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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만 보면 참 멋지다. 대체로 높은 산 위에 성벽을 쌓고 망루를 세워서 위성에서도 보인다지 않는가. 북쪽으로부터의 침입을 막고자 했던 역대정권들의 치열한 생존전략이었으며 수없이 많은 서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엄청난 규모의 개발공사이기도 했다.

중국학계가 나서서 만리장성을 동쪽 끝과 서쪽 끝으로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무한정 확대해 '이만리장성'을 만들고 있지만, 명나라 한족정권이 재건한 산하이관(山海关)과 자위관(嘉峪关)에 이르는 장성만으로도 충분히 기나길다. 딱 중간에 전베이타이(镇北台)가 있다.

산시(陕西) 북단에 있는 도시이자 내몽골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위린(榆林)시에 바로 전베이타이가 있다. 시내에서 30분 정도 시내버스를 타고 가면 도착하는 거리다.

깔끔하게 조성된 국가AAA급 관광지를 들어서니 '천하제일대(天下第一臺)'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나타난다. 허름한 듯 보이는 바위에 새겨진 붉은 글씨는 중국 만리장성의 수호자인 고건축가 뤄저원(罗哲文)이 쓴 것이다. 올해 86세인 뤄저원은 중국 만리장성 대부분을 보수하고 연구한 학자이다. 그야말로 만리장성의 산 증인의 필체를 여기서 보다니 반갑다.

4층 높이의 전베이타이 장성. 1층 둘레가 320미터에 이른다.
 4층 높이의 전베이타이 장성. 1층 둘레가 320미터에 이른다.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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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리 떨어진 만리장성의 긴 노정에는 수많은 명승지가 있다. 산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으니 곳곳마다 그 이름이 서로 각각 다르다. 그 기능이나 지형에 따라 다른데 산하이관처럼 관(关)이라 하면 관문일 것이다. 관문은 대체로 요지이니 크고 작은 관청도 함께 있었는데 지금은 산하이관이나 자위관처럼 관청이 남아있기도 하다. 산둥 칭다오(青岛) 해변가에는 서구열강이 들어와 조차로 쓰면서 만리장성의 8개 관문 이름으로 바다관(八大关)이라 이름 짓기도 했다.

관문이란 말 대신에 입구라는 뜻으로 커우(口)라는 지명이 붙은 곳도 아주 많다. 베이징 외곽에 있는 유명한 장성인 구베이커우(古北口)나 아예 허베이(河北) 도시 이름이 된 장자커우(张家口)도 있다. 변방의 요새라는 싸이(塞)라는 지명도 꽤 있는데, 지루싸이(鸡鹿塞)나 가오취에싸이(高阙塞), 쥐옌싸이(居延塞) 등은 대부분 한(汉)나라 이전에 쌓은 장성이다.

요새와 비슷한 보루라는 뜻의 바오(堡)라는 이름이 붙은 장성도 많은데 이는 대부분 명나라 장성이다. 이 바오라는 이름은 주로 베이징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많은데 주변지역이 사막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흙담을 높이 쌓고 축성을 해서인지 보루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닐까 싶다.

▲ 달팽이가 자리잡고 있는 전베이타이 만리장성 본문기사 참조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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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중에서 흔하지 않은 것이 타이(台)라는 이름이다. 베이징 동북 쪽 쓰마타이(司马台)와 이곳 전베이타이가 유명하다. 전베이타이는 높이 4층 규모의 웅장한 정방형 망루로 명나라 후기에 이르러 건설했다. 수많은 장성 중에 3대 절경을 꼽으라면 산하이관과 자위관 그리고 바로 이 전베이타이를 떠올린다. 산하이관이 바다와 잇닿아 있어 자연경관이 아름답다면 자위관은 온통 사막과 초원으로 둘러싸인 가파른 절벽이 멋지다. 안으로 들어서면서 과연 이 전베이타이는 어떤 경관이길래 만리장성을 대표할까 생각했다.

과연 4층 높이이면서도 웅장한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바위 하나가 또 나타난다. 가운데 전베이타이 글자와 함께 만리장성 모습을 붉게 새겼다. 바위 위를 무심코 봤는데 갑자기 꿈틀하는 것이 보인다.

