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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막연히 도시로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20살이 되던 해 지낼 곳을 알아보지도 않은 상태로 대학교를 도시로 지원했다. 합격 발표가 나고 나니 그제서야 지내야 할 집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우선 급한 대로 학교에서 지하철로 1시간 10분 정도 거리에 사는 친척언니네 집에 얹혀살기로 했다.

드디어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처음으로 친척언니네 집을 가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혼자 살고 있는 언니의 집은 아파트도 빌라도 오피스텔도 아닌 반지하 방이 아닌가. 그것도 동네 제일 꼭대기에 있는 반지하 집이었다. 그래도 나는 처음 도시로 온 상황에 들떠 있었던 터라 반지하든 지하든 상관이 없었다.

햇빛이 보이지 않아, 핸드폰이 이상해

그렇게 반지하방에서의 나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집에서 학교는 지하철로 1시간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 준비하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적어도 2시간 30분 전엔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 지각을 자주 하게 되었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서 학교를 못 가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다. 그 이유인즉슨 집이 반지하이다 보니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서 그 어둠에 일어나지 못했던 것이었다. 결국 나는 자명종 시계를 사기에 이르렀고, 핸드폰 알람을 10개씩 맞춰놓고 자기도 했다.

자명종 시계 하나와 핸드폰 알람 10개에 의지하며 햇빛이 들지 않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점점 익숙해질 무렵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겨버렸다. 그것은 바로 핸드폰이었다. TV를 보며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의 목소리가 안 들리면서 통화가 저절로 끊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통화 도중에 끊기는 일들이 몇 번 반복되었다. 문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송중' 이라는 문구만 뜬 상태로 전송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핸드폰에 이상이 있는 줄 알고 그 길로 대리점을 찾아갔다. 그런데 대리점 측에서는 핸드폰엔 전혀 문제가 없다며, 집이 반지하라 잘 안 터지는 것일 수도 있다고 집에 가서 잘 보면 핸드폰 터지는 곳이 있을 거라고도 했다.

그때부터 나의 집 탐험은 시작되었다. '전송중' 문구가 뜬 핸드폰을 높이 들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문자가 전송되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장소, 그곳은 안타깝게도 현관문 바로 앞 신발장이었다. 그때부터 그곳은 나의 통화 장소, 문자 전송 장소가 되어 버렸다. 더 웃긴 건 언니와 나, 둘이서 쪼그려 앉아 통화와 문자를 한다는 것이다.

친척언니에게 햇빛도 안 들고 핸드폰도 안 터지는 반지하에서 계속 살 거냐고, 이사 안 가냐고 몇 번 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언니는 그랬다. 이 방도 싼 편은 아니고 이곳에선 언니가 원하는 비용에 마련할 수 있는 집은 이 정도라고. 언니도 이사를 가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턱없이 비싼 보증금과 월세에 선뜻 이사를 가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에서 방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월세에서 전세로 돌려달라고 몇 번 말씀하시기도 했다고 한다. 다달이 들어오는 돈이 아닌 큰 액수가 필요하신 거 같았다. 하지만 언니 입장에선 전세를 낼 만한 큰 액수가 없어서 여태 버텨왔지만 오래 못 버틸 거 같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언니네 집에서 얹혀산 지 3달 만에 다른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웃음 소리 TV 소리... 벽이 너무 얇은 거 아니니?

두 번째로 지내기로 한 곳은 학교와 연계되어 있는 원룸텔이었다. 처음 원룸텔에 이사를 왔을 때엔 방도 작고 아담하면서 화장실도 안에 있으니 마냥 좋았다. 무엇보다 혼자 산다는 생각에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원룸텔이라 그런지 옆 방의 TV 소리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벽에 귀를 바짝대고 있으면 대화소리까지 다 들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항상 벽에 귀를 대고 있는 건 아니라서 생활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았다.

한 달이 흐르고 두 달이 흘러서 혼자 사는 것에 조금씩 외로움을 느낄 무렵, 학교의 언니가 같은 원룸텔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언니와 나는 룸메이트나 다름 없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의 방을 드나들며 반찬을 나눠먹고, 공동 부엌에서 맛있는 것도 해먹고, 잠이 안 오는 밤이면 코미디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서로 웃기에 바빴다.

그날도 어김없이 잠이 안 오는 밤, 그 좁은 방에 모여 역시나 코미디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서로 웃고, 춤을 따라 추면서 같이 놀고 있었다. 한참 놀고 있는데 갑자기 벽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 TV에서만 보던 현상이었다. 너무 시끄러우니까 벽을 노크해서 조용히 좀 해달라는 무언의 경고. 우리는 그 소리를 듣고 입을 막으며 조용히 하자고 했다.

그런데 한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 벽을 노크 했던 옆 방에서 갑자기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럽다고 벽을 노크했던 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자 우리는 무슨 상황인가 싶어 약간 놀려주고 싶은 마음에 또 떠들고 웃고, 춤을 추고 놀기 바빴다. 그러자 옆 방에서 또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괘씸한 마음에 우리는 같이 그 벽에 같이 노크를 하기 시작했다. 무언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10분 동안의 싸움은 옆 방 사람이 우리 방에 찾아와 서로 화해함으로 싸움은 끝이 났다.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얼마나 떠드는지 무언의 싸움을 거는, 철없는 시절의 재미있는 생활이었다. 하지만 이곳도 다달이 내는 월세의 부담감을 떨칠 수는 없었다. 가스비와 전기세, 수도세가 포함되어 있는 월세는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엄마와의 상의 끝에 좀 더 낮은 가격의 집을 다시 알아보기로 했다.

먼 훗날 내가 살 집은 내 손으로!

그 다음으로 알아보고 이사를 한 집은 한 주택 건물에 4가구가 사는 다세대 주택의 옥탑방 이었다. 이곳은 도시에 있는 곳 치곤 가격 면에서는 상당히 싼 편이었다. TV와 세탁기 가스레인지까지 옵션으로 있으며 혼자 지내기엔 크기도 괜찮았다. 난 당장 계약을 했고 이 집에서 산 지 지금 1년이 갓 지나간다.

옥탑방이라 비가 오는 날이면 벽지에 곰팡이가 피고 바닥의 눅눅해져 기분이 좋지 않기는 하다. 하지만 친절하신 방 주인 식구들과 이웃들이 좋다. 자신의 아파트 옆 집엔 누가 사는지 모르는 요즘, 이곳은 건물들이 워낙에 작고 다들 오래 사신 분들이라 옆 집에 누가 사는지 아랫집엔 누가 사는지 아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래서 좋은 일이 있거나 맛있는 것이 생기면 서로 챙겨주고 나눠먹곤 한다.

그리고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해 월세도 괜찮은 편이라 선뜻 이사를 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집의 인테리어를 꾸미고 싶은데 내 집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하루 빨리 사회적으로 안정을 찾아서 제일 먼저 내가 꾸미면서 살고 싶은 내 집을 마련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응모글입니다.



태그:#도시소녀, #월세, #옥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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