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7.6.5 전쟁을 아시나요? 밀양 할매, 할배들이 지팡이 들고 뛰어든 싸움터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10월 1일부터 밀양 765KV 송전탑 공사를 다시 시작하면서 싸움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대학가 등 전국 곳곳에 '안녕 대자보'가 나붙는 하수상한 박근혜 정부 1년,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은 시민기자와 상근 기자로 현장 리포트팀을 구성해 안녕치 못한, 아니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밀양의 생생한 육성과 현장 상황을 1주일여에 걸쳐 기획 보도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덕촌 할매와 현풍 댁이 지팡이로 송전탑 건설 자재를 실어나르는 헬기를 가리키고 있다.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두-두-두-두-두-.

5분여마다 헬기는 거친 굉음을 냈다. 그때마다 눈 쌓인 화악산 나무들은 몸서리를 쳤다.
  
"저 놈을 때려 뽀사야 하는데. 저 놈만 보면 내 허파가 뒤집힌다니께!"

덕촌 할매(78, 손희경)는 주름진 입을 앙다물었다. 잠시 숨을 토해낸 뒤 두 손으로 총 쏘는 흉내를 내면서 말을 이었다.

"오죽했으면 땅-땅-땅- 쏘고 싶다니까. 저 놈이 작대기 같은 걸 싣고 가면 '126번 기둥을 세우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어. 그물에 뭉툭한 걸 싣고 가면 '아이고 저 놈들이 세면(시멘트)을 싣고 가나?' 온갖 상상을 다 해.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일 저래."

밀양 부북면 위양리 127번 송전탑 건설 예정지에는 6~7평 크기의 움막이 서 있다. 움막 입구에는 큰 구덩이를 팠다. 관 한 개가 들어갈 수 있는 직사각형 묏자리다. 여기서 죽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람들은 그곳을 1번 초소라고 불렀다. 송전탑 건설 예정지에 초소를 세운 곳은 밀양에서도 이곳뿐이다. 지난 5월 할매들이 똥물을 뿌리고 웃통을 벗으면서 몸부림 쳤던 곳이다.  

지난 20일 찾아간 1번 초소 '당번병'은 덕촌 할매. 17살에 시집와서 허리가 구부러질 정도로 농사를 지으며 4남매를 키웠단다. 자글자글한 주름에 뿔테 안경 속에서 웃는 서글서글한 눈동자. 여느 시골 할머니와 같다. 그런 덕촌 할매가 목숨 걸고 싸움에 나선 이야기를 들으려고 지난 20일 밀양의 화악산으로 향했다. 

# [늙은 초병] 해발 500미터, 1번 초소 가는 길

 화악산 송전탑 반대 1번 초소를 지키는 '동동이'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눈이 내렸다. 위양리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경찰버스 3대가 서 있다. 시골 마을에 감도는 전운. 보기 드문 모습이다. 승용차로 구불구불한 논두렁길을 5분여 동안 달렸더니 가파른 산길이 나왔다. 그 길로 2~3분 비탈길을 오르자, 비닐하우스로 만든 장동 움막 안에서 한 할매가 문을 활짝 열고 내다본다. 전날, 밀양 대책위 활동가와 함께 방문했을 때 취재진과 삶은 감자를 나눠 먹은 할매다.

"안녕하세요. 어제 왔던 기잡니다. 저기 올라갔다가 내려올게요."
"응. 갔다 와."

이 움막 문 바로 앞에는 새끼손가락 굵기만 한 하얀 나일론 줄이 놓여 있다. 이 줄은 바로 건너편 소나무 허리에 묶여 있다. 움막 안에서 할매들이 줄을 팽팽하게 당기면 차를 가로막을 수 있는 일종의 바리케이드다. 사실 차를 막기에는 턱없이 약한 줄이었지만, 할매들의 의지가 읽혔다.

