의 생명은 정치적 중립이다... 그는 지난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뛴 언론 고문이다. 그런 인물이 사장에 임명될 경우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고... 집권측이 또 다시 공영방송을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 KBS는 정치나 권력의 입김을 차단할 수 있는 독립성을 되찾아야 한다" (<동아일보> 2003년 3월 24일 사설 '새 KBS 사장 적격자인가')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방송팀장으로 활동해 대통령의 신뢰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장 후보는 청와대의 신뢰를 바탕으로 KBS 개혁과 공영방송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동아일보> 2009년 11월 20일 8면 기사 '공영방송 정체성 확립 '최우선 과제').

같은 사안에 대해 정반대의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을 언론이라 할 수는 없다. 흑색선전의 도구, 또는 홍보 전단지일 뿐이다. 그런 집단에 지금 방송의 날개까지 달아주겠다고 한다.


태그:#정연주, #김인규, #KBS 기자협회, #KBS, #수구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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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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