처음에는 돌 조각 하나가 바위 위에 떨어져 있는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움직이는 모습과 가느다란 촉수 2개가 들락거리는 것이 영락없이 달팽이다. 달팽이 종류나 개체수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렇게 국가급 관광지 한가운데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누군가 길바닥에서 주워서 올려놓았을 수도 있고 스스로 바닥에서부터 기어올랐을 수도 있다. 도대체 한 평도 채 안 되는 바위 위에 무슨 먹을거리가 있다고 올라와서 꿈틀거리고 있는지.

위린 전베이타이 장성에서 만난 달팽이. 뒤로 실루엣처럼 '만리장성 제일대'라는 전베이타이가 보인다.
 위린 전베이타이 장성에서 만난 달팽이. 뒤로 실루엣처럼 '만리장성 제일대'라는 전베이타이가 보인다.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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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느리디 느린 달팽이를 보고 있으니 갑자기 중국인의 특성으로 거론하는 만만디(慢慢地)라는 말이 생각난다. 명나라 시대 대규모 장성 건설 기간만 따져도 120여 년이나 되고 춘추전국시대 전후로 건설되기 시작한 것으로 따지면 2500년 이상의 역사를 담고 있다. 세우기도 힘들지만 부수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굳이 없애야 할 이유도 없으니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다.

가파른 절벽 위에 세운 장성을 볼 때마다 엄청나게 느린 달팽이처럼 여유가 없다면 이룰 수 없는 공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물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랐을 것이다. 달팽이가 장성의 역사를 알 도리가 없겠지만 느리면서도 끝까지 목적을 달성하는데 치열한 중국인들을 떠오르기에 적합해 보인다.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는 달팽이에게 '니가 만리장성을 알아?'하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전베이타이 장성 4층 꼭대기 성가퀴에 걸터앉은 아가씨.
 전베이타이 장성 4층 꼭대기 성가퀴에 걸터앉은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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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몸짓 뒤로 전베이타이의 거대한 윤곽이 드러나는 듯하다. 1층 기단 부분의 전체 둘레가 320m이며 벽 높이가 10m에 이른다. 남쪽이 76m, 북쪽이 82m, 동쪽과 서쪽이 각각 64m인 사다리꼴 모양이다.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4층의 높이는 4.4m이고 둘레는 35m가 조금 넘는다.

계단을 따라 층층이 올라가니 225㎡ 넓이의 전망대가 나타난다. 사면을 빙 둘러 요철 형 성가퀴(城垛)가 있다. 이 성가퀴에 남녀 한 쌍이 앉아있는데 놀러 나온 모양인지 웃기도 하고 진지하기도 했다. 관람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긴 했지만, 다소 위험해 보이기는 하다.

얼마 후 관리인이자 가이드가 오더니 내려오라고 하면서 하는 말이 뜻밖이다. 당연히 '위험하니 내려 와라'라고 할 줄 알았는데 문화재를 보호할 줄 모르냐고 야단을 친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 다른가 보다.

멀리 보이는 곳에 하천이 흐르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우리의 어머니 강'(我们的母亲河) 위시허(榆溪河)인데 우딩허(无定河)와 합쳐져 흐르다가 옌안(延安) 동쪽 부근에서 황허(黄河)로 흘러간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은 고향에 있는 강을 '어머니 강' 무친허(母亲河)라고 부른다.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으로 정겨운 말이다. 황허를 이를 때도 중국인들은 무친허라고 하며 자부심을 드러내는데 우리가 '서울의 젖줄 한강'이라고 하는 말과 비슷한 의미다.

전베이타이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서 양봉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건만 수십 개의 벌통을 두고 벌들과 함께 살고 있다. 1근(500g)에 12위안이니 참 싸다. 야생 잡꽃 꿀이지만, 가짜 같지 않고 선량한 표정과 말투니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다.

위린 시의 젖줄인 위시허에는 홍스샤(红石峡)가 있다. 이 협곡은 만리장성이 지나가는 자리이기도 하다. 전베이타이에서 걸어서 20분 가량 걸으면 된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점심을 먹는데 마침 아이들이 옆에 다가온다. 머리 감으라고 하는 엄마가 야속하기도 하다. 여행 중에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와 만나면 늘 고향에 온 듯하다.

