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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커스에 빠진 독일 10대들 독일 전역의 10대 서커스 아티스트들이 4월말 슈투트가르트에 모여 '전 독일 청소년 서커스 페스티벌'을 열었다.
ⓒ 한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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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10대들이 서커스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독일 10대들이 서커스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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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음악소리에 맞춰 광대들이 춤추고 현란한 공 돌리기 묘기를 선보인다. 외줄타기, 외발 자전거 타기, 현란한 공 돌리기, 아찔한 공중 곡예 등 여느 서커스와 다를 바가 없다. 다만 다른 상업적 서커스와 달리 여기에 모인 서커스 아티스트들은 모두 독일 각 지역에서 모인 만 15세부터 만 18세까지 고등학생이다.

한창 공부에 열중해야 할 고등학생이 웬 서커스냐고 할 지 모르지만, 학생들이 기쁨과 희열로 가득 차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경건해 보이기까지 한다. 혹시나 싶어 훈련장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지만, 억압적인 고함소리나 기합은 보이지 않는다. 트레이너나 학생 모두 얼굴 한가득 자발적인 열정과 재미로 훈련에 집중하고 있음이 젊음과 어울려 후끈 달아오른 훈련장 열기로 감지된다. 외줄타기 연습을 하는 뮤리엘 클룸(15)이 눈에 들어왔다. 뮌헨에서 왔다는 뮤리엘에게 서커스를 왜 하는지 물었다.

"정말 재밌다. 새로운 기술에 도전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해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다. 사실 난 어렸을 때 무척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없어서, 남 앞에 잘 나서지도 못하는 아이였다. 김나지움(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서커스를 하면서부터, 나 스스로 많이 바뀌었다. 자신감도 생기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다."

4월말 슈투트가르트에 독일 전역의 서커스 학생 아티스트들이 모였다. 독일에서 사회성, 창의성, 인성을 발달시키는 교육법으로 서커스가 주목받고 활용된 것은 1980년대부터이다. 현재 독일 각 지역과 학교에 어린이와 청소년이 활동하는 다양한 서커스 단체들이 만들어져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 독일 서커스 단체의 고등학생 200명이 이번 '전 독일 청소년 서커스 페스티벌'에 모여, 5일간 합숙 훈련을 하고 마지막 이틀은 그동안 연습한 묘기를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멋진 서커스 공연으로 보여주었다. 

서커스를 통해 자신이 얼마만큼 변화했는지 설명하는 뮤리엘(오른쪽).
 서커스를 통해 자신이 얼마만큼 변화했는지 설명하는 뮤리엘(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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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보며 서커스 하는 고등학생... "어떻게 종일 공부만 해요?"

서커스 아티스트로 열심히 묘기와 재주를 부리는 학생들 중에 요즘 한창 진행되는 독일 대학 입학시험(아비투어)을 보고 있는 학생도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논술 위주의 필기시험에 구두시험까지 세계적으로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 아비투어를 보면서 서커스 공연 참여라니, 한국에서 대학시험을 경험해 본 기자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 긴급수배를 했다.

서커스 훈련과 공연을 하면서 아비투어를 제대로 볼 수 있냐는 질문에 안드레아스 굿츠만(19)은 말한다.

"필기시험은 보았고요. 이제 구두시험 남았어요. 시험 스트레스와 정신적 압박, 심하지요. 서커스는 오히려 이런 압박과 스트레스에서 정신과 마음의 균형을 잡기 위해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만 해요?

서커스 연습은 운동처럼 몸을 움직여야 되잖아요. 전 공중곡예를 하는데 제가 실수하면 다른 파트너가 다칠 수 있어요. 제가 다칠 수도 있고요. 그래서 그냥 몸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고도의 정신력과 집중력도 필요하거든요. 완전히 몰두하는 게 필요하죠. 이렇게 서커스 연습에 몰두하면서 시험을 잠시 잊고 있다가, 다시 공부를 하면 잘 되는 것 같아요.

시간이 촉박하지 않냐고요? 그건 시간을 잘 나눠 쓰면 되지요. 6학년 때부터 7년간 서커스 칼리바스트라(Circus Calibastra)에서 활동하면서 시간을 나눠 쓰는 것은 항상 해왔어요."

서커스를 연습하는 독일 학생들.
 서커스를 연습하는 독일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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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10대들이 서커스를 연습하고 있다.
 독일 10대들이 서커스를 연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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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가 오히려 시험 압박에서 정신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는 안드레아스는 시험을 잘 보았냐는 질문에 웃으며 자신의 경험을 얘기한다.

"결과는 나와 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 본 필기시험은 기대했던 것만큼 잘 본 것 같아요. 대학 시험도 인생에서 어려운 관문인데, 7년간 서커스를 하면서 배운 게 바로 어려운 문제가 제게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입니다.

