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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오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의 빈소에 고인이 연설하는 모습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9월 3일 오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의 빈소에 고인이 연설하는 모습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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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의 시대가 갔습니다. 한 시대가 갔습니다. 이소선 어머님의 죽음과 함께 전태일의 시대는 갔습니다.

우리는 이제 불꽃으로 타올라 노동자 인간선언 시대를 열었던 사람을, 그리고 아들의 유언을 가슴에 담고 평생을 노동자의 단결을 목놓아 외치며 전태일의 삶을 살았던 '어머니'를 보냈습니다.

전태일은 예수처럼 죽음으로써 부활하여 그의 시대를 열었던 사람입니다. 살아 생전에 자신의 시대를 산 왕이나 권력자도 아니었고, 부와 명예를 누리던 한국의 그 수많은 졸부들도 아니었지만, 전태일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와 권력을 나누어 준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의 양식과 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전태일은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뒤흔들어 양심의 눈을 뜨게 만든 사람입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더불어 함께 사는 마음을 쌀가마니처럼 수북하게 쌓아 준 산타클로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태일은 무엇보다도 현실의 삶 속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권력과 현금을 나누어 준 사람입니다. 노동자가 인간임을 자각하고 단결하면 당연히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깨우쳐 준 사람입니다.
노동자가 주권을 가진 인민으로서 자신이 권력자임을 자각하면 철벽같은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도 무너뜨릴 수 있고, 재벌의 철옹성도 모래로 쌓은 성처럼 허물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 사람입니다.

사실 1987년 6월 항쟁과 직선제 헌법 개정, 그리고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로의 정권교체로 상징되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주춧돌 가운데 맨 가운데 것은 전태일입니다. 터무니없는 계산법을 동원해 한미FTA 기대수익이니 예상수익이니 요란하게 선전하는 사기술까지는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늘날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가운데 상당 정도는 전태일의 몫일 것입니다.

이렇듯 전태일은 노동자는 노예가 아닌 인간임을 선언함으로써, 투쟁과 단결의 힘을 강하게 자각하게 함으로써 한국사회를 변화시켰습니다.

1963년 꽝둑(Thich Quang Duc) 스님을 비롯한 36명의 스님과 여성 재가자 1명의 분신이 베트남의 디엠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미국의 반전운동을 촉발시켰듯이 전태일의 분신은 극단의 거대한 반공 정신병동 철벽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노동운동과 생존권 투쟁에, 민주화운동에 숨을 불어넣어 강력한 사회변화운동으로 부활하게 만들었습니다.

1970년 11월 13일부터 오늘날까지 전태일은 살아 있었습니다. 전태일이 마지막까지 숨을 거두면서 '내 뜻을 헛되이 말라'며 당부한 그대로, 전태일의 뜻을 한 평생 품고 살아온 이소선 어머님과 함께 전태일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전태일의 뜻을 이어가고자 투쟁의 일선에 나섰습니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전태일의 생생한 육성을 삶의 회초리로 여기고 뜻을 세워 공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숱한 고뇌와 번민의 밤을 뒤로 하고 전태일을 본받아 과감하게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일선에 나서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이 엄수된 9월 7일 낮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앞 '전태일 다리'에서 열린 노제에서 고인의 영정사진이 아들의 동상앞에 놓여 있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이 엄수된 9월 7일 낮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앞 '전태일 다리'에서 열린 노제에서 고인의 영정사진이 아들의 동상앞에 놓여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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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의 대한민국: 살찐 노예 돼지들로 사육당하는 사막사회

전태일이 살았던 1970년으로부터 어언 40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세상은 바뀌었고 또 한참 바뀌었습니다. 전태일이 생전에 못다 이룬 꿈을 이루겠다고 온몸을 던져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이제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1970년과 견주면 2011년의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엄청나게 풍요로운 사회로 변했습니다. 넘치고 넘치는 게 상품들이고, 사람들은 마음껏 이런 풍요를 즐기고 있습니다. 한 번 입고 버리는 옷가지들이 부지기수이고 남기고 버리는 음식 쓰레기만 하더라도 북한이 필요로 하는 모자란 식량보다도 양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차상위 빈곤계층의 월소득은 북한이나 동남아 노동자들의 2~3년치 연봉에 해당합니다. 말하자면 한국의 차상위 빈곤층은 북한이나 동남아 노동자들이 2~3년 동안 쓸 의식주 관련 물건들과 음식들을 단 1달에 다 써버리는 초호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실제 차상위 빈곤층의 소비생활은 조선 시대 어느 양반 못지 않습니다. 매일 샤워하고 화장지를 '휴지' 버리듯 마구 버리고, 어렵게 사는 생활이지만 일년에 몇 번 명절과 잔치 때만 먹을 수 있었던 고기도 매일은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먹으면서 삽니다.

그러나 솔직히 지금 한국 노동자들은 살찐 노예 돼지로 사육당하고 있다고 막말을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연봉이 1억 원에 가까운 대기업 정규직 50대 남성 노동자들의 하루 생활을 들여다보면 이들은 그야말로 오직 돈버는 기계일 따름입니다. 잔업에 야근에 하루 온종일 공장 안에 갇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삶의 여유와 생활의 즐거움은 아예 박탈된, 그저 자본의 노예 부품으로 소모되다가 이윽고는 폐품으로 버려지는 소모품일 따름입니다.

