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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올해 친구 딸이 대학에 입학했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사립대다. 수험생일 때는 까칠하게 굴어서 말도 맘놓고 못했다고 했는데, 수능이 끝나자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을 고스란히 엄마에게 주었단다. 그런데 친구는 딸이 고생해서 벌었을 걸 생각하니 받을 수가 없어,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부모와 떨어져 살다 보면 불시에 필요할 수 있으니 예비금으로 가지고 있으라'면서 도로 주었다고. 그런데 그 딸이 등록금 고지서를 엄마에게 보여주면서 뜬금없이 엄마에게 하는 말이, "엄마, 대학이 무슨 홈쇼핑이야?" "왜?" "등록금이 입학금까지 합쳐서 4,999,900원이야." "500만 원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400만 원대라고 하는 것이 좀 덜 비싸다는 느낌이 들잖아?" 친구 말에 우린 같이 웃었다. 홈쇼핑이나 백화점 세일할 때 100원이나 200원 정도를 빼서 마치 싼 것처럼 홍보하는 마케팅을 대학에서도 이용한 것일까? 100원을 빼서 400만 원대의 등록금이라 싸다는 것인지, 아님 의도하지 않은 계산인데 절묘하게 이런 액수가 나온 것인지, 그 깊은(?) 속은 알 수가 없지만 헛헛한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등록금 외에 기숙사비도 마련해야 한 친구는 아이의 첫 등록금 마련을 위해 마지못해 학자금융자를 받았다.
사례 2. 한 친구는 남매가 둘 다 서울에 있는 사립대에 다닌다. 큰 애는 장학금을 받는데 학점이 높아도 전액 장학금은 거의 없다고 한다. 등록금의 1/3만 나온다고 했다. 큰 애의 장학금을 뺀 나머지 2/3 등록금과 둘째 등록금을 합치면 한 학기에 700여 만원에 달하는 돈을 친구는 마련해야 한다. 맞벌이 부모이긴 하지만 공무원 월급으로 감당하기 벅차고, 두 아이는 아르바이트 하느라 바빠서 학점 관리는 더더욱 어려운 실정이란다.
사례 3. 같이 근무하던 기간제 미술교사는 졸업하고 5년이 지났는데도 대출받은 등록금 갚느라 허리가 휜다고 했다. 예체능은 워낙 등록금도 비싼데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수 없어 군대 갔다 오고 30살이 넘어서도 대출받은 등록금 갚느라 여유가 없었다. 물론 결혼할 마음도 못 먹고 있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큰애 대학 등록금이 나왔다. 186만3000원. 지방 국립대인지라 비교적 적은 액수다. 본인은 지방에 간 것을 많이 후회하고 속상해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란다. 나 역시 딸에게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둘째 아들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재수비는 대학 등록금보다 더 비싼데, 재수비에 등록금에 군대까지 갔다 와야 하니 우리 부부는 앞으로도 7, 8년은 더 고생해야 할 듯하다. 그나마 큰애가 3학년이니, 큰애가 졸업할 때까지 아들은 2년 동안 군대에 갔다 와서 대학을 다녀줬으면 하지만, 강요할 수만도 없는 게 부모 입장이다.

다시 돌아온 등록금의 계절, 딸아 고맙다

2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등록금넷과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MB 3년 반값등록금 이행촉구·자살한 대학생추모 기자회견'을 열어 이명박 정부 3년의 반값등록금 미이행을 규탄하며 반값등록금 성적을 매긴 'F학점' 성적표를 들어보이고 있다.
 2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등록금넷과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MB 3년 반값등록금 이행촉구·자살한 대학생추모 기자회견'을 열어 이명박 정부 3년의 반값등록금 미이행을 규탄하며 반값등록금 성적을 매긴 'F학점' 성적표를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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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학들은 '인상 불가피론'을 주장했다. 가장 많이 든 사유는 '지난 2년간 등록금을 동결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동결하면 재정적인 압박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강대 측은 "교수 초청에 따른 자금이 부족하다"고 했고, 건국대 측은 "교수 충원, 공학관 신축 등 교육시설 개선을 위해서는 등록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해마다 대학 등록금 인상으로 사립대학들이 쌓아둔 누적적립금은 2010년 현재 1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특히 주요 사립대의 경우 최근 2년 사이 66%까지 불린 곳도 있다고 한다. 2009년 말 기준으로 4000억원 이상의 적립금을 쌓아둔 대학이 이화여대(7389억원), 연세대(5113억원), 홍익대(4857억원) 등이란다. 도대체 대학들은 이 적립금을 어디에 쓰려는 것일까.

