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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원에서 출산을 결심한 후, 그곳의 환경에 익숙해지려고 조산원에서 열리는 체조교실에 등록했다. 체조를 지도해주는 조산사 선생님은 최근 자연출산으로 아기를 만났다. 그래서 산모에게 무리가 되지 않을 정도의 근력운동과 호흡, 출산할 때 필요한 자세 등을 알려준다. 특히, 허벅지와 배에 근력이 있어야 아기 낳을 힘을 적절히 줄 수 있단다.

최근 만난 친구가 "결혼 전보다 몸이 더 좋아진 거 아니야?" 한다. 하긴, 일주일에 네 번은 한 시간씩 운동하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고, 건강에 좋지 않은 것들은 안 먹으니까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 몸뚱이 하나만을 위한다면 이렇게 애쓸 필요가 없지만 내 안의 새 생명을 위한 일이다 보니 전보다 조심하게 된다. 또 운동으로 골반을 벌려주고 근력을 키워놔야 우리 홈런이(우리 아기 태명)가 세상에 나올 때 홈런이도 나도 덜 힘들 것이다.

조산원에서 운동을 마치면 딱 점심시간, 산모들이 식사하러 나온다. 그런데 그들을 보면 어제 출산한 사람이 맞나 싶다. 출산 때 힘을 주느라 얼굴과 눈의 핏줄이 다 터졌다든가, 회음부 절개로 바닥에 앉는 것이나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악몽이었다며 출산 후를 회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산원에서 어제 출산했다는 엄마들은 방에서 나와 강당 바닥에 방석하나 깔고 앉아 말끔한 얼굴로 밥술을 뜬다.

자연출산으로 아기 낳기, 무섭지 않냐 물었더니...

자연출산을 꿈꾸다가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엄마가 울면서 휴대폰으로 일기를 7페이지나 썼다고 했다. 끝까지 자연출산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모습이 안타까웠다. 의사의 말 중 아이를 '꺼내야한다'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 출산 일기 자연출산을 꿈꾸다가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엄마가 울면서 휴대폰으로 일기를 7페이지나 썼다고 했다. 끝까지 자연출산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모습이 안타까웠다. 의사의 말 중 아이를 '꺼내야한다'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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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조산원 출산을 준비하는 예비 엄마 세 명이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때 한 아빠가 퇴원준비를 하느라 조산원 강당을 왔다 갔다 했다. 조산사 선생님이 우리에게 저 두 부부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지 않겠냐고 했다. 우리는 좋다고 했고 예비엄마 셋과 조산사 선생님, 그리고 어제 출산한 두 부부가 마주앉았다.

우리와 마주앉은 두 부부는 참 편안해 보였다. 조산사 선생님 품에 안겨있는 아가도 편안한 얼굴로 곤히 자고 있었다.

"궁금한 거 한 번 물어보세요."
조산사 선생님이 말문을 터주셨다. 난 조금 부끄러워서 웃고만 있었고 옆 엄마가 먼저 질문을 했다.

"진통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저는 진통이 너무 무서워서 아기 안 가지려고 했었거든요."

"많이 힘들고 아프죠. 그런데 아기 보니까 다 잊히더라고요. 아기도 많이 힘들었을 거고요. 오랜 시간 동안 힘들게 낳았고 아기도 어렵게 나왔는데 조산사 선생님들이 차분하게 잘 인도해 줘서 선생님들 믿고 끝까지 힘냈어요."

옆에 있던 조산사 선생님이 질문 했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남편들이 부인의 출산장면을 보면 여자에 대한 환상이 깨진다거나 여자로서의 매력이 덜 느껴진다는 그런 얘기들 하는데 남편 분은 그 부분이 걱정되지는 않으셨어요?"

"저도 그런 얘기 듣고 조금 걱정하긴 했어요. 그런데 막상 아기가 나오는 걸 볼 때는 내 아기, 우리 아기가 나온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죠. 오히려 출산장면을 다 보면서 아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니까 아내와 아기가 더 소중하다고 느껴졌어요."

나는 지난번 출산 장면을 보여주는 영상에서 아빠가 흐느껴 울던 장면이 기억나서, "울지는 않으셨어요?" 하고 물으니까

"울었어요. 그런데 감동의 눈물이라기보다는 아내가 힘들어하는데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눈물이 나왔던 것 같아요. 조금만 더 힘주면 아기가 나올 것 같은데 아내가 너무 힘들어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아무것도 해줄 수도 없었고요."

나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내가 진통으로 힘들어할 때 옆에서 같이 힘들어 할 우리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직접 출산을 겪은 두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니 자연출산을 결심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가 아닌 남편과 함께 출산을 경험하고 아기를 함께 맞이하면서 출산과 육아 과정에서 아빠가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 결국 한 가족 모두가 출산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자연출산의 큰 매력이지 않을까.

자연출산을 다음으로 미뤄야 했던 사람들

조산원에서 마주치는 자연출산에 성공한 엄마들을 보면서 한편으론 마음이 아프다. 지난 번 '열린 조산원'에서 자연출산 하자고 함께 마음먹었던 두 엄마가 모두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엄마는 아기가 머리를 아래로 돌리질 않았다. 역아인 채로 자연출산이 어려워 제왕절개 수술로 아기를 만났다.

