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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선생 VS 여제자>의 한 장면.
 영화 <여선생 VS 여제자>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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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여성화'는 교단의 여성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말하는 용어다. 여교사 비율이 자꾸만 높아지는 것은 교직이 출산 및 육아휴직을 실제로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이기도 하고, 선발과정이나 근무 여건에 있어서 성차별이 상대적으로 적고 오히려 여성적인 성품이라고 일컬어지는 특성들이 우대되는 직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근무하는 대구의 초등교사 신규임용자 중 여성의 비율은 85% 근처를 오르내리고, 중등교사 임용 2차시험(당시 면접)에서 남성의 경우에는 무조건 합격이라는 말이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중등임용 2차에서 남성이 떨어지는 걸 아직 보지 못했다. 내가 발령받았던 해에는 대구초등에 신규임용된 남성이 9명이었는데, 이들을 교육청에서 불러 점심식사를 하며 "당신들이 대구의 희망이오"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루머도 떠돌았을 정도였다.

이런 루머도 가십거리로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지만, 언론과 사람들이 더 걱정하는 것은 여교사가 많아서 학생들이, 특히 남학생들이 여성화되는 게 문제라는 염려다. 그래서 언급되는 것이 "남학생들이 자꾸만 교실바닥에서 공기놀이를 하고 놀아요",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학생들이 없어요" 등의 인터뷰들이다. 또 여교사들은 체육수업을 소홀히 한다든가 출장이나 야영, 운동회 준비 등의 업무를 기피해서 소수의 남교사들이 대부분의 업무를 해야만 한다는 것도 자주 거론되는 문제점들이다.

그런데 교단 여성화로 인한 남학생들의 여성화, 그리고 여교사들의 업무능력 내지는 업무기피가 사회문제로 언급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교사 전체교원의 29.4% 교원의 현황과 문제점"(<매일경제>, 1979년 9월 7일자)이나 "남학생의 여성화 등 문제점 시정 시급"(<동아일보>, 1980년 8월 28일자) 등의 보도들을 보면, 여교사의 비율이 높지 않아도 교직의 여성화로 사회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문제로 지적되는 현상들도 지금과 다른 것이 없다. 사람들은 여교사 비율이 30%가 채 안 될 때에도 교단 여성화로 남학생들이 여성화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슬슬 교단 여성화란 말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여교사 비율이 30%가 안 될 때 교단이 여성화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면, 그 이전에 즉 남교사 비율이 70%를 넘을 때는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교단 여성화라는 게 뭘 의미하는 말인가 혹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닐까?

이에 대한 논쟁도 사실 오래되었다. "여교사 편중에 남자아이들 여성화(?) 물증없는 심증 공방"(<경향신문>, 1997년 3월 10일자)과 같은 보도도 십수 년간 이어져오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건 교단 여성화가 실제로 문제인가 아닌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여성화만 문제인가?

동의하기 몹시 힘들지만 만약에 교사라는 직종에 특정 한 성별이 많아지는 것이 정말 문제라면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문제일까?

대도시 주변의 위성도시들의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은 그 지역에 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영천의 한 초등학교 같은 경우에는 영천에 거주하는 교사가 단 두 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대구에서 출퇴근을 한다. 많은 수의 교사들은 근무해본 학교 주변 외에는 영천에 대해 전혀 모른다. 초등학교, 중학년부터 지역중심 교육과정이 포함되면서 지역의 역사나 문화, 애향심 등을 배우게 되는데, 가르치는 교사도 그 지역사람이 아니고 학생들도 계속 대도시로 떠나간다. 매해 사정이 되는 학생들은 대도시로 전학을 가고, 남은 학생 중에서도 상급학교 진학은 대도시로 가기로 미리부터 결정해둔 경우가 많다. 떠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계속 남아 있는 학생들은 왠지 모를 패배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편, 예전과 달리 입시경쟁이 치열한 요즘은 교사들도 실적에 굉장히 압박을 받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우에도 국가수준 성취도평가 결과 등의 실적을 높게 내야 한다는 요구를 공공연히 받기도 하고, 교사 간 경쟁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실적에 대해 부담을 느끼게 된 게 사실이다.