내비게이션에도 뜨지 않는 비포장 비탈길. 10만인클럽 밀양리포트 취재 차량은 이날 화악산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차다. 전날 밤 소복하게 쌓인 눈길을 따라 우리보다 앞서 고라니 한 마리가 지나갔나보다. 길을 따라 발자국이 선명하다. 10여 분을 올랐더니, 귀가 먹먹했다. 잠시 뒤 또 다른 움막이 나왔다. 할배들의 숙소인 2번 초소다. 위쪽으로 올려보니 9부 능선 쪽으로 1번 초소가 보인다. 차에서 내려 싸리비로 눈을 쓸어놓은 가파른 비탈길을 또 올랐다.  
 
"컹- 컹- 컹-."

1번 초소가 가까워오자 멀리서 흰 개가 낯선 발자국 소리를 먼저 알아듣고 마구 짖는다. 이 녀석 이름은 동동이다. 할매들과 함께 해발 500미터 고지를 지키는 말 못하는 초병이다. 

# [두 아들의 눈물]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뿌려라!

 덕촌 할매가 1번 초소 앞에 판 구덩이를 가리키고 있다.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제1초소 움막의 겉 비닐을 열자 큰 구덩이가 나왔다. 철재 구조물 다리를 건너야 움막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전깃불을 켜지 않아 침침했지만 움막 안은 따뜻했다. 한전이 송전탑 터를 닦으려고 벌목한 나무가 화덕난로 안에서 벌겋게 타고 있다.

휙 둘러보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할매들의 '최종 병기'. 은색의 쇠사슬 7개가 비닐하우스 철근 파이프에 묶여 있다. 경찰이 이곳을 진압할 경우 지팡이를 든 할매, 할배들이 목에 걸고 마지막까지 발버둥을 칠 무기다. 잠시 끔찍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움막 안에는 종교단체 등이 보내준 지원품이 쌓여 있다. 라면과 김, 쌀, 그리고 밥통과 옷가지들. 외부와 고립돼도 한 달 동안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밀양리포트팀을 반갑게 맞은 덕촌 할매와 현풍댁(67) 등은 5일 전에 이곳에 교대인력으로 들어왔단다. 2~3일 뒤에는 저 아래 장동 움막을 지키는 다른 할매들이 1번 초소로 들어온다고 한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뿌려라!"

할매는 얼마 전에 찾아온 큰아들을 단칼에 뿌리쳤단다. 밀양에 사는 큰아들은 "이제 제발 산에서 내려오소, 자식 가슴에 대못을 치고 가려고 합니까?"라고 말하면서 울먹였다고 한다. 강원도에서 뒤늦게 달려온 작은아들도 다른 할매들도 보는 앞에서 마냥 눈물을 흘렸으나,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내, 그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통장은 어디 여놨고, 1년 동안 쓸 돈은 아무데에 있다. 그것만 알아라. 경찰 3천 명이 들어오면 그 자리에서 죽을 끼다. 그때도 오지 마라. 경찰이든 누구든 나를 끌어낼 끼다. 아버지 옆에 묻지 말고 화장해서 산소 위에 뿌려라."

유언이다. 큰아들이 찾아왔던 건 경찰 측의 성의(?) 때문이라고 한다. 덕촌 할매는 "9월에 국무총리가 이곳에 왔을 때 앞쪽에 여름 양말을 신고 여름옷을 입고 앉아 있었는데, 경찰이 내 사진을 찍었나(채증) 보다"면서 "경찰 쪽 관계자가 밀양에 사는 아들에게 찾아가서 '할매 옷 좀 사드려라'라고 말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밀양경찰서 측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으나, 아직 답변을 듣지 못했다.  

# [난생 처음 찾아간 경찰서] 할매, 구덩이는 왜 팠어요?

 덕촌 할매와 현풍 댁이 취재진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덕촌 할매는 처음에는 밀양경찰서의 소환통지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체포해간다는 소식을 듣고 변호사와 상의해서 지난 11월 18일 조사를 받았다. 한전 업무방해 혐의란다. 할매는 당시 조사 상황과 경찰서에서의 대화 내용을 질의응답 식으로 취재진에게 소개했다.

