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인간의 혀끝만큼 간사하고 질긴 것이 또 있을까? 맛을 찾아 팔도를 뒤지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그 맛. 맛을 감별하는 혀끝의 감각이 마비되는 한이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잊지 못하는 그 맛은 어린시절 엄마가 해주신 반찬, 엄마의 냄새가 밴 그 맛일 것이다.

 

모처럼 깨끗한 저수지에서 낚시로 잡아왔다는 붕어를 선물받았다. 낚시광인 후배 남편의 수확물인데 채식주의자인 마누라 덕분에 잡아오고도 맛을 제대로 못 보는 지경이란다. 그 소리를 듣고 우리 집으로 가져오라고 했다. 붕어조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우리 남편이니 내가 조금만 수고하면 두 집 남자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 십여 년 전으로 필름을 되돌리기로 했다. 어머님표 붕어조림, 어머니 곁에서 잔심부름 하며 어깨너머로 봐왔던 요리법, 가물가물 하지만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기억을 더듬어 요리를 시작하자니 무슨 복원사업이라도 하는 것 같아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문화재만 복원하라는 법 있나. 어머니의 맛, 유년 시절의 맛, 고향의 맛을 복원하는 것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또 있을라구. 옛맛을 찾아낸다는 것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지고도 소중한 문화의 재조명일텐데.

 

 

 

붕어조림 하면 어머님이 겹쳐질 만큼 생전의 어머니가 만드신 붕어조림은 조리법이 독특하고 맛도 특별했다. 접시에 담겨진 것을 보면 이게 무슨 조림이야 할 정도로 붕어는 간 곳 없고 뭐가 뭔지 모르는 거무튀튀한 범벅이 담겨 있었으니 요리로 말할 것 같으면 식감하고는 상관없는 현지식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그렇게 만드는 붕어조림도 있다는 것을 결혼하고 처음 알았다. 민물고기를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어머니가 만드신 붕어조림을 본 순간 우선 형태와 색깔이 젓가락을 멀리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내게는 정말로 별 볼 일 없는 그 요리가 아마 우리 남편에게는 붕어조림 이전에 어머니의 냄새, 그리운 어머니 품속 같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붕어조림을 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돌아가신 영감님 흉을 보곤 하셨다. 영감님이 어찌나 낚시광이었든지 자고 새면 저수지로 출근하는 게 일이었다고 한다. 옛날엔 어디 탈 것이라도 있었던가. 직장이 낚시터인 영감님을 찾아 밥소쿠리 머리에 이고 지고 족히 두 시간은 걸어야 도착하는 저수지를 매일 다니셨다니.

 

"참말로 징했어야. 옛날엔 왜 그렇게 괴기도 많던지. 잘 잡힐 때는 팔꿈치가 안 올라 갈 정도로 많이 잡혔단다. 이구 그 비린내. 붕어가 아니라 웬수가 따로 없었당께. 느그 시아부지가 한밤중에 돌아오다 호랭이를 만난 적도 있었단다. 시퍼런 불을 키고 쫓아오는디 얼마나 무섭든지 죽어라 뛰었다는디 집에 와서 쓰러졌는디 물속에 빠진 것 같이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 되고 아주 숨넘어가게 생겼드라니께."

 

 

어머니는 붕어를 손질해 두껍게 썬 무를 깐 찜통에 넣고 고춧가루, 마늘, 생강, 간장 등을 섞은 다진 양념을 풀어 넣고 하루 종일 뭉근하게 고으셨다. 그리고 국물이 얼추 줄어든 다음에 대파, 양파, 매운 고추 그 위에 들깻잎을 그야말로 수북히 넣은 다음 다시 조리면 붕어조림 완성되는데 완성된 다음에 보면 붕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조림이 바로 어머니표 붕어조림이다.

 

어머니가 붕어조림을 해주시면 조림찜통이 바닥이 날 때까지 이틀이고 삼일이고 붕어조림만 먹던 사람이 남편이었다. 삶은 감자 으깬 것 같은 범벅을 숫가락으로 퍽퍽 퍼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남편을 보고 정말로 불가사의했다. 도대체 매운탕도 아닌 조림도 아닌 범벅덩어리가 뭐 그리 맛있다고 저렇게 인사불성이 될까?

 

아무리 큰 붕어라도 뼈까지 흐물흐물 녹아 없어질 정도로 졸이고 졸인 붕어조림. 드디어 완성이 됐다. 1박 2일은 못 채우고 한 열 시간 정도 고았더니 큰 가시는 남아있던데 그래도 씹으면 부서질 정도로 조려졌단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것만은 못 했겠지만 그래도 감격스런 표정으로 붕어조림 접시에 코를 박는 남편.

 

남편에게만 아주 특별한 음식. 어머니표 붕어조림 복원사업은 우리 남편에게 문화재 복원 못지않은 소중한 사업이었으리라. 나 죽고 난 뒤에 우리 아들에게도 엄마 하면 떠오르는 특별한 음식이 있기는 있을까? 나도 우리 아들에게 그런 추억을 남겨주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듯한 음식이 생각나지 않는구나.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마이뉴스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붕어조림, #어머니, #복원사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