더구나 한국은 지금 극단에 이른 양극화와 사회안전망의 붕괴로 솔직히 사람이 사랍답게 살 수 없는 사막사회, 괴물 사회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가치마저 돈으로 환산하는, 어떻게 보면 철저한 '유물론' 신봉자들의 사회입니다.

85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 4백만이 넘는 사실상 백수, 무려 700만 명에 달하는 빈곤계층, 760만에 가까운 신용취약자란 숫자가 웅변해주고 있는 것은 결국 1%의 풍요와 99%의 빈곤입니다.

전태일로 돌아가자!

그럼에도 이런 지옥같은 현실이 바뀌지 않은 것은 아주 단순합니다. 간디가 인도 인민들에게 그렇게 단순명쾌하게 외쳤듯이, 오늘날 한국의 노동자들이, 시민들이, 인민들이 1%의 기득권자들을 도와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갈이 분열되어 힘을 잃고 모두 파편화된 개인으로 뿔뿔이 흩어져 그저 죽자사자 경쟁의 사다리만 오르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의 투쟁을 외면하고, 파업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시민들이 외면하고, 농민들의 투쟁을 노동자와 도시민들이 외면하는 한 절대로 사막같은 한국 사회는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다시 전태일로 돌아가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전태일은 그런 '나혼자 살자' 사상이 아니라 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함께 살자' 사상을 철저하게 실천에 옮긴 사람이었습니다. 전태일은 자신이 싸온 도시락을 점심을 굶는 어린 여공들에게 나누어 준, 나눔을 직접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부자가 베푸는 자선은 결코 '함께 살자'는 나눔이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나누는 것이 함께 사는 길입니다.

전태일은 자신이 가진 전부를 이웃에게 주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전재산인 차비를 털어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창동까지 몇 시간을 걸어간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전태일의 사랑과 평화, 우애와 환대의 사상을 우리는 어느새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해마다 11월이 되면 말로는 전태일 정신을 계승한다고 골백번 되풀이 하면서,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이 벌이는 행태를 보면 때로는 구역질이 날 정도입니다. 물론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의 노동조합 간부들 가운데는 진실로 전태일 정신을 실천하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받습니다.

또한 전태일은 불의와 부정에 대해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커피값도 안되는 하루 일당을 받으면서 온갖 직업병으로 쓰러져 가고 있던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조사하고 이를 사회에 알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사업주들의 비양심에 대해 분노하고 이를 묵인하는 노동청 관리들에 대해 분노했던 것입니다.

10일 오후 김진숙 지도위원이 309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오기 위해 조정석 주변을 정리 하고 있다.
 10일 오후 김진숙 지도위원이 309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오기 위해 조정석 주변을 정리 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이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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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전태일은 각성과 깨달음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이란 노동자 스스로 공돌이 공순이라는 노예의식에서 벗어나 당당하고 떳떳한 노동자로 거듭나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런 각성된 노동자들이 스스로 단결해서 힘을 가져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도 먼저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전태일 스스로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을 배우고 노동조합의 전단계인 삼동친목회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분노와 각성, 깨달음과 단결정신을 어느새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분노와 각성, 깨달음과 단결정신의 자리엔 어느새 체념과 무기력을 채워 넣고 말았습니다.

이제 전태일운동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전태일을 호명해 불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나혼자 살자'의 생각을 버리고 '함께 살자'는 전태일의 생각과 실천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전태일운동을 다시 시작해야만 우리는 해고도, 비정규직도 없는 세상을 현실에서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투쟁의 시대가 지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은 더 강도 높은 수많은 김진숙들의 투쟁,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수많은 농민들의 투쟁, 수많은 청년과 시민들의 투쟁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저항과 투쟁만으로는 이 삭막하기 그지없는 야만의 사막사회를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비정규직 자체를 없애고 해고도 비정규직도 없는 세상을, 공동체를 복원하고 협동과 평화의 공동체 경제를 만들어 나가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전태일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과감한 투쟁과 함께 모범업체를 세워 근로기준법이 지켜지는 세상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려 했듯이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으로 바꾸어 나가는 운동을 벌여야만 합니다. 부정과 비리가 갈수록 더 고착화되면서 1% 기득권들만 판치는 이 지옥같은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 안의 노예의식을 스스로 과감하게 깨뜨려야 합니다. 부지불식간에 내면화되어 있던 신자유주의의 경쟁과 전쟁이란 가치를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려야 합니다. 경쟁과 전쟁이란 결코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악의 축입니다. 그 자리에 우리는 협동과 평화의 가치를, 사랑과 우애와 환대의 공동체 가치를 다시 탈환해 와 확고하게 세워야 합니다. 이런 각성이야말로 사회를 바꾸는 출발 총성에 다름 아닙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이겨야 하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경쟁은 결코 우리의 삶을 인간의 삶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우리는 전태일의 죽음을 사는 게 아니라 전태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전태일이 어린 여공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그 사랑의 풀빵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2012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입니다. 협동과 평화, 공동체 경제를 우리가 다시 주목하는 것은 사람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다는 아주 근본의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전태일의 사랑과 평화를, 나눔과 협동을, 투쟁과 단결을 다시 생각합니다. 전태일운동은 이제 시작입니다.

덧붙이는 글 | (* 박승옥은 1983년 5월 돌베개 출판사 편집장으로 있으면서 전태일평전을 지은이 조영래를 밝히지 못한 채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란 제목으로 출판했습니다.)



태그:#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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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민주주의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민주적 대안언론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역사와 노동과 생태 문제에 관심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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