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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철이다. 전세자금이 올라 지금 살던 집을 내 놨다. 사람들은 방 2개에, 베란다에, 화장실까지 꼼꼼하게 살펴본다. 그분들이 불편함이 없는지 물어보면 나는 그냥 살만한 집이라고 대꾸한다. 그것이 속 편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물론 물이 콸콸 쏟아지지 않는 불편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을 글로 풀어 쓴지 14일이 지났다. 지난 달 29일에 〈전세 찾으시나요? 이집 결함 많습니다〉를 썼으니까.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전세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두 사람이나 집을 보러 왔다. 이제는 집 주인도 감을 잡았는지 수도를 고쳐주겠다고 한다.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들에게는 너무 다행스런 일이다.

 

그 때문일까? 내가 요즘 집과 관련된 책들을 조금 읽고 있는 게. 며칠 전에는 아파트에 관한 책을 2권 읽었다. 지난날의 아파트 역사와, 앞으로의 아파트 값에 관한 내용이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 향후 10년 뒤부터는 공급이 수요를 앞서니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고 한다. 물론 평균 수명이 30년이라지만 충정 아파트 같은 경우엔 70년 동안 살아남은 진풍경도 있긴 하다.

 

오늘도 집과 관련된 책 한 권을 읽었다. 주거권운동네트워크에서 엮은 〈집은 인권이다〉(이후)가 그것이다. 오른 전·월세 때문에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녀야 하거나, 용역 깡패를 동원한 뉴타운 재개발 때문에 망루에 올라서야 했던 가난한 사람들, 계약서도 못 쓰고 사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비닐하우와 반 지하에 사는 사람들의 솔직한 토크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에서 주는 교훈은 그것이다. 집은 인권이라는 것. 사람이 일하는 현장에만 인권이 부여되는 게 아니라 살고 있는 집에도 인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게 안 되는 걸까? 이 책을 두루 두루 읽어보면 그런 대답을 얻을 수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것을. 

 

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주인이 올릴 수 있는 금액은 5%이하로 제한돼 있다고 한다. 헌데 세입자가 그 5%를 못 올려준다고 하면 집 주인은 나가라고 하면 그만이란다. 그러니 울며  겨자 먹기로 주인이 요구하는 데로 올려주든가, 아니면 딴 데로 이사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일까? 언젠가 읽었던 글이 생각나는 게. 그 글에서는 그 법이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 편이 아니라 살 사람들을 위해 고쳐져야 한다고 했다. 계약서도 2년 단위로 쓸게 아니라 10년 단위로 쓰고, 기존 임대료의 5% 이상을 못 올리도록 바꿔야 한다고 했다. 법을 고친다고 인권이 저절로 존중되는 건 아닐 것이다. 다만 최소한의 그런 장치라도 있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어느 신문사의 여론조사를 보니 40대 중반이 진보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고 한다. 그들이 현 정부 들어 중산층 이하로 내려앉은 탓일까? 아니면 다음 선거를 겨냥한 한 철 여론조작에 불과한 일일까? 어찌됐든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란 광고문구가 현실화돼야 한다. 그래야 집 없는 사람들의 한과 설움도 사라질 수 있을 테니까.

 

"이런 개발은 거주자의 요구에 따라 이루어지는 개발이 아니어서 주거 환경 개선보다도 이윤이 먼저고, 주민들의 권리는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집과 함께 가족·지역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한 동네에서 형님, 아우, 장로와 신도로 지내다가도 원수 되기 다반사다."(117쪽)

 

이는 용산 참사와 같은 재개발로 터진 문제들을 밝혀준 대목이다. 그것만 해도 '주택 재개발 사업'인지, '주거환경 개선사업'인지, '도시환경 정비 사업'인지, '주택 재건축 사업'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 문제는 그 일환으로 지은 집들의 집값만 높은 게 아니라 인근 집값도 덩달아 오른다는 거다. 그러니 그 지역사람들의 정착률도 10% 선에서 그친다는 게 빈말은 아닌 게다.

 

나는 솔직히 박홍균의〈대한민국에서 집 없는 부자로 살기〉를 읽고서 느낀 게 많았다. 향후 10년 뒤엔 대한민국 집값이 전체적으로 내려가겠다는 생각도 했다. 헌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이 팔리지 않으면 집값이 내려가는 게 아니라, 정부가 각종 거래규제를 완화하여, 집을 사도록 부추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주택정책은 지금까지 그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다. 어떠한가? 그대가 보이게는.

 

우리사회에서 집은 신분을 가르고, 정치까지도 결정한다. 어느 동네 어느 브랜드에 몇 평 아파트로 사는지에 따라 신분과 정치성향도 알게 된다. 또한 집은 경제성장의 동력이었다. 부동산이 우리의 내수경기를 진작시켜 온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 모든 조정과 조작은 정부가 도맡아왔고. 그러니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의 인권을 생각할 겨를이나 있겠는가?

 

아무쪼록 이 책은 주택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주택 정책을 설계하는 정책 입안자들에게도 좋은 참고도서가 될 것이다. 그들의 안목도 한 층 더 넓혀줄 것으로 기대된다. 집이라는 생물체에 인간의 인권이라는 싹을 틔워줄 수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학자들은 물론이고 시민운동에 몸담고 있는 분들도 집 문제를 소홀하게 대했던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면 좋을 것 같다.


집은 인권이다 - 이상한 나라의 집 이야기

주거권운동네트워크 엮음, 이후(2010)


태그:#집,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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