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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춘천박물관 뜰과 산책로.
 국립춘천박물관 뜰과 산책로.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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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춘천박물관은 상당히 아름답다. 건물은 '2003년 올해의 우수 건축상'을 받았다. 주변 조경 또한 매우 조화롭게 꾸며져 있다. 야외 공연장과 산책로는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나들이하기 좋은 곳이다. 숲 속 정원을 거닐 듯, 아늑하고 호젓한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국립춘천박물관은 국립박물관치고 규모가 작은 편이다. 전시중인 유물도 그리 많지 않다. 성질이 조금 급한 사람은 한 시간도 안 돼, 금방 관람을 마치고 나올 수 있다. 속으로 '뭐 별 거 없네'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규모로만 박물관을 따질 필요 없다.

춘천박물관의 아름다운 나한상

바위 뒤에 숨어 얼굴을 빼꼼이 내밀고 있는 스님.
 바위 뒤에 숨어 얼굴을 빼꼼이 내밀고 있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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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밝은' 사람에게 국립춘천박물관은 빨리 관람을 끝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모든 박물관이 다 그렇겠지만, 국립춘천박물관에도 그곳에 가야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유물이 몇 점 있다. 당연히 사람들의 발길이 그 앞에서  멈춰 서게 마련이다. 그 유물들이 사람들의 시선은 물론, 그 마음까지 사로잡는다.

그 유물들 중의 하나가 2001년 영월군 창녕사터에서 발견된 나한상들이다. 소박하고 투박하며 질박한 것으로, 세상에 이처럼 아름다운 유물도 드물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은데, 자꾸 보게 되고, 보면 볼수록 또 정이 가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 나한상들이 대부분 살포시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 미소들처럼 푸근해 보이는 미소도 없다. 돌에 새긴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다.

'나한상들이 다 그렇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나한상들은 우리가 다른 곳에서 익히 보아온 나한상들과는 많이 다르다. 이 나한상들에는 같은 얼굴이 하나도 없다. 남녀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나이도 다 다르다. 모두 다, 다른 얼굴로 다른 표정을 하고 앉아 있다. 기쁜 표정이 있는가 하면 슬픈 표정이 있고, 밝은 표정이 있는가 하면 또 어두운 표정도 있다.

나한상은 상당히 높은 경지에 오른 불교 성자를 말한다. 그런데 이곳의 나한상들은 지극히 세속적이고 인간적이다. 굳이 '높은 경지'를 드러내 '이렇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정겹다. 나한상들의 모습이 마치 한 동네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다 놓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모두 다 내 이웃에 사는 사람인 듯, 낯익은 얼굴이다. 

창녕사터 나한상들
 창녕사터 나한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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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무언가 근심으로 가득 차 있는 아낙네도 있다. 마치 손자 재롱이라도 보는 듯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심술 궂어 보이는 남정네도 있다. 구도에 몰입한 듯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나이 든 스님이 있는가 하면, 바위 뒤에 숨어 무언가를 훔쳐보고 있는 듯한 젊은 스님도 있다.

이 나한상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나한상들을 조각한 각수는 예술적인 면에서나 종교적인 측면에서 모두 상당한 내공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돌로 만든 조각품에서, 사람들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게 쉽지 않다. 더군다나 나한상들의 얼굴에 평범한 얼굴을 새겨 넣을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창녕사터 나한상들.
 창녕사터 나한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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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상은 원래 불상과는 달리 특별한 양식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형태가 조금은 자유스러운 편이다. 그렇다 해도, 강원도의 나한상들이 더 특별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창녕사터에서 발굴된 나한상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 나한상들은 강원도를 상징하는 유물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이 나한상들은 '오백나한'의 일부다. 창녕사터에서 발견된 나한상은 국립춘천박물관에 전시중인 33인 외에도 300여 인이 더 있다. 엄청난 숫자다. 박물관에 전시중인 33인의 나한은 그나마 전체 형태가 온전한 상태로 발견돼, 전시가 가능했다. 나머지 300여 인은 대부분 부서지고 깨진 상태여서 그 형태가 완전하지 않다.

그 나한들이 모두 온전한 모습이었다면 어땠을까? 엄청난 광경을 보여 주었을 게 틀림없다. 33인만으로도 이토록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데, 오백나한은 또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이곳에서, 창녕사는 왜 이 같은 나한상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왜 이렇게 세속적인 얼굴을 한 나한상들이 필요했던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재밌다.

창녕사터 나한상들.
 창녕사터 나한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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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사터 나한상들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높이는 35~45cm 가량 되고, 폭은 25~30cm 가량 된다. 앞면은 얼굴 주름까지 비교적 세밀하게 조각했지만, 옆면이나 뒷면은 크게 손을 대지 않았다. 머리에 두건이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 특이한데, 이것은 고려 말이나 조선 전기 나한상들을 제작하던 전통적인 요소 중에 하나라고 한다.

진짜 '강원도의 얼굴'

국립춘천박물관에 가서 33인의 나한상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 나한상들은 결코 고급스럽지도 않고 세련되지도 않은 것이, 그 자체로 강원도를 대표할 만하다. 그러니까 이 나한상들에는 '강원도의 본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새겨져 있다. 춘천에 가거든, 한 번쯤은 꼭 국립춘천박물관에 들러볼 것을 권한다.

창녕사터 나한상들.
 창녕사터 나한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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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국립춘천박물관, #나한상, #창녕사터, #영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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