지난해 법안 통과로 올해부터 등록금 상한제가 시행돼, 올해의 경우 5.1%(등록금 인상은 3년간 물가 인상율 평균의 1.5배 이하로 제한)가 상한선이다. 그러나교과부 관계자는 언론 보도에서 "등록금 동결이나 (대교협이 제시한) 상한선 3% 인상안은 강제로 종용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며 등록금을 결정하는 것은 대학 고유의 권한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대학과 교육부가 이렇게 서로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사이, 죽어나는 건 학부모와 학생들이다. 요즘 심심찮게 20~30대 청년들의 자살 기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다. 취업이 불안한 미래와 졸업 후의 빚으로 인한 파산, 등록금을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와 '스펙' 쌓기 등으로 친구 관계도 단절된 우리의 아이들이 죽어간다.

30년 직장생활에도 매대상품에만 눈길

시절이 이렇다보니, 내 나이도 이제 쉰이 넘었는데도 여유를 즐긴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다. 직장생활 30여년 쯤 하고 아이들도 스무 살 넘게 키워놨으니 이젠 좀 삶을 즐길 때도 되었건만, 그럴 수가 없다.

명품을 사는 것도 아니고, 값비싼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도 아닌데 쇼핑이라고 해봐야 70~90%세일하는 매대에 누워 있는 물건 사는 게 유일하고, 마트에 가서도 제값 주고 사는 것보다는 1+1에 눈이 간다.

노후계획은 세우지도 못했는데 앞으로 아들 군대갔다 오고 대학 마칠 때까지 족히 7, 8년은 걸린다. 그때 나는 60살이 된다. 지금부터 노후계획의 반은 빚갚기 프로젝트다. 근데 7, 8년 후에 우리 아이들이 취업을 못하면? 우리가 학자금까지 갚아야 한다는 말인가. 미래가 너무 암담하다.

1980년대 내가 학교 다닐 땐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면 등록금 마련할 수 있었다. 특히 남학생들은 막노동판에 나가 등록금 마련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해도 등록금 마련을 할 수가 없다. 2, 3가지의 아르바이트를 해도 시급 4000원 남짓 하는 돈으론 연간 1000여만 원에 가까운 등록금을 무엇을 해서 벌 수 있을까?

요즘 아이들은 아르바이트 하느라 친구를 만날 겨를도 없다. 커피전문점의 커피 한 잔에도 못 미치는 시급을 받으니 낭만은 고사하고, 과도한 '스펙' 쌓기와 졸업 후 취업 경쟁으로 외톨이가 늘고 있고, 이들이 학교 심리 상담센터를 찾는다는 기사도 있었다.

행복지수 세계 꼴찌, 등록금만 세계 최대구나

동국대 등록금 인상률이 교과부가 정한 상한선인 5.1%에 근접한 4.9%로 전국 사립대 인상률 1위를 기록한 가운데, 10일 낮 서울 중구 동국대 본관앞에서 권기홍 총학생회장을 비롯해서 학생 20여명이 삼보일배를 하며 인상 철회를 요구했다.
 동국대 등록금 인상률이 교과부가 정한 상한선인 5.1%에 근접한 4.9%로 전국 사립대 인상률 1위를 기록한 가운데, 10일 낮 서울 중구 동국대 본관앞에서 권기홍 총학생회장을 비롯해서 학생 20여명이 삼보일배를 하며 인상 철회를 요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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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큰 애는 아르바이트 구하느라 여념이 없다. 근데 그마저도 쉽지가 않다. 물가도 오르고 경제는 어려운 이때, 어른도 취업하기 힘든데 20대한테까지 일자리가 오기 어렵다는 현실을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는 지난해 전세계 청소년 행복지수를 분석한 결과 한국이 OECD 26개 국 중 꼴찌라고 발표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교수는 "우리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행복지수가 경제수준보다 너무 낮다"며 "일에 대한 만족도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라고 했다.

이제 대학 진학률이 90%에 육박하는 '세계에서 제일 대학 진학률이 높은 나라', '대학 등록금이 제일 비싼 나라'는 명예가 아니다. 교육부, 정부, 대학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반값등록금이냐 등록금 동결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태그:#대학 등록금, #내 집 마련, #물가, #노후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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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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