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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목(王衣木) 1 -
ⓒ 이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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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650년 전, 다시 말해 1361년 12월에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고려 공민왕이 개경을 떠나 경상북도 복주(안동)로 피난을 가면서 문경을 지나게 되었다. 지나면서 문경시 산양면 위만2리 상위마을 뒷산에서 잠시 쉬어가게 되었는데, 쉬면서 용포를 벗어 나무에 걸어두었다. 그런 연유로 이산을 왕의산(王衣山)으로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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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목(王衣木)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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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산은 문경시 산양면·산북면과 예천군 용궁면을 경계로 그리 높지 않은 338m의 산이다. 이 산 정상부에는 영남사람들이 한양을 오가면서 지나는 '문고개'라는 고개가 있고, 고갯마루에 수백 년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원 둥치는 죽어 없어지고 옆가지가 다시 큰 나무로 자라다가 지금은 검게 변한 속을 들어 낸 채 고목이 되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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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목(王衣木) 크기 비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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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상위마을 사람들은 옛부터 전해져온 이야기라며 이 고목나무가 바로 공민왕이 몽진길에 이곳 문고개를 지나다가 잠시 쉬면서 용포를 걸어 두었던 그 나무라고 말하고 모두 그렇게들 믿고 있다. 그렇다면 이 역사와 전설이 담긴 수령이 오래된 느티나무 고목은 늦었지만 잘 관리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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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목(王衣木)과 문고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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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은 학술 및 관상적 가치가 높아 그 보호와 보존을 법률로 지정하는 것인데 동물의 종과 서식지, 식물의 개체·종 및 자생지, 지질 및 광물 등으로 우리나라는 약 400여 점이 지정되어 있다. 나무로는 노거수, 성황림, 호안림, 방풍림, 어부림, 보해림, 역사림 등이 주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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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고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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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문경 왕의산 왕의목(王衣木)은 수령은 물론 나무나 숲과 관련된 특별한 고사나 전설 등이 전해지는 역사림 범주에 들어가며 천연기념물로서 충분한 자격과 지정요건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당연히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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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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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에는 고려 공민왕과 관련된 역사 및 전설설화가 많이 남아 있다. 피난 중에 난이 빨리 평정되지 않자 인근을 순행하든 중 문경에서 홍건적의 난을 물리쳤다는 경사스런 소식을 들었다 하여 경사 경(慶) 자에 들을 문(聞)자를 써 문경(聞慶)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유래와 문경의 진산 주흘산에 있는 혜국사(惠國寺)와 어류동(御留洞), 전좌문(殿座門) 등이 모두 공민왕과 관련된 지명과 전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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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산에서 내려다 본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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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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