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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 취재 - 최지용, 사진 - 남소연, 동영상 - 오대양·최인성 기자]

북한의 포격으로 모두 타버린 연평도 민가에 25일 깨진 유리창 파편과 가재도구들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다.
 북한의 포격으로 모두 타버린 연평도 민가에 25일 깨진 유리창 파편과 가재도구들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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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대체: 25일 오후 9시 09분]

"OO 아빠 두고 도저히 못나가겠어. 걱정돼서 혼자 두고 못 가겠어"

연평도를 빠져나가는 여객선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돌아선 한 40대 여성은 군인으로 섬에 남은 남편을 생각하며 차마 배에 오르지 못했다. 그녀는 "(남편) 전역이 얼마 안 남았는데 나만 나갈 수가 없다"며 배에 먼저 탄 자녀들이 섬에 남으려는 자신을 볼까봐 배 뒤로 숨어 버렸다. 그녀는 결국 아이들만 뭍으로 보낸 채 부두에 남은 주민의 차를 타고 마을 안으로 사라졌다. 연평도 포격으로 인해 잠시지만 또 다시 '이산가족' 생기는 순간이다.

25일 북한의 포격이후 통재 됐던 인천-연평도 구간의 민간 여객선의 운행이 재개됐다. 이 배를 이용해 연평도 주민 150여 명이 생필품을 챙기기 위해 섬으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3시 30분경. 배에서 내려 폐허가 된 마을을 바라보는 주민들은 어떻게 말을 잇지 못했다.

박아무개군(17, 연평고3)은 할머니와 함께 인천 친척집에서 생활하기 위한 물품을 챙기러 섬에 돌아왔다. 박군은 "다시 돌아와서 보니까 너무 처참하고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며 "하늘에서 검은 점 같은 게 우수수 떨어지더니 펑하고 터졌고 불이 났다"고 포격 당시를 떠올렸다.

박군의 할머니 변아무개씨(72)는 "이게 우짠 일이래... 저기도 다 탔구먼"이라며 불에 검게 그슬린 이 이웃집들을 바라보다 결국 눈물을 훔쳤다. 박군과 변씨는 옷가지와 신발, 양말 등을 챙겨 인천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기 위해 다시 부두로 향했다. 포격 첫날 당황한 나머지 아무 것도 챙겨 나오지 못한 주민들은 황급하게 간단히 짐을 싸 뭍으로 되돌아갔다. 인천으로 회항하는 배에는 섬에 들어올 때 보다 많은 250여 명의 주민이 탑승했다.

이날 주민들과 함께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연평도 현장을 찾았다.

▲ 폐허된 연평도, 주민들은 한 숨만
ⓒ 최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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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생이 남기고 간 가방

어지럽게 널려있는 침낭과 담요, 양초, 뻥튀기, 생수통….

연평면사무소 바로 옆에 위치한 연평초등학교에 있는 75-8A 대피소의 모습은 처참했다. 높이 1.5m, 폭 1m 정도의 대피소 출입구를 지나 20cm 높이의 계단을 6개 정도 내려가자 가로 15m, 세로 4m 직사각형 모양의 대피공간이 나타났다.

대피소 바닥에는 두꺼운 플라스틱과 스티로폼이 깔려 있었고 주민들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중에는 차마 챙겨가지 못한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의 가방도 있었다. 가방 안에는 교과서와 문제집, 필통, 과자 등이 들어있어 주민들이 대피소를 빠져나갔을 때에도 황급한 상황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대피소 내부에는 난방이 전혀 안 되어 있었으며 양쪽에 하나씩 있는 두 개의 출입구가 모두 뚫려 있었다. 출입구 한 쪽에는 임시방편으로 비닐을 쳐놨지만 그마저도 다 뜯겨져 있었다. 배선 시설은 돼 있었지만 전구가 없어 불도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다.

북한의 포격으로 초토화된 연평도에 25일 모두 타버린 한 민가가 당시의 충격을 말해주듯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의 포격으로 초토화된 연평도에 25일 모두 타버린 한 민가가 당시의 충격을 말해주듯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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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포격을 맞은 연평도 주민들이 대피하기 위해 25일 간단한 짐만 챙겨 뭍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고 있다.
 북한의 포격을 맞은 연평도 주민들이 대피하기 위해 25일 간단한 짐만 챙겨 뭍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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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통신복구를 위한 공사차량과 군 경찰 차량이 도로를 오갈 뿐 연평도에서는 일반 주민들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부두에서 마을까지 거리는 약 2km. 용달 트럭을 얻어 타고 마을로 향했다. 산불과 주택가에 일어난 화재는 모두 진화돼 있었지만 공기 속에는 여전히 매캐한 화약냄새가 남아 있었다.

