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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주재 한국총영사관 앞에서 열린 '구럼비 바위 장례식' 모습.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국제 캠페인 '세이브 제주 아일랜드 뉴욕지부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제주와 평화를 사랑하는 교민, 미국 내 환경·평화운동가 등 20여 명이 참여했다.
 1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주재 한국총영사관 앞에서 열린 '구럼비 바위 장례식' 모습.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국제 캠페인 '세이브 제주 아일랜드 뉴욕지부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제주와 평화를 사랑하는 교민, 미국 내 환경·평화운동가 등 20여 명이 참여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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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독특한 모양으로 갈라져 있고 붉은 발을 가졌다. 말똥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붉은발말똥게로 불린다. 그 옆으로 짧은 주둥이에 초록색 몸통이 둥글고 통통한 맹꽁이가 있다. 민물새우의 일종인 제주새뱅이, 언뜻 보면 공처럼 생긴 기수갈고둥, 바닷가에 사는 풀 층층고랭이도 보인다. 이들은 모두 나무와 그물을 엮어 만든 상여 안에 뒤섞여 조용히 누워 있다.

검은 옷과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상여를 들고 뉴욕 총영사관 앞을 떠나, 유엔 빌딩을 향한다. 이어 낮고 느리게 흐르는 슬픈 노래가 그들의 뒤를 따른다.

"Save Jeju-island of peace~. No more bases in our seas~(제주도의 평화를 지켜주세요~ 우리 바다에 더 이상의 기지는 필요없어요~)"

1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주재 한국총영사관 앞에서 열린 '구럼비 바위 장례식' 모습이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국제 캠페인 '세이브 제주 아일랜드'(www.savejeju.org) 뉴욕지부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제주와 평화를 사랑하는 교민, 미국 내 환경·평화운동가 등 20여 명이 참여했다. 해군기지 건설을 막고 제주 강정마을과 구럼비 바위를 살리기 위한 노력이 국제적으로 번지고 있다.

이날 장례식을 치른 붉은발말똥게, 맹꽁이 등은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에 서식하고 있는 멸종 위기종이다. 구럼비 바위 자체는 유네스코에 지정됐거나 세계 자연유산은 아니지만, 강정마을 앞바다에서 범섬 인근까지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환경운동가들은 이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희귀생물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해왔다.

붉은발말똥게는 붉은 물감을 칠한 종이접시로 등껍질을, 플라스틱 포크와 수저로 다리를 만들었다. 제주새뱅이는 여러 개의 종이컵을 이어 붙였다. 이날 행사의 사회를 맡은 홍석종씨는 "구럼비 바위를 파괴할 경우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생물들이 모두 죽게 된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 이런 퍼포먼스를 준비했다"며 "행사를 촬영한 비디오를 강정마을 주민들에게도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제주 강정마을 살리기 운동 확산

뉴욕 주재 한국총영사관 앞에서 열린 '구럼비 바위 장례식' 뒤편으로 유엔 건물이 보인다.
 뉴욕 주재 한국총영사관 앞에서 열린 '구럼비 바위 장례식' 뒤편으로 유엔 건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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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활동가인 리디아 리프(80)씨 역시 "생태계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해군기지 공사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프씨는 "구럼비 바위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다양한 희귀생물들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며칠 전부터 발파가 시작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일이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제주 해군기지가 미군을 위한 기지라고 거듭 강조했다.

"매우 우려스럽다. 제주도는 매우 아름다운 섬이다. 우리는 2007년부터 이 문제를 알았고, 해군기지 건설을 막기 위해서 싸워왔지만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른다. 전 세계에 이 문제를 알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다른 나라에 있는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는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는 한국 해군기지라고 말하지만, 아니다. 그것은 분명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군의 해군기지다. 미군이 기지 건설의 핵심 기술 등을 모두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영국에 있는 기지도 사실은 미군 기지다."

