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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부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삶의 여정을 더듬는 여행기를 쓰기 위해 지중해와 흑해 연안을 오가며 여행 중인 박경철씨가 지난 12일(현지시각) 아테네에서 목격한 역사의 현장에 대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실제 거리에서 시민을 만난 인터뷰 동영상과 사진만 8기가에 이르는 분량이지만 현지 통신사정으로 인해 일부만 공개합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요청에 따라 박경철씨가 펠레폰네소스 지역의 작은 도시들로 떠나는 날 아침에 간략하게 정리한 소감으로 보다 자세한 글과 자료는 추후 공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12일(현지시각) 그리스의 아테네에 위치한 신타그마 광장에 모인 대규모 시위대가 'EU가 제시한 구제금융 조건 수용' 거부의 뜻을 외치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각) 그리스의 아테네에 위치한 신타그마 광장에 모인 대규모 시위대가 'EU가 제시한 구제금융 조건 수용' 거부의 뜻을 외치고 있다.
ⓒ 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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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초 그리스 문학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작은 건강문제로 12월 말 도중에 귀국했다가, 2월 초에 다시 터키를 거친 다음 지난 12일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 그리스 국제공항은 찬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우울한 우기는 그 찬란하다는 지중해의 황금 햇살을 가렸고, 아폴론의 황금마차는 흑해 연안의 어느 신전에 웅크린 채 겨울내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듯한 모습이었다.

카잔차키스는 지중해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12겹의 역사가 벽돌처럼 쌓여 있다고 했다. 그는 그리스를 방문하는 이방인들은 솜씨 좋은 장인이 빚은 유적을 그저 눈으로 즐기면 그만이지만, 그리스인은 그것을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고 말했었다. 실제 그의 집 문설주에는 '모든 것을 과도하게'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얼핏 '과유불급'의 정신과는 정반대 말로 읽힌다. 하지만 그것은 치명적 오독이다.

그의 '과도하게'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역사와 문명을 대하는 인류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문명은 프로메테우스의 불, 이카로스의 날개, 천마 페가수스의 고삐가 상징하듯, 늘 도전하고 투쟁하며 나아가는 상승의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조르바'의 입을 빌려 즐겨 말했던 '자유'는 끝이 없는 오르막이고,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그리스도는 '구원으로부터의 구원'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는 한편 그것을 '탁월함'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편지글에 따르면 '그리스 문명은 그 탁월함이 어느 순간 찰나처럼 번쩍인 결과'다. 그는 어느 민족이 고대부터 그 땅에 피를 뿌리고 고통과 수난을 경험하다가 그 고통을 벗어나려는 응축된 의지가 한순간 분출할 때 '외부 역사의 장면과 절묘한 결합을 이루며 번개처럼 번쩍이는 빛', 그것이 바로 문명이고 헬레니즘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실제 그리스의 역사는 수난과 투쟁의 역사다. 고대 펠로폰네소스의 기아와 질병, 약탈과 전쟁의 고통을 벗어나려는 인간의 갈망이 신화를 만들었고, 그 신화 속 주인공을 닮으려는 상승의 의지(탁월함에의 도전)가 아테네 문명을 개화시킨 것이다. 그리스인의 피에는 저항의 역사가 있다. 한때 탁월했지만, 이후 무려 2000년이나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그들의 피 속에는 절대 굴종하지 않는 불굴의 자존심이 뿌리깊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그렇게 처절한 독립투쟁의 역사를 가진 그리스가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터키로부터 독립 후 되찾은 자존심이 파르테논 신전의 그것처럼 무너지고 신상들은 다시 강대국에 약탈당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물결치는 그리스 국기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전진한다'

지난 12일(현지시각) 아테네의 신타그마 광장에서는 그리스 국기를 몸에 두른 한 청년이 국회의사당을 향해 '정치인과 언론이 조국을 독일에 팔았기 때문에 그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 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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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로 그날 우연히 그 현장에 도착한 셈이다. 공항버스를 타고 숙소를 찾아 내린 '신타그마 광장' 앞에는 그리스 국기를 몸에 두른 한 청년이 온 몸에 비를 맞으며 국회의사당 건물을 향해 무엇인가를 계속 외치고 있었다. 독립전쟁 이후 내려온 전통인 그 유명한 의사당 앞 근위대 교대식을 보려고 우중에 나선 관광객들이 신기한 눈빛으로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전통의상을 입은 근위병과 의사당을 향해 피를 토하는 청년의 절규가 묘한 대비를 이루며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탓이다.