"경찰관이 '할매, 구덩이는 왜 팠어요?'라고 묻더라. 그래서 '내 죽을 무덤이다. 대관절 날 왜 불렀노? 경찰 놈이 고발하드나, 아니면 한전 놈이 하드나?'라고 따졌지. 그랬더니 '한전 감사가 업무방해 혐의라면서 한전 직원이 그곳에 일하러 갔는데, 작대기로 배를 쑤시고, 돌을 던져서 일을 못했다고 합니더'라고 말해뿔더라. 그리고 한전 직원이 찍은 (채증) 사진을 보여줬다.

그 사진을 보면서 경찰에게 말했다. '내가 지팡이를 두 손으로 들고 있지? 맞나? 내가 뭔 힘이 있다고 돌멩이를 던지고 작대기로 배를 쑤시나?"라고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 경찰이 '할매, 위양 주민 대표가 누구지요?'라고 묻더라. 그래서 '내다. 너그 집에 보물이 한 뭉테기 있다 치자. 강도가 칼 들고 들어오면 돈을 그냥 내주것나? 나도 너와 똑같은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이 또 나한테 '이제부터 (1번 초소) 올라가면 할머니 가둡니다'라고 말하길래 '지금 가둬라. 안 그러면 또 산에 올라간다. 지금 날 가둬!'라고 말했다."

하지만 밀양경찰서 관계자는 "조사 때 변호사가 입회하고 있었기에 '할머니를 가둔다'는 민감한 말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면서 "조사 내용으로 봤을 때 '구덩이를 누가 팠는지'를 질문할 이유가 없고, 담당 부서에 직접 물어보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면서 덕촌 할매의 주장을 부인했다.  

어쨌든 밀양경찰서는 바쁘다. 지난 두 달 동안 송전탑 반대 운동과 관련해 소환한 주민은 73명에 달한다. 이들에게 적용한 혐의는 업무방해, 도로교통법위반, 공무집행방해 등이다. 밀양 할매, 할배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과 한전 직원들을 꼬집고 지팡이로 때리고, 멱살을 잡았다는 내용들이다.

경찰은 고소고발이 들어왔기에 수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 측은 '반대주민 압박용'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평생 경찰서를 들락거린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할배들의 압박감은 더 커 보였다. 

# [시아버지와의 약속] 아버님예, 오늘 전투 갑니다

 지난 이야기를 하는 덕촌 할매.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할매는 17세 때 위양마을로 시집을 왔다. 화악산 기슭의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 할배는 30여 년 전에 세상을 등졌지만, 살아계셨을 때에는 50마지기 벼농사를 짓는 부농이었다고 한다. 자식들도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잘 컸단다. 

"이제 자식들 공부도 다 시켰고 출가했으니, 논만 떼어주면 된다고 생각해서 텃밭 키우며 살았제. 근데 이게 무신 일이고? 난, 하늘만큼 땅만큼 돈(보상) 줘도 소용없다." 

할매는 주름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여긴 우리 조상들이 묻혀 있는 산이라. 500년 됐다 안 카나. 나는 8대째다. 그러니 내가 비낄 수가 없다. 대대로 조상들이 파묻힌 자리를 버려뿔 수 없다.

시아버님이 80살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넉 달 전에 물 한 그릇을 떠서 오라면서 우리 내외를 부르셨다. 시집온 지 5년 정도 됐을 때였나. 내가 뭔 잘못을 했는지 몰라서, 무릎 꿇고 무조건 빌려고 했다. 근데 그게 아니었던 기라. 우리 할배(남편)는 5형제 중에 막내였는데, 시아버지는 우리를 불러서 '너 밖에 줄 데가 없다. 내 짐을 두고 간다. 고향을 지켜라'라고 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아버님 뜻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기라.

