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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이 자명한 사실.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완강한 사실. 평화는 아이들이 앓지 않는 것이다. '강정 평화마음 동화'는 구럼비라는 우주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손바닥 동화이다. 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자주 잊은 일을 용서받기 바라는 글쓰기이다. - 기자 말

강정 평화마음 동화
 강정 평화마음 동화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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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관하는 방에는 어른들만 가셨다. 좀 이따가 아빠가 나를 데리러 오셨다.

"이제 입관인데 너도 외할머니 얼굴 뵐래?"
"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지금 안 보면 할머니 얼굴을 영원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서 머리를 빗고 갔다. 할머니는 삼베로 싸여 관 속에 누워 계셨다. 관과 할머니 사이에 흰 천이 채워졌다. 틈새에는 분홍색, 보라색 꽃들이 흰 국화와 함께 꽂혀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라고 성당에서 오신 어른이 말씀하셨다. 외삼촌부터 차례로 인사를 드렸다. 삼촌은 할머니 얼굴에 가만히 두 손을 대셨다. 외숙모는 작은 십자가를 가슴에 얹어드렸다. 할머니는 웃고 계셨다. 할머니 동생인 위미 하르방은 관을 붙들고 한참 우셨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할머니, 안녕히 가세요.'

위미 하르방의 손

어른들은 상복으로 옷을 갈아 입으셨다. 나는 한 곳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엄마는 무명으로 된 긴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머리에 헝겊으로 된 모자 같은 걸 썼다. 상복 입은 엄마는 불쌍해 보였다. 엄마가 친구들을 배웅하러 나가신 사이에 빈소에 앉아 울었다. 외숙모가 나를 안아주셨다.

"상규야, 울지 마라. 니가 울민 할망이 편히 못 가신다."

손님들이 계속 오셨다. 심심하고 힘들면 집에 가도 된다고 아빠가 말씀하셨다. 나는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기 때문에 심심하지 않았다. 오가는 손님들을 바라보고 어른들 이야기를 들었다.

위미 하르방은 선아누나와 나에게 할머니 이야기를 계속 하셨다. 하르방 옆에 있으면 술냄새가 훅훅 났다. 하르방은 이야기하다가 눈물이 나면 손가락이 두 개 없는 손으로 얼굴을 썩썩 문질렀다.   

"내가 열 살 때 4·3 나고 고아가 됐다. 아방 어멍 큰 성님이 내 보는 앞에서 총 맞아 죽어지고 나만 살았주게. 우리 집은 유복해서 누님도 제주 시내 족은아방(작은아버지) 집에서 고등여학교 댕겼지. 창졸간에 고아 됐는데 길을 몰라 누님 찾아가지 못했어. 나중 생각하니 누님도 어린애라 가봐야 소용없었지. 작은 성님이 목포에 있었지만 누게(누가) 챙겨 연락을 하겠능가."

'열 살에 고아?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릴 때였구나.'     

"이모 집에 얹혀 구박데기 됐져. 전쟁 후에 누님이 애기 데리고 표선 집에 와 살 때가 참말 좋았지. 우리 누님과 사는데 누구 눈치를 보겠나. 누님이 집집이 계란을 사모아서 그걸 모슬포 주둔한 군인들에게 팔았져. 계란 판 다음날은 그 돈으로 미녕(무명천)이영 농구화영 받아다 위미로 성산으로 다니며 팔지. 수건 크기는 좁쌀 한 되, 등지게(적삼) 한 감은 좁쌀 두 되씩이야."
"돈 안 받고 무사 좁쌀로 받았수꽈?"
"당시는 촌에 돈이 귀하지. 누님은 새벽에 일어나서 나하고 애기가 먹을 밥 해놓고 나갔다. 중문도 성산도 걸어다니멍 나 중학교 보낼 희망으로 신이 나서 일했는데 애기가 홍역으로 죽고…. 애기 죽고 나서는 아무 것도 못 했져. 애월 후취(사별 후 얻는 둘째 부인)살이도, 나로 인해 간 거라."

흰 상복을 입은 선아누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휴대전화에 하르방의 이야기를 메모했다.  

"그런데 왜 같이 안 살암수꽈?"
"씨어멍(시어머니)이 인색하고 매형은 술만 먹언. 나로 인해 누님이 숨도 크게 못 쉬고 사는 거를 어찌 보고 사나. 나이 열여섯 살이나 되었는데 답답해 못 살켜. 누님이나 맘 편히 살라고 학교 1년 다니다 치우고 열일곱 살에 배 타러 갔지. 이 손 봐라. 먼바다로 일 나갔다가 손가락이 날아갔거든."

북양으로 가는 배를 탔는데, 북양은 춥고 물길도 사나운 큰 바다. 여러 사람이 사고로 죽어도 어쩔 수 없는 먼 곳이라고 하셨다. 손가락이 잘리는 정도는 '소망일었져(재수 좋았다)'라고 하실 때는 내 마음이 졸아들었다.

"손을 싸매고 주저앉는데 맨 먼저 누님 생각이 났져. 누님이 알면 어찌하나 하고. 애월 떠날 때 누님이 부모님 식게(제사)하고 명질(명절)에는 꼭 와라 했져. 그런데 누님한테 이거 안 뵈려고 스무 살 무렵에 3년이나 누님을 피해 다녔다. 내 생일에 누님이 위미까지 왔어도 안 봤다."

선아누나가 얼굴을 무릎에 묻고 울었다. 하르방이 이야기를 할수록 누나는 더 많이 울 것 같았다. 나는 얼굴에 주름이 굵게 지고 손가락이 두 개나 없는 위미 하르방이 처음처럼 낯설지 않았다.