절묘한 장면이었다. 저 뒤편 아크로폴리스와 그 아래 아고라의 연단에서 2500년 전 저 청년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그렇게 외쳤을지도 모른다. 불과 15년 전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던 내게는 그것이 결코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잠시 비에 젖은 바닥에 앉아 물을 마시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가?'.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정치인과 언론이 조국을 독일에 팔았기 때문에 여기서 그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5시간 후 벌어진 엄청난 규모의 시위대 속에서 비슷한 주장을 다시 들었다. 국회의사당에서 EU가 제시한 구제금융 조건을 수용할 것인지 결정한다는 소식을 듣고 신타그마 광장 앞으로 몰려나온 수만 명의 시위대는 '트라키'(트리니티 - 여기서는 성 삼위일체가 아닌 EU·IMF·ECB를 가리킨다)를 외쳤고, 유로존 지도를 '나치' 문양으로 표현한 걸개그림을 들고 나온 한 할아버지는 그것이 '독일·미국·프랑스'를 표현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 청년의 1인시위를 뒤로하고 숙소에 여장을 푼 후 전통음식인 '수블라키' 한 조각을 사 들고 제우스신전과 파르테논, 아고라, 역사박물관, 아테네국립대학을 거쳐 숙소가 있는 신타그마 광장으로 다시 향하는데, 좀 전에 지나온 길들이 모두 폴리스라인에 의해 차단돼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시위진압경찰들로 가득했고, 통제선 안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군중들이 모여 있었다. 지나온 길 곳곳에 사람들이 군집해 있던 이유를 알게됐다.

그리스 국기의 물결,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우리는 전진한다'라는 의미의 플래카드와 '네오나치 물러가라'는 구호가 천지를 진동했다. 잠시 후 최루탄이 터졌다. 퇴로가 없었다. 80년대 우리가 경험했던 그 익숙한 장면이 내 눈앞에 다시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외신들이 전하는 다급한 목소리들과는 달리 경찰도 군중도 비교적 침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흥분한 군중들이 물병을 던지거나 진압경찰에게 야유를 퍼부었지만, 서로가 자제력을 잃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경찰은 광장의 군중을 밀어내려고 중심에서 외곽으로 최루탄을 터트리며 산개했고, 군중은 방독면과 마스크를 쓴 채 구호를 외치며 전진했지만 서로 간에 노골적인 폭력은 없었다.

하지만 골목길에서는 순간순간 균형이 무너졌다. 진압경찰이 시위대의 일부를 체포하자, 시위대 일부가 도로표지판을 빼들고 맞섰고 타일을 뽑아 깨트려 던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 멀리 어딘가에서는 불이 붙은 듯했지만, 멀리서 보이는 불길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무정부 상태와 같아... 대화가 없는 정부는 우리의 정부가 아니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 모인 대규모 시위대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 모인 대규모 시위대
ⓒ 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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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이 시작되었다. 이방인의 눈에 눈물이 났고 기침을 멈출 수 없었다. 가뜩이나 알레르기성 천식으로 고생하는 처지라 무조건 피하려 했지만, 최루탄 연기가 이방인만 피해갈리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골목으로 몰렸다. 솔직히 심각한 수준의 공포감을 느꼈다. 나를 동양의 외신기자로 여긴 한 그리스인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외국기자라면 당장 카메라를 감추라, 경찰이 카메라 든 외신기자를 가장 먼저 공격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황급히 카메라를 점퍼 속으로 감추고 그와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왜 그와 같이 그곳을 달려야 하는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단지 아테네에서의 내 숙소가 바로 그곳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도 모르는 상황 속에 휘말려 들어가고 만 것이다.

어렵사리 숙소를 찾아 들어가 샤워를 했지만 실내 공기는 여전히 매캐했다. 계속 눈물이 흘렀다. 창밖에 최루탄이 터지고 수만 명의 군중이 함성을 지르는데, 어디로 나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다급한 목소리로 중계되는 알아들을 수 없는 그리스어 뉴스만 보며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다시 거리로 나가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8기가짜리 메모리가 소진될 정도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동영상으로 담고 사진을 찍으면서, 이방인은 비로소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스어는 불가능하고 영어라고 그리 나을 것도 없었지만, 피차 이해하는데 별로 무리는 없었다. 눈빛, 함성, 표정이 놓쳐버린 언어의 고리를 연결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물었다. 시위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래서 무슨 주장을 하고 있는가, 만약 의회가 구제금융을 수용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럼 수용하지 않으면 대안이 있는가, 시민들은 책임이 없다고 여기는가? 그들의 대답은 이랬다.

