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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을 교육의 '수요자'로 보는 관점이 학교 현장에서는 일반화되었다. 그렇다면 교사들은 '공급자'일 수밖에 없을 터인데,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단순히 지식의 공급과 수요 차원에서 바라봐서만은 안 된다. 입시경쟁 사회지만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이 서로 성장한다'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배움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학교로서 한편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학교에서는 이러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고사하고, 지식의 공급 및 수요 차원에서조차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교육 실태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방과후학교'라고 불리는 강제 보충수업이다.

서울, 경기 등의 학교에서는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을 강제로 시행하는 학교는 많지 않다지만, 그 이외의 지역에서는 아직도 늦게까지 학생들이 학교에 강제적으로 남아 있으며, 밤 10시 이후에도 학원 수강 등으로 학생들의 건강 상태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전태일이 40여년 전에 '우리들은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다고 하지만, 21세기의 대한민국 학생들은 '우리는 공부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쳐야 할지도 모른다. 체력적인 면에서 학생들이 물리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학습량을 제공할 때, 학습 효율도 높아지지 않겠는가.

전태일의 외침은 지금 학생들에게도 해당된다. 그 외침을 아이들은 몸으로 보여주려는 것일까. "A 고교" 2교시 수업 시작 직전에 연출없이 찍은 사진.
▲ [우리도 기계가 아니다!] 전태일의 외침은 지금 학생들에게도 해당된다. 그 외침을 아이들은 몸으로 보여주려는 것일까. "A 고교" 2교시 수업 시작 직전에 연출없이 찍은 사진.
ⓒ 이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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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방과후학교와 관련해 소비자고발 관련 TV프로에 제보를 해도 될 정도의 심각한 학교 사례들도 있다. 일부 중학교에서는 국, 영, 수 등 이른바 주요 교과 위주로만 수업을 편성하다보니, 이들 교과담당 교사가 교육청 출장 등이 있는 경우에는 도덕, 음악 교사 등 관련이 전혀 없는 교사들이 미리 짜놓은 순번에 따라 영어나 수학 수업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유인물만 나누어주거나 자습을 시키는데, 이 때 교사가 받게 되는 강사비에 학생들이 수업을 받지도 않았는데도 결과적으로 학교의 강압에 못 이겨 낸 돈이 포함되어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또, 방학 때에는 학생들이 여러 사유로 방학 중 보충수업을 하지 않겠다고 말해도 학교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학교별로 편차는 있겠으나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이미 걷은 수강료를 다시 환불해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 번만이라도 학교에 나오도록 학생 및 학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어 출석을 요구한다.

방학 때에도 학교에 나와 10만 원 안팎의 수강료를 내는 학생들은 강의를 듣지 못해도 차액은 돌려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교사들도 수업이 없는 시간에 수업 준비에 힘을 쏟는 대신 학생들을 어떻게든 학교에 나오도록 전화로 독촉하는 일이 방학 중의 주된 업무가 된다. 이 모두, 애초부터 모든 학생들에게 일률적으로 방과후학교에 참여하도록 강요하는 것에서부터 발생한 사례들이다.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 등을 무조건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진로에 따라 보충수업이나 심화학습, 수월성 교육 등이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당연히 제공하고 이를 독려하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학생에 따라 정규교육과정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는 경우에까지 천편일률적으로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을 강요함으로서 발생하는 교육적 악영향이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당국은 우선 일선 중고교의 이러한 강제 방과후 관련 실태를 적극적으로 조사하기를 촉구한다. 아울러 학생들의 정규수업 내실화 방안과 학습 효율 제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하고, 교과 특기적성의 실시와 더불어 학교안팎의 전인교육 문화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신문에 실린 글을 보완하였습니다.



태그:#강제 보충, #강제 방과후, #정규수업 내실화, #소비자 고발, #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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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연대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를 제시하고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도록 글로써 힘을 더하고자 하는 작은 돌멩이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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