우리 할배가 시아버지 방을 나와서 '네가 뭔디 그렇게 대답했노'라고 나무라더라. 그래서 '당신 아버지지 내 아버지가'라고 되물으면서 '난 여길 지킬 끼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손재주가 좋은 할배가 '부산에 가서 일하겠다'고 말했을 때도 '혼자 가라. 난 죽어도 할아버지 말씀 거역 못한다. 땅도 못 판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할배는 못 가더라.(웃음)"

시아버지가 대물림한 토지가 대단했던 것은 아니었다. 고작 2마지기였단다. 하지만 두 내외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50마지기로 늘렸다.

"지금도 죽고 싶은 맴뿐이다. 지금 죽으면 시아버님이 왜 고향 땅 못 지켰냐고 타박을 줄 낀데. 방에 시아버님 사진을 걸어놓고 매일 속으로 말한다. '아버님예, 오늘 전투 갑니다'. 전투 갔다 온 뒤에도 방에 들어가서 말한다. '아버님예, 오늘 전투 잘하고 왔심더'. 어떤 때는 '아버님 예, 너무 힘듭니다'라고 말하면서 실컷 운다."

할매 눈시울이 젖었다.

# [화악산에 남은 할매] "국민들캉 좋게 살아야 하는 긴데..."

 덕촌 할매가 쇠사슬을 목에 묶고 "여기서 죽을 끼다"라고 외치고 있다.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한참 전에 한전 직원이 할매한테 이렇게 물었단다.

"할머니, 얼마면 되겠습니까?"

할매는 "보상도 필요없다"면서 대꾸했다고 한다.

"당신 어머니 사는 고향에 철탑 세울 수 있겠나? 무례한 소리지?(예). 그건 무례하고 이건 무례하지 않나? 정 그러면 100억 원 주라. 아니면 이 산천을 폭 떠서 좋은 곳에 앉혀줄래?"

할매는 한숨을 푹 쉰 뒤 말을 이었다.

"내 죽는 자리는 여기밖에 없다. 저 놈들이 들어오면 목에 감아서 안 끌려가려고 이걸(쇠사슬을 가리키며) 준비했다. 여기 세운다면 사람 많이 죽을 끼다. 박근혜가 들어설 때 할매, 할배들 눈물 흘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잖나. 국민들이 화합하게 한다고 했는데, 늙은이들 죽이고 눈물 흘리게 하고 있다. 국민들캉 좋게 살아야 하는 긴데, 어떻게 사나?

6·25 때는 우리나라 빼앗기지 않으려고 싸웠다 아니가? 인자는 내 죽는 거만 안 아프면서 죽어야지 이 걱정밖에 없었는데 한전은 우리나라 국민들을 죽이려고 안 카나. 경찰도 그렇고. 여기서 벌써 두 사람이나 죽지 않았나."

가만히 듣고 있던 '현풍댁'도 말을 보탰다.

"박근혜가 아버지보다 더 독하단다. 얼마나 더 희생을 해야만 하나. 밀양시청은 거리 곳곳에 '살기 좋은 밀양, 기업하기 좋은 밀양'이라고 써 붙였다. 그걸 볼 때마다 구역질난다."

2시간 동안 1번 초소에서 인터뷰한 뒤 자리를 뜨려하자 할매는 기자들을 꼭 껴안았다. 할매의 젖은 눈동자는 '다시, 너희들을 만날 수 있을까?'라고 간절하게 묻고 있었다. 2번 초소로 내려와 차에 올라탔더니 수북하게 쌓였던 눈이 그새 녹기 시작했다. 할매의 언 가슴은 언제 녹을까? 

화악산에서 내려오는 길. 헬기 소리는 1번 초소를 에워싼 산을 쩌렁쩌렁 흔들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밀양리포트팀 : 김종술, 조정훈, 소중한, 김병기 기자



태그:#밀양 송전탑, #10만인클럽, #밀양리포트
댓글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