"물론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대표로 뽑았고 그들은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거짓말을 했다. 유로화는 그리스에 필요한 일이고 국민들을 부유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 말에 동의했지만 거짓말이었다. EU는 네오나치나 다름 없다. 정치인들은 독일에 영혼을 팔았고. 우리는 그들과 언론에 속았다. 지금도 보라. 그들의 피와 우리의 피가 다르지 않은데, 왜 그들은 의사당 문을 닫고 자기들끼리 의사봉을 두드리는가. 이제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무정부 상태와 같다. 대화가 없는 정부는 우리의 정부가 아니다. 우리는 페이스북, 트위터, 인터넷으로 대화하며 자발적으로 모였다. 우리는 연대할 것이다."

이 연대라는 말은 시위대의 구호 속에도 계속 반복되었으며, 실제 시위대 속에는 지도부로 볼만한 어떤 조직이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 국기를 들고, 스스로 쓴 플래카드를 들고 나온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누구도 대안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분노와 절망을 외쳤지만, 이방인이 물어온 '대안이 무엇인가'라는 이 치명적인 질문만은 애써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고대의 무덤에서 '솔론'과 '페리클레스'를 불러내는 제의

시위대가 준비한 그리스 국기와 플래카드
 시위대가 준비한 그리스 국기와 플래카드
ⓒ 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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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바로 현대 그리스인들의 딜레마다. 구제금융을 포기하면 5일 이내에 국가부도에 직면하게 된다. 민간에 진 국가채무의 70%를 삭감하는 과정은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없고 그리스 국채는 차환발행될 수 없다. 그 다음은 은행이 문을 닫고 기업들은 연쇄부도에 빠지며, 공공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일자리가 증발하게 된다.

그리스의 디폴트는 다른 나라의 '디폴트'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유로존을 탈퇴하면 자국통화를 절하해 관광객이 늘 수는 있겠지만, 수출상품이 없는 그리스 경제는 즉시 붕괴된다. 특히 유사 이래 그리스 경제의 거대한 두 축 중 하나인 해운업은 파이낸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폴트를 맞은 그리스는 그야말로 무너진 신전만 남은 관광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그들이 과연 그것을 모르고 있을까? 그럼 그들의 시위는 무엇이 목적인가?

이방인의 눈에는 '우리가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은 듯했다. 나는 이미 그들의 눈빛에 드리워진 체념의 그림자를 읽었다. 시위를 통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해법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사회당과 중도우파 연정 중 20여 명이 반대했고 나머지 모두는 찬성의견을 내고 있다. 4명의 장관이 직을 던졌고, 진보정당 의원 몇 명이 반대하고 있지만, 의회통과는 기정사실이다. 또 그래야 한다. 우선은 살아남아야 다음의 기약이 있는 것이다. 그들 역시 그것을 알고 있다. 춥고 혹독한 시절, 터키 지배 하에 경험했던 고통처럼 아픈 날이 기다릴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거리에 나서 외치고 있다. '우리가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을 결코 잊지 말라는 경고의 함성인 셈이다. '도편추방'이라는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제도를 가지고 있었던 고대 그리스의 후예들이, 고대의 무덤 속에서 '솔론'과 '페리클레스'를 불러내는 제의에 가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시위는 계속되고 있지만, 좀 전에 지나온 번화한 거리의 한 켠에 자리 잡은 100년된 우조(그리스 전통술)바에는 그들과 동떨어진 표정의 사람들이 포도주와 우조잔을 부딪치며 건배하고 있었다. 또 그들의 바로 뒤에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 상징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가, 저 멀리 동쪽 언덕에는 독립운동의 상징인 성 기오르기스 교회가, 대로 좌측에는 제우스 신전이 각각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들의 운명은 과연 어찌될 것인가? 저 멀리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밤이다.


태그:#그리스, #시위, #아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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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으로 살아가면서 때로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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