처음부터 공중 곡예를 잘한 건 아니죠. 처음에는 쉬운 공 돌리기로 시작해서 점점 어려운 곡예로 넘어갔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 좌절, 울분을 겪었어요. 서커스가 재밌지만, 개인적으로 힘들 때도 있지요. 그때마다 저 혼자가 아니라, 동료들과 트레이너 선생님이 함께 극복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었어요. 그 과정에서 제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자신감도 생기고,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도 배운 것 같아요. 어려움을 극복하고 함께 만든 공연이 끝날 때 느끼는 그 성취감은 희열입니다."

독일 대학 입학시험(아비투어)을 보고 있는 안드레아스가 파트너와 함께 서커스를 펼치고 있다.
 독일 대학 입학시험(아비투어)을 보고 있는 안드레아스가 파트너와 함께 서커스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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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신감과 자아 극복의 경험은 학생들의 자발성을 이루는 밑바탕이기도 하다. 이번 '청소년 서커스 페스티벌'은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준비한 행사이다. 합숙 장소 구하기, 단체 연락, 5일간의 합숙프로그램 기획, 행정 등을 3명의 학생이 자발적으로 준비했다.

"올해는 저희 서커스 칼리바스트라가 창립된 지 2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계기로 다른 서커스 단체 학생들과 만나 경험과 기술도 교환하고 서로 배웠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세 명, 요하네스 굿츠만(만 15세), 막심 랍(만 15세), 미스 압달라(만 16세)가 역할 분담을 해서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재정 문제, 서커스 천막 대여와 설치 등은 부모님들이 도와주셨고요. 행사를 준비하며 제일 어려웠던 점은 워크숍 트레이너와 합숙 장소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잘 되었어요. 주최는 저희가 했지만 참가 학생들이 음주 및 실내 흡연 금지 같은 규칙을 잘 따라주어서 별 어려움은 없었어요."

규율과 규칙이 기본이 되는 서커스 훈련이 몸에 배었기 때문일까. 직접 만나본 많은 서커스 아티스트들은 한결같이 200명의 서로 개성이 다른 학생들이 5일간 모여 합숙했는데도 단 한 번의 싸움이나 문제가 일어나지 않고 아주 화목한 분위기여서 만족스럽다고 대답했다. 

'전 독일 청소년 서커스 페스티벌'을 자발적으로 준비한 막심과 요하네스.
 '전 독일 청소년 서커스 페스티벌'을 자발적으로 준비한 막심과 요하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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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문제는 올바른 교육이야

서커스는 이처럼 자아 확신, 자기 극복 등 개인 인성 발달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회성 발달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서커스 교육자들은 강조한다. 즉 서커스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 함께 제작하고 이를 통해 함께 배우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창작물로, 이를 통해 개개인의 인성뿐만 아니라 사회성도 발달한다고 한다.

25년 전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당시 8학년 학생들과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서커스 칼리바스트라를 시작했다는 두루흐데 발트씨. 왜 서커스를 교육 매개체로 택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우선 아이들이 정말 재미있어 했다. 어떤 교육이든 아이들의 흥미와 재미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제대로 될 수 없다. 당시 학교에서 문제아 반으로 찍혀 있던 아이들이 서커스 연습과 공연을 통해 반 전체가 서서히 변해가는 것을 보았다. 말썽 피우고 규율도 전혀 지키지 않던 아이들이 높은 수준의 규율이 필요한 서커스 훈련과 공연을 훌륭히 해 낸 것이다. 또 소극적이던 아이들의 자기 표현력도 높아지고, 자신감이 붙었다.

서커스는 종합예술이다. 소도구를 가지고 자기 몸과 정신을 지배해서 창작하는 것이다. 또 공연을 할 때 언제든 예상치 못했던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때 나 자신과 팀 전체를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 판단해서 즉흥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만큼 문제 대처 능력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또 인간 피라미드를 쌓는데 내가 잘못하면 위에 올라가 있는 모든 동료가 넘어지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런 체험을 통해 자연스레 연대감, 책임감이 체화된다."

발트씨는 서커스의 교육 효과에 대해 강조하면서도, 이런 강조가 잘못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염려했다.

"공 돌리기가 두뇌 회전에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서커스 교육을 싸구려로 팔아먹는 것에 반대한다. 서커스 교육은 단기간에 어떤 효과가 나타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사람은 서서히 변하는 것이다. 또 A에게 효과가 있다고 B에게도 효과가 있으란 법은 없다. 서커스는 올바른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의 하나이지, 서커스를 한다고 다 올바른 교육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객의 열렬한 박수를 받는 청소년 서커스 아티스트들.
 관객의 열렬한 박수를 받는 청소년 서커스 아티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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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서커스, #교육, #독일, #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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