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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4일)부터 교원평가 중 동료평가가 시작되었다. 이미 지난달부터 학부모 평가 및 학생 평가는 이루어진 상태다. 교원능력평가 중 가장 중요한 동료평가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용어 정의의 문제(학습지도)

학습지도
▲ 동료평가 설문내용 학습지도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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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는 교원능력평가 중 동료평가 설문의 구체적 내용이다. 설문은 이미 교육청에서 정해놓은 것이 대부분이므로 우리가 임의적으로 설문의 내용을 바꿀 수는 없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설문의 내용 중 둥글게 표시된 단어들은 그 의미가 매우 넓고 동시에 깊은 함의를 지니고 있다. 처음 질문에 나오는 '이해'의 문제부터 하나씩 짚어보자. 교사가 교육과정을 이해하고 수업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수업현장에서 이것의 이해 정도를 다른 교사가 즉석에서 알아내서 그것을 평가할 수 있는 도구는 현재 우리나라 교육상황에서는 거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설사 이해되었다고 치자. 그 뒤에 따라오는 문제는 더 어렵고 난감하다. 교육과정의 이해가 수업에 적용되는지도 어려운 상황인데 그것을 이용하여 수업을 개선하고 있는가를 묻는다는 것은 한 교사가 다른 교사의 모든 수업행위를 통찰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실제 현장에서 이러한 수업평가를 위해 공개수업 한, 두 시간이 다른 교사를 평가할 수 있는 기회의 전부인데 이 기회를 통해 위의 처음 설문에 답한다는 것 자체는 평가 교사가 거의 신(神)의 경지에 이르러야 할 일이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열의'의 문제이다. 교사 개개인의 수업에 대한 열의는 각 교사의 성품과 특성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열의'를 가지고 있는가를 묻는다. 열의를 가진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23년 이상을 교직에 있어왔지만 열의 없이 수업에 임해본 적은 거의 없다. 아니 열의 혹은 열정이 없으면 기본적으로 수업이 어렵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교과서라는 매개물을 통해 전달하는 작업이 열정과 성의 없이 될 수 있는 일인가? 흔한 예를 들어보자 군대에서의 행해지고 있는 군사 '교육'에서 조차도 교관의 열의가 필수 항목인데 하물며 2세 교육의 중심에 있는 우리가 열의 없이 이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이것은 현재 학교교육 전체에 대한 우문이다. 그러나 설문은 이것을 5단계로 답하라고 강요한다.

세 번째, 학생과의 소통문제이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공개수업한, 두 시간을 통해 소통을 확인하려고 한다면 교사는 학생들과 연극을 해야만 한다. 잘 짜인 대본과 그에 따른 멋진 연기로 소통을 보여 줄 수 있다. 하지만 소통이란 단어는 무엇을 이야기 하는가? 교사와 학생이 수업장면에서 서로의 내밀한 그 무엇을 주고받아 수업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그것을 토대로 학생 스스로 지식에 대한 탐구가 확산되는 상황을 이야기한다면 이것 또한 평가하는 쪽은 거의 전능한 존재이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교사와 학생이 소통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를 5단계로 하는 것은 거짓이거나 혹은 오류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럼에도 교육당국은 이것을 기초자료로 삼아 교사의 신상과 연결시키겠다고 늘 엄포를 놓는다.

네 번째, 원만한 수업에 대한 문제이다. '원만'하다는 무슨 뜻인가? 모든 일이 부드럽다거나 순조롭다 혹은 사이가 좋다는 뜻으로 풀이되는데 교사와 학생이 수업현장에서 원만한 것으로 수업이 잘 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 학생의 질문이 교사에게 자극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고 동시에 교사는 학생들이 잘못된 일을 하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경우, 꾸지람이나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도 있을 텐데 이러한 가능성은 접어두고 단지 원만함으로 수업현장을 평가한다는 것은 수업행위가 아니라 수업을 시범이나 공연으로 오해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도달도'라는 말에 거의 모든 교사는 좌절할 것이다. 수업에서 학습목표가 도달되었는가 하는 부분은 사실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도달도'를 구체적으로 가늠한다는 것은 또 다른 도구가 필요하다. 다시 이야기 하면 교사의 수업이 수업목표에 도달했는가는 그것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평가가 있어야 하는데(물론 단원 형성평가를 하기는 한다.) 그 평가의 주체는 담당 수업교사가 아니라 평가하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만약 이렇게 되면 문제는 조금 복잡해진다. 한 수업을 두고 두 명의 교사가 측정해야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그 모든 원인은 '도달도'라는 거의 측정 불가한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용어 정의의 문제(생활지도)