각종 행사나 대회가 많은 초등학교는 시험 외에도 실적으로 취급되는 것들이 더 많다. 과학발명품이나 조회 때 학생들이 얼마나 줄을 잘 맞추느냐 혹은 방학숙제를 얼마나 잘해오느냐에 이르기까지. 그래서 시험시즌이나 실적물을 총취합하게 되는 학기말이 되면 학생들도 날카로워지지만 교사들도 늘어난 업무와 압박으로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겪는다. 주기적으로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교사들의 영향으로 학생들이 정서불안을 겪지는 않을까.

또, 체벌금지가 공식화된 분위기지만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 체벌이 이루어지고 욕설 내지는 폭언, 비하 발언을 하는 교사가 많다. 폭력적인 교사에 권위적인 교사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훨씬 높아진다. 이 교사들의 수와 그들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교단 여성화로 인해 남학생들이 여성화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학생들의 폭력화가 걱정된다.

사실 어떤 교사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선생 김봉두> 중 한 장면.
 영화 <선생 김봉두>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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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교단 여성화에 대한 문제 제기를 볼 때 가장 궁금한 것이 "왜 사람들이 교사에 따라 교육의 질이 달라지는 것을 인정하는가?"였다. 하다못해 슈퍼마켓에 가서 껌을 한 통 사더라도 여자사장님이 파는 껌과 남자사장님이 파는 껌이 다르다면 인정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막대한 세금을 투자해서 만들어지고 백년지대계로 불리는 교육인데, 심지어 교육에 관한 관심이 이렇게 뜨거운 한국사회가 교사에 따른 질적 차이를 인정한다는 게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여교사가 되었든 남교사가 되었든지 간에 교사가 학생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업무능력이 떨어진다면, 그것이 80%가 되었든 30%가 되었든 단 한 명이 되었든 그 수가 많고 적고가 아니라 그 교사로 인해 제대로 제공되지 않은 "교육의 질"이 문제이지 않은가 말이다. 여교사가 체육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 교사가 여성인 게 문제가 아니라 체육수업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이고, 남교사가 학생을 거칠게 대한다면 그 교사가 남성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교사의 문제이지 않은가.

또, 만약 여교사가 학교에 단 한 명이라면 그 여교사에게는 업무를 면제해주어도 되는가? 다시 말해 남교사에게 업무가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은 업무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교장, 교감과 그 학교 문화의 문제이지 여교사의 수가 문제인 건 아니다. 사실 뭉뚱그려서 "여성이라서" 혹은 "남성이라서" 문제라고 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포기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다양한 교사가 다양한 개성을 담아낼 수 있는 교육

다양한 교사가 다양한 개성을 담아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다양한 교사가 다양한 개성을 담아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이고 그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교사 역시 좀 더 여성인 교사, 남성인 교사, 꼼꼼한 교사, 털털한 교사, 감정의 표현이 많은 교사, 무뚝뚝한 교사, 과학에 관심이 많은 교사, 미술에 관심이 많은 교사 등등 다양하다. 심지어 한 사람의 교사 안에도 서로 상반되고 모순되는 수많은 특징들이 공존한다. 그 모든 개성들은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 누가 어떤 개성의 교사가 가장 좋은 교사라고 꼽아 말할 수 있는가. 설사 완벽한 교사의 상을 만들어낸 들 수십 년 동안 똑같은 모습의 교사를 학생들이 마주한다면 그게 바람직한 교육일까? 아니다. 오히려 각자의 개성으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고 그렇게 개성이 발현되어 있는 교사의 삶이 학생들의 삶과 교차되면서 교육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한 교사의 허구적인 이미지에 주목하기보다는 다양한 교사들이 교사로서 성장해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것이고, 특히 교사의 교육활동에 문제가 있다면 누구든 지금보다는 조금 더 쉽게 문제제기할 수 있게 변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태그:#여교사, #교육,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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