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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엄마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대요. 그러면서 영원한 건 없다고 그랬어요.'

둘째 딸 아이로부터 느닷없이 온 문자 내용이다. 어제 엄마랑 이야길 했다고 하면서 문자는 이어진다.

'아빠도 엄마 좋아하는 거죠? 애정표현 좀 해 주고 잘해주세요. 저는 우리 부모님은 다른 애들처럼 이혼하려 하지도 않고 서로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미칠 것 같았어. 우리 엄마 꼴 날까봐"

"여보, 다른 차량 지나가겠어." 3일 전, 주차를 하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재차 묻는다. 순간 짜증이 났다. 거친 음성으로 "어련히 알아서 안 할까봐, 정 그럴 거면 당신이 운전해!"라고 말했다. "별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화를 내? 다른 차량 통행에 방해 될까봐 걱정돼서 이야기 한 건데"아내 얼굴과 음색이 싸늘하다. 그날 이후 아내와 나 사이에 냉기류가 흘렀고 잠도 따로 자기 시작했다. 벌써 이상한 공기를 감지한 딸이 어제 엄마하고 이야기를 했고 그 내용을 문자로 보낸 것이다. 그래서 시작된 아내와의 인터뷰.

"난 계속 부모를 원망하며 살았어. 평생을 일하지 않는 아빠,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는 엄마. 용서할 수 없었지. 무능력한 아빠를.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게 산다고 생각했어" 아내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진다.

"가정폭력, 알콜중독, 도박으로 가족들을 괴롭힌 당신 아버지 이야길 듣고 놀랐어. 처참한 환경에서도 당신은 낙천적인 성격으로 밝게 자란 것에 놀랐고, 그 아버질 용서하고 받아들인 것에 대해 난 부끄러웠지. 그때 당신에 대한 연민이 싹 텄던 거 같아. 사랑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이 연민인 것 같아." 연애당시의 시절을 떠올려서 일까. 그늘졌던 아내 얼굴이 밝아지고 있었다.

"큰 딸 네 살, 작은 딸 두 살. 당신은 지역운동 한다면서 돈은 안 벌고 하고 싶은 일만 했지. 아이들 양육과 생계를 내가 책임져야 했어. 아이들 어린이집에 맡기고 찾아와야 했기에 늦게까지 일하는 직장은 피해야 했어. 그래서 한글교실 강사를 했지. 한 달 월급 80만원. 7시30분 어린이집 문 열자마자 딸 둘을 맡기고, 부랴부랴 출근하다 보면 가방 안에 우유병이 들어있고는 했어."

감정이 격해지는지 아내의 눈에 눈물이 일렁인다.

"부랴부랴 애들 찾으러 가면 어린이집에는 한 곳에만 불이 켜져 있었지. 다른 애들은 다 가고, 선생님 한 분과 우리 아이 둘만 있는 거야. 가서 보면 얘들이 신발만 만지작거리는 거야. 엄마는 언제 오나 하고. 아이들한테 너무 미안했지."

"그런데 당신은 지역운동 하던 선배 선거 돕는다고 새벽에 나가 새벽에 들어왔지. 당신이 너무 미웠어. 당신은 진보에 '진'짜도 꺼내지 말라고, 당신은 짝퉁 진보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당신에게 욕지거릴 했지. 어느덧 우리 부모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던 거야. 미칠 것 같았지. 우리 엄마 꼴 날까봐."

"엄마가 아빠를 '내 심장'이라고 저장했어"

"애정이 많이 식은 것 같아. 10년까지는 헌신적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당신이 변하기 시작했어.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시설에 취업하면서부터인 것 같아. 사회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서게 되고, 능력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외모도 달라지고. 두려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먼저 잘못했다고 손 내밀고 웬만한 일에도 허허거리던 모습이거든." 아내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오랜 백수 생활을 끝내고 당신은 노점상을 시작했지. 아이들하고 당신 놀라게 해주려고 빵을 사가지고 전화도 안하고 갔었지. 신호등 건너편에서 당신 모습을 봤는데 천막도 없이, 리어카 위에서 많은 양도 아니고 오징어 다리 몇 마리 놓고 팔고 있잖아. 여름이었는데 천막도 없이. 손님도 없고, 도시락을 먹고 있는 당신. 신호등을 사이에 두고 당신 뒷모습에 연애할 때 느꼈던 연민을 맛보았지. 그때 당신의 뒷모습을 떠올리면 저 사람은 나랑 평생 살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결혼 생활 16년을 살 수 있었던 힘이었던 거지." 듣고 있던 내 가슴도 뭉클했다. 아내한테 미안했다. 나에겐 연민이란 게 있을까?

"내가 다 쓴 학습지를 이정이한테 쓰게 하겠다고 엄마, 나, 이정이 셋이 같이 지우개로 지우고, 그것도 흔적이 남아서 종이를 오려서 그 위에 붙여서 썼잖아."

엄마와 이야길 듣고 있던 큰딸이 대화가 잘 되는 듯한  분위기를 틈타 엄마 역성을 든다.

"그때 아빠 보고 같이하자고 했는데, 아빠는 그거 뭐하는 짓이냐고 새 걸로 사라고 하면서 투덜거리기만 했지 도와주지 않았잖아. 지금도 그 기억이 날 때마다 엄마가 사랑스러워."

"맞아, 아빤 우리가 필요할 땐 항상 없었어. 언니, 나 어렸을 적에 돈이 없어서 천 기저귀 썼잖아. 심지어는 외출할 때까지도." 옆에 있던 둘째 딸도 덩달아 거든다. "엄만 아빠한테 애교도 잘 부리는데 아빤 너무 시크해." 큰딸이 동생을 보며 말한다. "맞아." 둘째 딸 맞장구를 들으며 아내가 방으로 슬쩍 자리를 뜬다.

"여보, 아직 인터뷰 안 끝났어" 당황한 목소리로 아내를 불렀다. "됐어, 거기까지만 해도. 나 힐링됐어." 부드러운 목소리다. 꽉 막혔던 하수구가 뻥 뚫리듯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빠, 엄마가 핸드폰에 아빠 이름 대신에 영원한 동지라고 했다."

둘째 딸 아이의 말에 나는 대답 대신 내 핸드폰에 아내 전화번호를 눌렀다. 액정화면에 '내 심장'이라고 뜬다. "어! 내 심장. 엄마 아빠가 핸드폰에 엄마를 내 심장이라고 저장했어" 하며, 엄마에게 달려간다.

세 여자와 나는 오늘 한 방에서 같이 잠을 잤다.

덧붙이는 글 | 가족인터뷰 응모글.



태그:#가족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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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세대에게 존경받는 노인이 되는게 꿈. 꿈을 실천하기 위해 노인들과 다양한 실험을 진행중인 남자. 세대간 연대를 위해 청년세대의 주거 안정, 생활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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