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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8일, 서울대학교 기숙사인 관악사의 2학기 추가 입사 대상자 발표가 있었다. 1학기 동안 발생한 여분을 추가로 입사를 원하는 학생들에게 배정하는 것은 매년 있는 일이지만, 올해는 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중간에 퇴사한 학생들로 인해 생긴 공석이 400석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제 뚜껑을 열어 보니 배정된 학생은 50명 정도뿐이었던 것이다.

그냥 알려진 것과 달리 중도 퇴사 인원이 많지 않았던 모양이구나,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같은 날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인 '스누라이프(www.snulife.com)'에 글 한 편이 올라왔다. 사회대 소속 학생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이번 관악사 추가입사 신청자로, 턱없이 적은 입사대상자 발표에 의문을 품고 관악사 쪽에 전화를 걸어 본 결과 의외의 사실을 전해들었단다. 다음은 그가 사이트에 올린 글의 한 부분이다.

"본부장님께서는 금번 대기자 발표 전에 파악된 총 여석이 430명 정도 된다고 인정하시며, 그러면서도 많은 어려운 조건의 자국 학생들을 입사시켜주지 못하는 모순된 현실에 절망감에 가까운 감정을 전화상으로 표하셨습니다. 관악사 측에서는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을 타개하고자 본부측과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항의하였으나, 총장님을 위시한 본부는 요지부동이었고, 380명 정도의 여석을 MOU가 체결된 국제 교류 단체에 할당해야 한다는 입장만 되풀이하였습니다." <금번 기숙사(관악사) 사태 관련해서 비판을 하고 싶습니다>-tonite님

다시 말해 서울대학교 내의 외국인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기숙사를 배정하기로 한 교류대학과의 양해각서(MOU) 때문에 1학기 동안 발생한 관악사의 여석에 소수의 본교 학생만 입사자격을 얻은 것이다. 

이에 대한 서울대 학생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tonite'의 글에 익명으로 달린 댓글에는 "기숙사 떨어진 학기부터 휴학 한 학기씩해서 방값 마련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또 "지금 미국에 교환학생 나와 있는데요, 교환학생들은 오히려 학교 기숙사에서 받아주지 않는 상황이라 무조건 아파트나 사설 기숙사 구해야 합니다. 이 학교에선 기숙사 보장을 안 해주고, 서울대로 오는 외국학생들은 기숙사 보장을 해 준다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상호 협정을 맺을 때 우리가 손해보고 맺었다는 말이 되니까요"라며 대학 간 교류협정 체결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직접 증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프라인에서도 이번 문제에 대해 학교 측에 아쉬움을 가지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았다. 부천에 살고 있는 사회교육과 이혜수(22)씨는 "왕복 세 시간 정도 거리를 통학하고 있는데, 나 역시 기숙사에 입사하고 싶지만 입사가 제한되는 수도권 지역에 살고 있어 어려움이 많다"면서 "학생들한테 살 곳을 제공하는 것은 교육의 기본인데, 학교가 기존 기숙사 수요도 제대로 감당을 못해서 서울은 물론이고 통학이 쉽지 않은 일부 수도권 학생들에게도 입사를 제한하는 상황에서 외국인 학생 비율을 계속 늘려가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정확히는 357명의 외국인 교환학생이 관악사에 우선적으로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외에는 학부생 26명, 대학원생 35명에게 입사 자격이 주어졌다. 이는
예년의 2학기 추가 입사자가 150~200명 선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줄어든 수치다. 기숙사 추가 입사자가 대폭 준 것은 올해 2학기 외국인 교환학생이 작년보다 80여 명 늘었기 때문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지난 8월 재건축 마친 관악사, 수용인원 늘리긴 했으나...

국제협력본부는 서울대학교의 대외업무와 교류업무를 담당하는 곳으로, 지난 6월 학생들의 법인화 재논의 요구 점거농성 당시 오연천 총장이 임시로 자리를 옮겨 업무를 보기도 했다.
 국제협력본부는 서울대학교의 대외업무와 교류업무를 담당하는 곳으로, 지난 6월 학생들의 법인화 재논의 요구 점거농성 당시 오연천 총장이 임시로 자리를 옮겨 업무를 보기도 했다.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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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8월 재건축을 마친 관악사는 재건축 이후 수용인원을 늘리긴 했으나 그것조차 대학원생 위주의 증원이었다(학부 202명, 대학원 885명). 학생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외국대학간 교류를 담당하고 있는 국제협력본부와 관악사 명의의 설명문을 발표했다. "제한된 여건 속에서도 내·외국인 학생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조화롭게 거주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토록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 발표였다. 하지만 이 이상의 실질적인 조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왜 수요가 상대적으로 높은 학부생들이 아닌 대학원생들 위주의 증원이 이루어진 것일까? 이것에 대해 시설과의 한 직원은 "대학이 오래 전부터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그 이후의 기숙사 확충은 계속해서 검토를 내부적으로 해 왔는데, 재원이 마땅치 않아서 잠정적 상태로만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가 법인화가 된다면 앞으로는 자체 재정을 통해서 이것을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은 고스란히 학생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법인화 이후 기숙사 시설 확보라는 대형 복지 사업에 대학 측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낮다. 학생 복지는 대학의 최대 관심사인 대학순위 상승이나 재정확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협력본부의 이상억 팀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기숙사 사태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외국대학에서는 기숙사 외에 캠퍼스 주변에 주거 시설이 잘 되어 있는 편이라 기숙사를 의무적으로 주지 않아도 우리 학생들이 생활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외부에 주거 환경이 잘 되어 있다면 굳이 넣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 대학은 그런 여건이 되지 않아 기숙사를 (외국인에게) 의무적으로 제공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학제 때문에 2학기 때 외국인 학생들이 더 많이 들어온다는 사실도 본교 학생들이 이해해주기를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연초에 관악사 입사 신청을 받을 때에는 여전히 본교 학생들에게 기회가 많고 그 학생들은 1년 동안 거주가 보장되므로 무조건 외국인 학생들한테만 유리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에 와서 집을 구하는 것의 어려움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일시적인 체류 자격을 가진 학생 신문이라면 기숙사에 입사할 권한이 우선적으로 주어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대학은 기숙사 입사를 희망하는 본교 학생들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만큼은 아닐 수 있겠지만,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 생활해야 하는 학생들 역시 집을 구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단순히 대학 주변의 주거 환경이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외국인 학생들에게만 기숙사를 우선적으로 제공하면서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입사를 희망하는 많은 본교 학생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손님이 들어오니 주인이 쫓겨나는 상황, 누구를 위한 국제화인가?

대학 측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소위 '국제화'라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교류교환협정의 무분별한 확대를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국제협력본부와 관악사 명의로 발표된 설명문에는 "2007년 239명이던 교환학생이 2011년에는 666명으로 증가하였"고, 이에 따라 "관악사 입사를 신청한 외국인 교환 학생의 수가 2007년 2학기 90여 명에서 2011년 2학기 270여 명으로" 늘었다고 밝히고 있다.

외국인 학생비율이 대학순위를 평가하는 지표인 까닭에, 대학 측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외국인 학생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2007년에 발간된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측은 2025년까지 교환학생 비율을 4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교환학생을 40%까지 늘리려는 계획은 달성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외국인 학생 비율이 계속 늘어나리라는 점은 확실하다. 기숙사 정원을 늘리기 위한 증축이나 신축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는 본교 학생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태그:#서울대, #기숙사,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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