 
생활지도
▲ 동료평가 설문내용 생활지도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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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그래도 학습지도 분야 이므로 어쩌면 교실 수업을 통해 한 두 개의 설문에는 응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활지도 설문에는 어떤 교사도 쉽게 설문에 응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설문의 내용이 거의 태평양처럼 광범위하고 깊어서 만약 설문에 응답한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평가 대상 교사와 연결하여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응답의 수준은 거의 일반론으로 넘겨짚기 수준의 대답이 될 공산이 크다.

먼저 학생의 수준에 맞는 기본 생활습관을 지도하는가? 참 어이없는 일이다. 우리가 하는 일의 범위를 넘는 일이다. 각 학생의 수준을 맞춘다는 일이 그리 간단한 일인가? 학생의 숫자가 작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 학생의 기본 생활습관을 그것도 수준에 맞춰 지도하는가를 동료교사가 알 수 있다? 그건 분명 아니다.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도 불가능한 일을 동료교사가 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렇게 불합리한 설문에 우리가 답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설문을 제작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 이상 더 좋은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교원능력평가가 얼마나 부실한 토대위에 이루어지는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두 번째, 학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파악하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모든 교사가 이 모든 문제를 사전에 파악하고 지도한다면 대한민국 학교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사정이 그렇지 못하니 아마도 이 설문에 대답을 꼭 해야 한다면 우리는 모두 '매우 미흡'에 체크해야 한다. 이러한 광범위한 설문을 교사 평가 그것도 동료평가의 기준으로 제시한 것도 문제지만 그러한 것을 평가하겠다고 처음부터 아이디어를 낸 자체가 바로 성과주의 혹은 신자유주의 교육관의 산물이다. 교육은 표면적 성과의 집합체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변화임을 모르는 한심한 생각의 결과이다.

마지막으로 배려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가 과연 배려라는 것을 입에 올릴 수 있는 사회인가부터 생각해보자. 교사로서 나는, 돈과 권력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자를 따뜻하게 배려하지 않는 이 사회에서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에게 '배려'라는 말을 선뜻 이야기하지 못한다. 특히 현재 내가 있는 학교의 학생들은 배려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큰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 아이들에게 먼저 배려하라고 가르치기 어렵다. 백번 양보해서 배려를 가르친다고 치자.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알아보고 또 그것을 가르쳤는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러한 관념적 단어를 설문에 넣은 것은 설문의 직접성이 없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형식적인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것으로 교사를 평가하고 종래에는 이것으로 교사의 신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한다.

나는 왜 평가를 거부하는가?

교사로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지에 대해 언제나 엄숙하고 냉정하게 고민한다. 모름지기 이 땅에서 교사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화두를 잡고 매일 교육현장에 선다. 그런 우리에게 동료교사를 평가하라 한다. 엄숙한 고민보다는 성과를 보이는 것으로, 냉정한 자기 성찰보다는 타인에 대한 평가를 대충 얼버무려 많은 교사를 평가하고 교육을 저울질하려 한다.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고위 관료들이 대학에서 교육을 전공하는 학자들의 이론 중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이론을 끌어와서 교육을 '평가'의 패러다임으로 몰면서 세계적 추세, 시대적 요구라는 등의 말로 감히 저항할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지만 현장 교사인 나는 그것이 '교육적'일 것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적극적으로 이것에 반대할 힘도 도구도 없는 교사로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길은 소극적 방법 이를테면 평가거부의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태그:#교원평가, #동료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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