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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거리를 걷는 동안 여러 커플들을 지나쳤다. 다양한 국제커플들이 자유롭게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이런 풍경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외국인과 걷는다고 해서 이상하다는 듯 오랫동안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쳐다보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최소한 이곳에서만은 국제커플들이 눈치볼 일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사람들의 시선은 외국인과 같이 걷는 사람을 쫓곤 한다.

"나보고 양공주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애*과 민경
 애*과 민경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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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이랑 사귄다고 하면 다들 놀라죠. 근데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외국인인 거지, 외국인이라서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 아니잖아요?"

올해 초 민경(24, 가명)씨는 친한 친구 소개로 현재 남자친구를 만났다. 당시 이태원 M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가게로 친구를 초대했고 친구가 데려온 사람이 그의 현재 남자친구 애*(29)이었다.

6개월가량 현재 남자친구와 연애 중인 그는 "이처럼 다정한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매일매일 사랑받는 느낌을 받는다"며 여느 커플처럼 사랑에 푹 빠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민경씨는 "애*을 만난 후로 미안한 일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브라질에서 온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팔짱끼고 다니면 빤히 쳐다보고 가끔은 대놓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나보고 양공주라고 하든가 애*은 루저(패배자) 소리도 들었다."

루저라는 말에 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민경씨는 "애*과 연애를 시작한 뒤로 고향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못했다"며 불편한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들은 그를 만날 때마다 "외국인이랑 왜 만나냐? 브라질리안들은 문란하지 않냐? 외국인 취향이었냐?"며 곤란한 질문들 퍼부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 애*과 찍은 사진을 올렸다.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애*인건데 마치 내가 외국인이랑 만나고 싶어서 애*을 만나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말도 잘 통하고 무엇보다 나를 이렇게 많이 사랑해주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민경씨가 이렇게 답답함을 토로하자 남자친구인 애*이 어설픈 한국말로 "괜찮아 민경"이라며 그를 다독였다.

기자가 지켜본 두 커플은 서로를 많이 위해주는 듯 보였다.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줄 정도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대화 도중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는 애*의 눈빛에서 민경을 위하는 마음이 기자에게까지 전해졌다.

"왜 흑인을 좋아하냐?"

호주 시드니에 정착해 살고 있는 지혜(30)씨는 2년 전 이곳에서 만난 매튜씨와 행복한 결혼생활 중이다. 간호학을 전공하던 지혜씨는 유학생활 중 현재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8개월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그의 남편은 현지 태생의 호주인이다.

지혜씨는 얼마 전 지인과 술자리를 갖던 중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인이 "영주권은 나왔냐?"고 묻더니 "2년 임시비자 끝나고 영주권이 나왔으니까 이제 자유겠다"라고 그에게 이야기한 것이다.

지혜씨는 "황당했다"며 "교민이 많고 한인 사회가 좁아서 그런 이야기가 심심찮게 돌긴 하지만 내가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는 "내가 외국인이랑 결혼한 게 꼭 영주권 때문인 것처럼 보이니까 기분이 나빴다"며 "평소 친하게 지낸 몇 안 되는 한국인 친구였는데 그 뒤론 연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국인데도 한국인들의 불편한 시선이 느껴지면 기분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혜씨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신경 안 쓴다. 호주에 한국인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다들 남 사생활에 관심이 많아서 뒷말 만들어내는 걸 좋아해서 그렇다."

희은과 그의 흑인 남자친구
 희은과 그의 흑인 남자친구
ⓒ 희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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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은(27, 가명)씨는 한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기억했다. 내용인즉 남자친구가 흑인인데 가족들에게 어떻게 소개시키냐는 고민이었다. 요즘 그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그의 남자친구는 현재 주한미군으로 근무 중인 흑인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소개시켜야 할지 난감하다. 어른들은 흑인을 안 좋게 생각할 뿐더러 주한미군이라고 하면 놀라실 것 같다. 친구들에게 소개시켜 준 적이 있었는데 몇몇 친구들은 뒤에서 이상한 얘기를 했다. 흑인을 왜 좋아하냐? 얼마 전에 주한미군 사고치지 않았느냐? 혹시 걔네 아니냐? 흑인은 노예다. 심지어 나를 성적으로 밝히는 여자라 말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희은씨는 "한국에서 받는 그런 시선들이 부담스럽다"며 "차라리 미국에서 살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자친구도 그런 고민을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알고 있다"며 "한국말도 어느 정도 알아듣는데 내가 걱정할까봐 사람들이 나쁜 말을 하면 못 알아듣는 척한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남자친구는 왜 팔짱을 뺐을까?

수지(31)씨는 올해 초 파키스탄 국적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당시 음식점에서 서빙하던 수지씨는 요리사로 일하던 남자친구와 자연스럽게 연애를 시작했다. 일이 없는 날이면 함께 영화를 보거나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수지씨는 남자친구와 손을 잡고 걷거나 팔짱을 끼고 걷기를 좋아했다. 함께 걸을 때 수지씨가 팔짱을 끼면 그녀의 남자친구는 손을 슬쩍 빼거나 팔짱 끼기를 거부했다.

"처음엔 아직 이렇게 할 단계가 아니라서 그런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그 사람의 배려방식이었다. 외국인이랑 팔짱끼고 걸으면 사람들이 계속 쳐다보니까 내가 불편하지 말라고 팔짱을 빼는 거였다."

수지씨는 파키스탄 남자친구를 만날 당시 친한 친구 한 명에게만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친한 친구였는데도 그 친구의 반응이 좀 떨떠름했다"며 "더 못 사는 나라에서 온 파키스탄 남자여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왜 외국인을 만나냐?'라는 질문은 어쩌면 폭력적이다. 외국인이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뿐인데 인종과 국가에 따라 차별적 시선을 보내기 때문이다. 여전히 국제연애에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일은 한국사회가 '인권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 넘어야 할 걸림돌 중 하나다.

덧붙이는 글 | 이정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18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외국인 남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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