위린 홍스샤 협곡 전경
 위린 홍스샤 협곡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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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샤는 이름처럼 붉은 암석이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협곡이다. 황토인지 홍암(红岩)인지 이 곁들여 있는 절벽에 지역 특색이 강한 동굴 집인 야오둥(窑洞)이 많다. 협곡 사이로 들어가니 거침 없이 흐르는 강물 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한다.

절벽에는 185개나 되는 마애석각(摩崖石刻)이 새겨져 있으며 누워 있는 부처 조각상도 보인다. 석각이 많다는 것은 수많은 문인들이나 정치가들이 다녀간 흔적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름 짓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이곳을 혼이 담긴 보물이라고 석각혼보(石刻魂宝)라 부른다.

이 협곡이 처음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때는 중국 북송(北宋)시대 강력한 경쟁왕조 서하(西夏)이다. 이 붉은 홍산(红山)에는 원래 동굴 속에 커다란 샘이 있어서 물이 흘러나와 남쪽으로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지방 출신 서하의 창업 국왕인 이계천(李继迁)은 풍수지리에 따라 물줄기를 막고 암석을 부숴 물길을 바꾼 후 조상을 매장했다고 전한다. 기록에 따르면 이곳이 조상을 모시고 번창했던 곳이라는 비석을 세웠다고 하는데 지금은 훼손돼 사라졌다.

위린 홍스샤 동굴을 흐르는 도랑인 광저취. 이 도랑은 역사기록에도 나오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기도 하다. 위쪽은 바깥, 아래쪽은 동굴 속이다.
 위린 홍스샤 동굴을 흐르는 도랑인 광저취. 이 도랑은 역사기록에도 나오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기도 하다. 위쪽은 바깥, 아래쪽은 동굴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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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기록은 1472년 명나라 시대 순무도어사(巡抚都御史) 여자준(余子俊)이다. 이곳에 만리장성의 중건을 위해 파견된 그는 홍스샤 북쪽에 물이 고여 있는 큰 호수 가운데에 도적떼들이 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물이 깊어 접근하기 힘들자 군대를 동원해 암석을 뚫어 부순 후 도랑을 만들었다. 물이 다 빠진 후 습격해 도적들을 소멸시켰다고 한다. 이때 암석을 부숴 만든 협곡을 홍스샤라 했고 호수의 물이 흘러 위시허가 됐으며 관개된 도랑을 광저취(广泽渠)라 불렀다.

위린 홍스샤 협곡이 바라다 보이는 동굴 모습(오른쪽)과 동굴 속 사람이 산 흔적이 보이며(왼쪽 아래) 천장(왼쪽 위)에는 태극과 동물 등 문양이 새겨져 있다.
 위린 홍스샤 협곡이 바라다 보이는 동굴 모습(오른쪽)과 동굴 속 사람이 산 흔적이 보이며(왼쪽 아래) 천장(왼쪽 위)에는 태극과 동물 등 문양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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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에는 태극의 괘나 꽃, 동물, 태양과 같은 문양들이 천장에 새겨져 있는데, 사람들이 살던 흔적이다. 도랑이 동굴 속으로 흘러들어 생활용수로 사용했으며 불을 피운 흔적도 보인다. 절벽을 깎아 문을 만들고 통로도 좁아 천혜의 요새라 해도 될 만하다.

좁은 동굴 속이고 바닥에 물이 흐르며 동굴 옆과 서로 통로인 공간이다. 홍스샤를 다녀온 후 최근에 안 사실은 바로 1994년 방영된 영화 <동사서독(東邪西毒)>의 촬영지라는 것이다. 진융(金庸) 원작소설이자 왕자웨이(王家卫)가 감독하고 장궈룽(张国荣)과 량자후이(梁家辉)가 각각 '서독'과 '동사'로 열연했으며 량차오웨이(梁朝伟), 장쉐여우(张学友), 장만위(张曼玉), 린칭샤(林青霞), 류자링(刘嘉玲), 양차이니(杨采妮) 등 이름만 들어도 당대 최고 배우들이 한꺼번에 등장한 영화이다.