리프씨는 특히 "개인적으로 책임감을 느껴서 이 자리에 참석했다"며 "강정마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우리(미국) 정부의 책임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리프씨와 함께 상여를 든 주데스 에커먼(70)씨도 "우리는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필요하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의 압력에 의해 추진되는)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한국 정부가 안 된다고 말하기를 원한다"며 "미군의 군사정책은 매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역시 평화운동가인 캠버 하인즈씨는 "강정마을 해군기지는 미국의 전쟁 게임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제도 아프가니스탄에서 13명이 죽은 것을 추모하는 행사에 다녀왔다"며 "더 이상 미국이 다른 나라 시민들을 괴롭히고 죽이는 것 때문에 우울한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국·유럽·아시아·호주 등에서 140여 개 평화단체들이 모여 만든 '세이브 제주 아일랜드'는 제주 강정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다양한 국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블로그 서비스를 하는 '텀블러' 사이트에 '밸런타인 포 제주(Valentines for Jeju)'를 개설한 뒤 '강정마을 살리기', '제주 해군기지 건설반대' 등을 주제로 한 사진과 동영상을 게재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들은 또 지난해부터 해군기지 설립 반대를 위해 '사인온(signon)', '아바즈(avaaz)' 사이트에서 서명을 받고 있다. 13일(현지시간) 현재 사이온에서 6791명, 아바즈에서 9514명 등 1만6000여 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미국·캐나다·영국·독일·스웨덴·덴마크·일본 등 세계 전역에서 서명에 동참하고 있으며, 약 30%의 해외 교민을 제외하면 나머지 약 70%는 외국인들이다. 특히 구럼비 발파가 시작된 지난 7일부터 최근까지 서명에 동참하는 추세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등 높은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1만6000여 명 서명 전달 시도... 한국총영사관, 접수 거부

13일 오후(현지시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위한 시위가 끝난 뒤, 평화활동가인 리디아 리프씨와 홍석종씨가 세계 각지에서 동참한 1만6000여 명의 서명 용지를 뉴욕 주재 한국총영사관측에 전달하려고 하고 있다.
 13일 오후(현지시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위한 시위가 끝난 뒤, 평화활동가인 리디아 리프씨와 홍석종씨가 세계 각지에서 동참한 1만6000여 명의 서명 용지를 뉴욕 주재 한국총영사관측에 전달하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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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 제주 아일랜드' 뉴욕지부는 이날 '구럼비 바위 장례식'이 끝난 뒤, 16000여 명의 서명용지를 뉴욕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전달하려고 했지만, 모르쇠로 일관한 총영사관에 의해 무산됐다. 홍석종씨와 리프씨가 서명용지를 들고 여러 차례 총영사관 문을 두드렸지만 굳게 잠긴 문 안쪽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한국총영사관의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제주 해군기지 반대 서명은 총영사관에서 접수하기에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총영사관 앞에서 낭독한 성명에서 "중국과 미국이 날이 갈수록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군사력을 키우며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군이 제주 해군기지를 사용하게 된다면 아름다운 섬 제주는 미중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또 "국가안보라는 미명아래 벌어지고 있는 해군기지 건설은 오히려 국가의 안위를 더욱 위태롭게 하는 것이기에 지금 당장 건설을 중단하는 것이 국가안보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국제 환경·평화운동가들뿐만 아니라 미국 내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의 '강정마을 살리기' 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 8일 사람사는 세상 지역연대(워싱턴·시애틀·샌프란시스코·엘에이), KIWA(한인노동상담소), 종교평화협의회 등 미주 종교·진보단체들은 '제주 해군기지 공사 중단과 평화적 해결을 위한 해외동포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국책사업을 허술하게 결정짓고,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정부의 일방적인 공권력에 심히 우려를 표한다"며 구럼비 바위 발파 강행을 즉각 중단하고,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드러난 의혹들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한편, 해군은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 7일부터 구럼비 폭파를 강행했다. 지난 13일에도 강정항 동쪽 100m 지점 구럼비 해안에서 육상 케이슨 제작장을 만들기 위한 발파를 4차례 진행했다.


태그:#강정마을, #구럼비바위, #제주해군기지, #붉은발말똥게, #SAVE JEJU-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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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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