"저게 가 한라산(소주 이름) 한 병 가져오라."

심부름을 시키셔도 귀찮지 않았다. 우리 외할머니가 사랑한 동생이고 우리 엄마의 외삼촌이니까. 내가 몰랐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커다란 책 같은 하르방이니까. 하르방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할머니가 주고 가신 선물

"너 이름이 무어냐?"
"상규마씸. 현상규요."
"몇 학년인고?"
"5학년요."
"아, 진숙이가 현씨 집으로 시집을 갔구나이. 현씨 집안에 훌륭헌 사람이 많다. 너도 공부 열심히 해서 큰사람 되크라. 5학년이면 어른 속 가진 나이라. 하르방이 공부 안 해서 무식한데 아는 문자는 몇 개 있다. 들어볼래?"
"네."
"제주 화북 거리에 김씨 집안 아들이 있엄쪄. 삼형제가 다 공부를 잘 하였는데 그중 샛아들(둘째 아들)이 으뜸이라이. 급제하여 나중에 제주 판관이 되었단 말이야. 제주 판관이 되었어도 겸손한 사람이야. 글을 잘 하였지만 제주 목사(도지사)가 글을 지어 보여주면 '제가 뭘 압니까' 하고 판단을 하지 않았거든."
"판단을 안 하는 게 겸손한 거마씸?"
"엣끼! 이넘, 헛헛헛. 윗사람 글을 보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제 잘난 숭내(흉내) 내는 거를 옛날에는 건방지다 했거든. 그런데 한번은 목사는 명월로, 판관은 세화로 순력을 돌게 됐단 말이야. 순력이라는 게 무어냐면, 그렇지 순찰을 도는 거야. 고을 백성들이 어찌 사나하고 말이지. 너 명월진성 아나?"
"명월진성요? 모르겠수다."
"학교에서 머 햄시냐? 5학년이 되었는데 우리 섬 안에 지명도 모르나 핫핫핫. 명월진성은 말이야. 나한테 참 추억이 깊은 데다. 내가 2년 만에 북양 배 내려 제주항 딱 서니 그래도 발길이 누님 계시는 애월로 갔지. 지나가던 도라꾸(트럭) 얻어타고 구엄리 앞에 내렸는데, 차마 이 손 해가지고 집에 못 들어갔다. 먼문(대문)만 보고 한림까지 막 걸었져. 한 마을로 들어가니 오래 된 석성이 있엄져. 쓸쓸하니, 그 성도 의지 없는 나 닮안, 거기 앉아 해지도록 바다만 봤지. 지긋지긋하게 살다온 바다를 말이야. 그 명월리 폭낭(팽나무)들 참 든든하더라. 얼굴도 잊어버린 우리 아방 닮안."
"하르방, 목사하고 판관이 순력 도는 일 고라줍서(말해주세요)"
"아, 핫핫 그렇구나. 이야기가 딴 데로 샜주게. 옳다, 그초록(그렇게) 궁금하면 귀 잘 열고 들으라. 옛날에는 순력을 돌고 오면 그 본 바를 시로 적어서 보고하게 되었단 말이야. 목사가 먼저 읊었지."

나는 하르방 앞에 바짝 앉아 하르방 입만 바라봤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마음이 금착금착(두근두근)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위미 하르방은 하영 중독성 있는 이야기꾼이라.'

"'명월포변에 월일륜이라.(明月浦邊 月一輪)' 명월리 포구에 달 하나 장대하더라 이거야. 목사 자신을 명월리 내려다보는 큰 달로 비교한 거. 백성을 내려다보는 으쓱한 기분이 담긴 거렌. 김판관도 화답했주게. '세화촌리에 화천점이라(細花村里 花千點).' 세화마을에 천 송이 꽃이 살더라는 거야. 세화 촌민을 다 꽃으로 어여쁘게 본 마음이지. 목사도 글속을 아는 사람이라 제 엉덩이를 치며 '그렇구나! 내가 이 사람을 일찍이 친구 삼지 못한 것이 한이다' 했다는 거야."
"와- 하르방 캡짱마씸."
"캡짱이 머이라?"
"최고라마씸."
"이 강생이 보라. 영민하다. 말귀를 알아듣는구나이."
"하르방 그런데 목사가 왜 자기 엉덩이를 쳤수꽈?"
"좀지롱혼(자그마한) 놈이 하영 꼼꼼하다이. 나도 어른들께 그리 들었다. 앉으멍 물팍(무릎)을 치고 서서 읊으멍 엉덩이를 치는 모양이라 핫핫."

옆에 와서 이야기를 듣던 아빠도 하르방 얼굴을 보며 빙그레 웃으셨다. 외할머니는 우리를 슬프게도 하셨지만, 처음 만나는 친척들끼리 이야기하고 마주보며 웃는 선물도 주고 가셨다.

친척 어른들 오신 자리로 아빠가 하르방을 모셔갔다. 선아누나는 하르방이 가르쳐 준 시를 휴대전화에 한자로 메모했다가 나에게 다시 설명해주었다.  
     
빈소 입구가 수런수런했다. 우리 마을 삼촌들이 몬딱 오셨다. 혜선 쌤도 오셨다.


태그:#명월진성, #세화, #4.3, #한라산, #모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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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2000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이발소그림처럼> 공동저서 <그대, 강정>.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2011 거창평화인권문학상

** 월간 작은책에 이동슈의 삼삼한 삶 연재중.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터넷신문 '마인드포스트'에 만평 연재중. 레알로망캐리커처(찐멋인물풍자화),현장크로키. 캐릭터,만화만평,만화교육 중. *문화노동경제에 관심. 또한 현장속 살아있는 창작활동을 위해 '부르면 달려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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