북한의 포격으로 초토화된 연평도에 25일 모두 타버린 민가가 당시의 충격을 말해주듯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의 포격으로 초토화된 연평도에 25일 모두 타버린 민가가 당시의 충격을 말해주듯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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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탄을 맞은 집들은 큰 길 쪽보다는 가구가 밀집돼 있는 골목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바닥에는 깨진 유리창 조각과 상점의 간판, 가재도구들이 나뒹굴었다. 깨진 유리창 너머로 집 안을 들여다보니 마치 잠시 외출한 것처럼 모든 물품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포탄을 맞은 집을 중심으로 좌우앞뒤 집으로 화재가 번진 모습이었고 이 같은 광경은 5~6개 집을 건너서 계속 이어졌다. 포탄을 맞거나 화재가 나지 않아 멀쩡한 모양의 집도 대부분 유리창이 깨져 있었다. 마을 전체에서 성한 유리창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우린 섬을 떠난다"

큰 길로 나와 남아있는 주민들을 찾아보았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문이 닫혀 있고 오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봤지만, 대부분 복구 작업을 위해 투입된 인부들이었다.

문이 열려 있는 한 여관에 들어섰을 때 주인 김아무개(31, 남)씨는 혼자 거실에 앉아 있었다. 그는 왜 섬 밖으로 나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지금 여객선을 타고 섬으로 들어오는 가족들을 기다리는 중"이라며 "가족들이 도착하면 필요한 생필품을 챙겨서 다 같이 나갈 예정"이라고 답했다.

북한의 포격으로 초토화된 연평도에 25일 모두 타버린 한 민가가 당시의 충격을 말해주듯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의 포격으로 초토화된 연평도에 25일 모두 타버린 한 민가가 당시의 충격을 말해주듯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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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포격으로 초토화된 연평도에서 25일 주민들이 뭍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짐을 급히 챙겨 차에 오르고 있다.
 북한의 포격으로 초토화된 연평도에서 25일 주민들이 뭍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짐을 급히 챙겨 차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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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에 남아있는 100여 명의 주민들 대부분은 김씨처럼 섬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25일 오후 5시 출발 예정인 배에 대부분 연평도 주민들이 탑승할 것으로 보여 이후 섬에 남이 있는 주민들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씨는 "이틀 동안 연평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완벽한 암흑상태 였다"고 설명했다. 연평도에서 복구 작업 중인 한국전력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가구들 곳곳에 화재가 발생해 일부 가구로 들어가는 배선에 문제가 있었다"며 "전기 공급은 어제 24일 밤에 정상화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빠르면 오늘 25일 저녁, 늦어도 내일(26일)이면 섬 대부분 지역에 전기공급이 원활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에 남아 있는 소수의 주민들은 연평 면사무소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정부측과의 보상 협상을 위해 남아 있는 주민 대표들이었다. 연평 면사무소 측에 따르면 현재까지 915명의 주민이 육지로 대피했고, 총 932가구 가운데 주택 31동이 포격과 포격 화재로 인해 피해를 입었으며 90% 이상의 가구가 유리창이 파열됐다.

악몽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 연평도의 밤

북한의 포격으로 부서진 집
 북한의 포격으로 부서진 집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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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사무소는 1차 포격 때 5~6개, 2차 포격 때 20발 이상의 포탄이 마을에 떨어진 것으로 집계했다. 북한이 쏜 100여 발 중에 상당수가 군부대에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주택뿐 아니라 면사무소 창고, 보건지소, 파출소 등 관공서 5곳도 포탄 피해를 입은 상황이다. 오후 3시 30분 경에는 김태영 국방장관이 연평면사무소를 방문해 연평면장에게 피해상황을 보고 받았다.

마을은 섬의 남쪽 방향에 위치해 있고 마을의 북쪽에서 야트막한 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다. 이곳으로부터 200여m정도 거리에 있는 섬의 북쪽은 대부분 임야로 민가가 없고 군부대가 위치해 있다. 북의 포격은 야트막한 산을 넘어 마을에 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날이 저물자 40-50미터 간격으로 가로등이 켜졌다. 몇몇 가옥에서는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북한 포격 3일째. 그 악몽으로부터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는 연평도의 적막한 밤이 깊어간다.

25일 오후 김태영 국방장관이 연평도를 찾아 연평면장으로부터 피해상황을 보고 받고 있다.
 25일 오후 김태영 국방장관이 연평도를 찾아 연평면장으로부터 피해상황을 보고 받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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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연평도, #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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