다른 엄마는 병원에서 한 달 동안 아기 몸무게가 늘지 않았다며 당장 입원해서 유도분만을 권했단다. 그런데 입원한 다음날 자연 진통이 와버렸고 12시간 진통하다가 진행이 더 되지 않아 수술했다. 며칠 전 산후조리원에 면회 가서 이 엄마와 얘기하다가 결국 눈물이 나고 말았다. 자연출산을 성공하려고 열심히 운동도 하고 공부도 했는데 최악의 시나리오 대로 아기를 만나버린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버린 입원수속이나 배려 없는 내진 때문에 울었다는 이야기, 입원과 동시에 환자가 되어버렸고 병원에서는 남편에게 최악의 상황만을 전해 남편이 혼자 속앓이 했더라는 이야기, 수술할 때 어느새 정신을 놓아 버렸고 깨어보니 모든 처치가 되어있더라는 이야기를 하며 그 엄마도 나도 속상해 했다. 이상적인 출산만을 꿈꾸고 있던 그 엄마는 '나'는 사라지고 '병원의 매뉴얼'만 있는 출산을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둘 다 자연출산을 할 생각하고 공부도 많이 했는데 예상 못했던 일을 마주하느라 많이 당황해했고 실망스러워 하기도 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기가 위험하다는 데 엄마가 어떻게 자연출산에 대한 고집을 부릴 수 있었을까. 우리는 아쉽지만 엄마와 아기 모두 건강하게 태어났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하자고 다독였다. 지금 두 엄마는 내가 자연출산을 성공하면 그들의 실망감이 조금 덜해질 것 같다며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 두 엄마는 이제 육아의 길을 가기 시작했고…. 이제 나만 남았네.
 
출산 준비물, 대체 뭘 챙겨야 하지

남편이불을 보면서 남편은 '왜 남편은 안챙겨주는거냐'며 섭섭해했다.
▲ 조산원에 챙겨갈 준비물 남편이불을 보면서 남편은 '왜 남편은 안챙겨주는거냐'며 섭섭해했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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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7주 6일, 그동안 대략 주수만 기억하고 며칠 째인지는 세지 않았었는데 출산예정일이 다가오니까 아무래도 며칠까지도 기억하게 된다. 지난 주 병원에 갔을 때 홈런이는 2.8kg 까지 자라있었고 의사선생님 말로는 이제 어느 때 태어나더라도 조산이나 미숙아의 개념은 벗어났다고 했다. 준비 없이 홈런이를 만나면 곤란하니까 이제부터는 홈런이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출산 준비물을 챙겨보기로 했다. 그런데 뭐가 출산 준비물이지? 35주쯤부터 출산 준비물이 뭔지 찾아보긴 했다. 그런데 보는 글마다 천차만별이다. 한 엄마는 준비할 것들을 표로 다섯 페이지까지 정리한 엄마도 있었고, 그렇게 까진 필요 없다는 엄마도 있다. 아기 옷이나 분유회사에서 받은 책자에서는 또 다른 출산 준비물 목록을 제시한다. 브랜드는 또 어찌나 많고 브랜드 이름은 또 왜 그리 어려운 건지. 그냥 조산원 사이트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엥? 이것만 있으면 된다고? 내가 그동안 봤던 출산 준비물은 너무 거창한 것이었다. 조산원에서는 내가 지내는 동안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과 조산원을 나가는 날 홈런이에게 필요한 것, 남편의 이불이 준비물의 전부다. 출산 준비물을 함께 본 남편은 '왜 내 이불은 조산원에 없냐'며 섭섭하다고 툴툴 댄다. 내가 가려는 조산원은 의료 개입만 최소화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의 손길도 최소화 했다.

출산 가방으로 쓸 가방을 안방에 두고 준비물을 챙겨보기로 했다. 그러자니 여기저기서 받은 홈런이의 옷을 정리하고 세탁해야 했다. 식초를 물에 타서 세탁하면 화학물질을 씻어낼 수 있다고 해서 옷은 식초 반 컵을 세숫대야에 타서 빨고, 역시 식초 반 컵을 넣은 물에 기저귀와 손수건을 삶아 널었다. 손목이 아팠는데 그 많은 빨래를 어떻게 다 손으로 빨아냈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되려니 그런 힘이 생기나보다.

식초를 탄 물로 빨래를 했다. 건조대에 걸린 양말이 앙증맞다.
▲ 홈런이를 만날 준비, 그 첫번째 식초를 탄 물로 빨래를 했다. 건조대에 걸린 양말이 앙증맞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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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건조대에 널어 그 사진을 친정엄마한테 보냈다.

'잘 했네. 이제 홈런이만 태어나면 되겠다.'

홈런이를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 몇 편의 글을 더 쓸 수 있을까. 끝까지 몸 관리 잘해서 자연출산에 성공하고, 그 이야기까지 글로 남길 그 날을 꿈꿔본다.  



태그:#출산, #자연출산, #출산준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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