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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불안>
 알랭 드 보통의 <불안>
ⓒ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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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친구 중 하나는 '인생의 절반은 불안이고, 나머지 절반은 근심'이라는 꽤나 그럴듯하면서도 서글픈 말을 하였다. 어쩌면 인생은 불안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관속에 들어가는 날까지 불안을 친구삼아 가야하는 것은 아닐지, 불안하기 그지없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아랍의 속담이라는 이 말은 독일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영화 제목이자 <자우림> 멤버 김윤아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즉, 불안은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듯 인간의 영혼을 갉아 먹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불안은 치명적이면서도 위험한 감정이다. 그런데 불안이라는 이 감정을 깊이 있게 통찰하고 분석한 책이 있다.

바로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다. <책은 도끼다>에서 저자 박웅현은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으면 덜 불안해진다고 이 책을 소개했다. 불안을 해부한 이 책을 통해 자신이 하는 행동을 이해하게 되고 그렇게 됨으로써 자신의 감정에 당황하지 않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박웅현은 설명하였다.

알랭 드 보통에게 '90년대식 스탕달' 혹은 '닥터 러브'라는 별명을 갖게 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우리는 사랑일까><너를 사랑한다는 건>, 이 사랑의 3부작이 일상적이지만 개인적이지 않은 보편적 방식으로 사랑을 분석한 것처럼, <불안> 역시 일상적이지만 개인적이지 않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불안을 분석하고 있다.

<불안>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는 여러 종류의 불안 가운데서도 특히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불안을 집중 탐구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가 결정되고, 또 그것이 자신의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죄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불안할까?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이 생기는 원인을 사랑결핍과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이라는 사회적 관계와 현상에서 찾고 있다. 그 중 능력주의가 왜 불안을 야기하는지 그의 견해를 보자.

19세기와 20세기의 사회법에서 능력주의 원리가 승리를 거두면서 비록 속도나 진지성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서양의 모든 정부가 평등한 기회를 장려했고, 대표적인 것이 1870년 영국에서 시행한 경쟁시험을 통한 공무원 선발 제도의 도입이었다. 선진국에서는 멍청이를 능력 있는 사람으로 대체하는 것이 고용 개혁의 주요한 목표가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러자 능력과 세속적 지위 사이에 신뢰할 만한 관련이 있다는 믿음이 늘어나면서, 돈에도 새로운 도덕적 가치가 부여되었다. 능력주의가 나타나기 이전까지는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진정으로 부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존중 받을 자격이 있으며, 세상의 지위는 신이 보기에 아무런 도덕적 가치가 없고 부자는 파렴치하다고 인식되었으나 능력주의가 시대적 사명이 되면서 이러한 인식이 깨지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난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었지만, 능력주의 시대가 되면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왜 가난한지를 고민하며 거기에 답을 해야 하는 더 모질고 괴로운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경제적 능력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어떤 영역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제 '불운하다'고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실패자'라고 묘사되었다. 따라서 빈자들은 이제 부자들의 자선과 죄책감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자수성가한 강건한 개인들의 눈에는 오히려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자신의 저택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으며 그들이 떠나온 가난한 무리를 가엾게 여기는 척하며 악어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본문 109쪽)

즉,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되었다고 알랭 드 보통은 이야기한다. 학교건 직장이건 심지어 가정에서마저도 능력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된 오늘날에는 전통사회에서처럼 뿌린 대로 거두고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 여기며 사는 마음 편한 곳은 이제 없는 것이다.

능력주의와 더불어 불확실성 또한 현대 사회에서 불안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성취하는 것보다도 태어날 때 얻는 신분이 중요했다. 즉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누구냐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근대사회에서 지위는 세습적인 신분보다는 급속하게 움직이는 무자비한 경제 내에서 거두는 성과에 따라 달라졌다. 따라서 가변적인 조직 피라미드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끝없는 욕망이 불안을 낳게 되었다고 보통은 말한다. 알랭 드 보통은 한 마디로 '불안은 현대 야망의 하녀'라고 정의하고 있다.

돈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많은 나라가 부자 나라

그렇다면 불안은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을 달래는 해법으로 철학과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안을 들고 있다. 먼저 불안의 실체를 철학적으로 인식하고 논리적으로 대응할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예술과 예술작품을 통해 그러한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 한다.

영국의 미술 평론가이가 사회사상가였던 러스킨의 삶에 대한 견해를 보자. 러스킨은 부에 대한 일반적인 금전적 관점을 버리고 "삶"에 기초한 관점을 채택하라고 호소했다. 러스킨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상인이나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러스킨은 "삶, 즉 사랑의 힘, 기쁨의 힘, 감탄의 힘을 모두 포함하는 삶 외에 다른 부는 없다. 고귀하고 행복한 인간을 가장 많이 길러내는 나라가 가장 부유하다"고 말하였다.(본문 250쪽) 즉, 돈이 없다고 인생이 불안하고 불행한 것이 아니라 밤하늘의 별을 보고도 아무 느낌도, 감흥도 없는 것이 진짜 가난하고 불행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부자 되세요"가 덕담이 되어버린,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 가치를 잃어버린 이 사회에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인간은 모름지기 순응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살고, 어떤 옷을 입고, 무엇을 먹고, 쓰느냐 하는 문제에서 다른 사람들의 관념에 맞추다 보면 얼굴에 서서히 '우둔한 표정'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고귀한 사람은 "나는 내가 관심을 가지는 일을 하지,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라는 금언에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에머슨과 같은 이러한 보헤미안적 삶의 태도 역시 사회적 관계 속에서 기인하는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불안>은 제목과 다르게 읽다 보면 마음에 공감과 위로를 주고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부추기는 나날이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사람들의 영혼은 피폐해지고 불안에 잠식당하고 있다. 삶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러스킨의 말처럼 밤하늘의 별 밑에서 경이감을 맛볼 수 있다면 인생이 지금처럼 불안하기만 하겠는가. '일상의 철학자'라는 표현만큼이나 철학적이고 의미있는 알랭 드 보통의 글은 불안으로 가득 찬 삶에 쉼표가 되어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은행나무 펴냄, 2012.01.04, 14,000원



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은행나무(2011)


태그:#불안 , #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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