위린 홍스샤 협곡 내 동굴 등에서 촬영한 영화 <동사서독>
 위린 홍스샤 협곡 내 동굴 등에서 촬영한 영화 <동사서독>
ⓒ Scholar Produ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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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인 장궈룽이 기거하는 공간에는 얽히고 설킨 인물들의 캐릭터를 드러내야 한다. 어두우면서도 약한 자연 조명이 드러나야 하며, 숨 막힐 듯 혼탁한 벽면이거나 길고 암흑 같은 통로가 필요하다면 정말 기가 막힌 곳이다.

게다가 아픈 상처를 잊도록 하려고 연인(장만위)이 '동사'를 통해 보내는 술 대신에 물을 마시는 장면은 동굴 속을 흐르는 물줄기가 제격인데 이 세상 어느 곳에 홍스샤 말고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최상의 장소이다. 영화의 탁월한 영상미를 발휘하는 아름다운 사막과 오아시스 같은 느낌도 다 이 부근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정말 <동사서독>의 촬영지가 산시(陕西) 성 위린(榆林)일지는 몰랐다.

그래서 2008년도에 다시 편집하고 새로 더빙한 리덕스(redux) 필름을 봤다. 배우들의 연기야 홍콩영화 중 실로 최상이라 할만할 뿐 아니라, 탁월한 영상미가 바로 홍스샤 동굴 속이구나 하는 것을 바로 느끼게 해줬다.

위린 홍스샤 협곡을 연결하는 돌다리 사이 공간에 얼키성킨 거미줄
 위린 홍스샤 협곡을 연결하는 돌다리 사이 공간에 얼키성킨 거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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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 사이를 연결하는 돌다리를 건넜다. 돌과 돌 사이에 빈 공간이 있고 그 아래로 강물이 흐르는 모습이 다 보인다. 발을 잘못 디디면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이 빈 공간을 거미가 줄로 얼키설키 이어놨다. 마치 아래를 보지 말고 자신을 보라는 듯, 아니면 다리를 건너는 동물들이 자신의 거미줄에 빠지라는 본능일 지도 모른다.

반대편으로 가면 빠른 유속을 아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다. 홍스샤의 또 다른 이름인 슝스샤(雄石峡) 석각이 훤히 보인다. 석각 위로 몇 마리 새들이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다. 날갯짓 하는 새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았다가 다시 제 자리에 앉았다 한다.

수많은 마애석각과 동굴이 서로 조화를 이룬 멋진 홍스샤.
 수많은 마애석각과 동굴이 서로 조화를 이룬 멋진 홍스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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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아래로 내려가니 다소 완만해진 물줄기 때문에 조그마한 모래사장이 생겼다. 아직 여름이어서인지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아래쪽으로는 출렁이는 구름다리가 멋지게 걸려 있다. 구름다리 가운데 서면 양쪽 협곡과 세찬 물줄기가 한눈에 보인다. 이 자연스럽게 펼쳐진 풍광을 오랫동안 서서 지켜본다. 어렵게 이 멀리 찾아왔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곳이니 작은 아쉬움도 남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어디라 해도 기억에서 사라지지도 않지만 또한 아쉬운 마음이 사라지지도 않는 것을 보니 여행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홍스샤. 잔잔한 물줄기로 생긴 모래사장과 출렁이는 구름다리
 홍스샤. 잔잔한 물줄기로 생긴 모래사장과 출렁이는 구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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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에서 우연히 만난 달팽이에게 '너란 녀석이 어찌 장성을 알까'하고 말 다툼을 하고 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협곡을 둘러보느라 열심히 다녔더니 힘겹다. 협곡을 빠져 나와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 나오는 길이 참으로 멀다.

▲ 영화 <동사서독> 촬영지 홍스샤 본문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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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13억과의대화 www.youy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만리장성, #전베이타이, #홍스샤, #동사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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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를 통해 중국전문기자및 작가로 활동하며 중국 역사문화, 한류 및 중국대중문화 등 취재. 블로그 <13억과의 대화> 운영, 중국문화 입문서 『13억 인과의 대화』 (2014.7), 중국민중의 항쟁기록 『민,란』 (2015.1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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